독자마당 - ①
가을 산책 이야기
이경재(데레사)|산격성당 사무장
산과 들, 그리고 나무에 빨갛게 노랗게 예쁜 단풍이 들었습니다. 가을날에 낙엽이 쌓인 길을 산책하는 것을 나는 참 좋아합니다. 점심시간, 간단히 요기를 하고 남은 자투리 시간에 잠시 짬을 내어 나무 많은 길, 낙엽 소복한 곳을 찾아가 산책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감나무를 만났습니다. 감나무 아래 봄날 여린 감꽃이 떨어졌던 그 자리에 주황빛 알록달록 단풍물 젖은 큼직한 감잎이 쌓여 있습니다. 몇 걸음 더 걸어 은행나무도 만납니다. 그 나무 아래서 걸음을 멈추고 가을을 봅니다. 노란 잎이 소복하게 쌓인 은행나무 밑에 바람이 찾아 들면 노오란 이파리가 바람을 타고 돌돌돌 달아납니다. 은행잎들이 나부끼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바람결 따라 나비처럼 날아다닙니다. 참 아름다운 가을입니다. 내가 참 좋아하는 가을입니다.
나무 아래에서 쉬던 걸음을 재촉하여 단풍 길을 따라 가만가만 걸어가 봅니다. 조용히 거닐다 내 눈길 멈춘 예쁜 단풍잎 하나를 주웠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그 잎 옆에 잎도 함께, 또 그 옆의 잎도 함께 줍습니다. 하나, 둘, 셋 주워 모은 가을 잎들을 챙겨왔습니다. 그리고 예쁜 가을 단풍잎들을 책갈피에 나란히, 가지런히 줄 세워 꽂아 두었습니다. 동그란 테이블 위에 가을 그림을 그리기 위한 준비 작업입니다.
하루, 이틀, 닷새 그리고 일주일. 며칠 조금만 더 기다린 날에 한 장, 두 장, 그 다음 장 책 페이지를 넘겨봅니다. 그날 넣어둔 단풍잎이 그 색깔 그 모양 그대로 고이고이 다림질 되어 있습니다. 향기로운 허브차를 담은 찻잔을 가져다 놓고 책 읽는 작은 테이블 위에 하늘색 천을 깔고 곱게 말려진 단풍잎들을 이리저리 예쁘게 얹어 두고 유리를 덮으면 하늘과 단풍이 어우러져 노니는 여유로운 그림이 테이블 위에 그려집니다.
아~! 보름 후에 그려질 가을그림이 내 마음에 미리 그려집니다. 가을을 좋아하는 내 마음이 가을 그림에 취해 콩닥콩닥 설렙니다. 나는 가을이 참 좋습니다. 정말 좋습니다.
독자마당 - ②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이영숙(안나)|성서성당
언니가 처음 교리실 문을 열고 들어오던 날이 아마도 5~6년 전이었을 것이다. 언니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밝고 화사했다. 뇌종양 수술을 받은 사람이라고 전해 들었던 나는 언니를 보는 순간 ‘어? 아니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만큼 언니는 병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과도 같았다. 늘 밝고 편안했고 예뻤으며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눈이 크고 예쁘고 참한 사람이었다.
갓 세례를 받고 처음하는 레지오마리애. 언니는 그야말로 스펀지였다. 늘 단장을 긴장시키며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더 깨우쳐 주고 싶을 정도로 모범적이고 성실한 단원이었다. 주회시간이면 언니는 수첩을 꺼내어 새로운 사실을 하나라도 듣게 되면 곧장 기록하였고 궁금한 것은 즉시 물어보면서 하루하루 하느님을 알아가고 있었다. 단원들도 언니가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라는 의식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함께 기도하고 활동하고 웃고 이야기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하였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 시절이 무척 그립다.
그러던 어느 날 머리가 아프다며 병원을 찾은 언니는 뇌종양이 재발했다는 진단과 함께 곧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 순간 우리 역시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단원들은 언니를 위해 더 많은 기도를 바쳤고, 언니가 병원에 들어가기 전날 나는 언니가 침대 곁에 두고 위로받을 수 있도록 성모님 사진이 든 액자와 편지 한 통을 건넸다. 뭐라고 썼는지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단원들을 위한 단장으로서 내 마음은 누구보다 절절했고 안타까웠으며, 어떻게든 언니에게 희망을 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었다.
그렇게 시작된 언니의 투병은 길고도 힘겨웠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이사 가더라도 꼭 오겠다던 언니, 하지만 언니는 차츰 결석이 잦아지더니 결국 레지오를 쉬게 되었고 나는 간간이 언니의 근황만 전해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그 후에도 언니는 몇 번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지내야 했고 나도 중간에 두어 번 병문안을 가서 언니 손을 맞잡고 기도와 이야기를 나누곤 하였었다.
그런데 이번엔 상황이 달랐다. 언니는 지금 의식불명 상태이다. 소식을 듣고 달려가 보니 말문이 막히고 그저 눈물만 흘렀다. 언니의 코와 목에는 이미 기계가 설치되어 있었고 반쪽 신경은 마비되어 있었다. 겨우 오른쪽 팔만 신경이 살아 움직일 뿐 밝고 예뻤던 얼굴은 약물 탓인지 퉁퉁 부어 있었다. 그러나 손은 체온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아주 따뜻했다.
“언니, 왜 이러고 있어? 왜 이러고 있는 거야….” 언니는 아무 반응도 없었고 연신 가래를 내뿜으며 괴로워했다. 그런 언니의 모습을 지켜보던 우리는 숨쉬기조차 미안할 지경이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뒤로 하고 돌아오며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궁금하기까지 했다. 언니의 죄도, 조상의 죄도 아닌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라는데 멀쩡한 우리에게 언니는 주어진 시간 동안 정말 감사하며 잘 준비하라는 큰 의미를 남겨주기 위해 흠 없고 착한 어린양이 되었나? 그렇다면 정말 잘 살아야 하는데, 잘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 세상의 안타까움이야 말 할 것도 없지만 다음 생을 믿고 사는 우리도 언니의 힘든 여정을 거룩한 삶으로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만 언니가 조금은 덜 억울할 것 같다.
언니를 위해 해줄 게 아무 것도 없다. 예전 그 밝고 맑았던 언니의 모습을 기억하면서 나는 요즘 매일 평일미사 참례와 묵주기도를 바치며 언니의 깨어남을 간구하고 있다. 그리고 언니를 다시 한 번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마지막 햇살이라도 있다면 그 기적 같은 은총이 꼭 언니에게로 비추기를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이들이 간절히 기도드리고 있다.
‘언니! 마음의 귀로 듣고 있죠? 우리의 기도소리를…. 언니 우리가 얼마나 언니를 사랑하는지 느끼고 있죠?’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희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마태 8,2)
아직 나이 50세도 채 되지 않은 김 미카엘라 언니. 제가 언니를 위해 뭘 할 수 있을까요? 부끄러운 글이지만 언니를 이렇게 사랑하고 있다는 저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 이 글을 씁니다. 언니에게 작은 희망이라도 되지 않을까요? 이 글을 사랑하는 미카엘라 언니에게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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