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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마음으로
세상보기가장 값진 크리스마스 선물


정태우(아우구스티노)|신부, 문화홍보실장·전산실장·월간 <빛> 주간

성탄절이 다가오면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여기저기서 틀어대는 캐럴 소리도 요란하지만 네온사인과 전광판, 요즘은 LED까지 동원한 화려한 장식이 사방에 가득하다. 성탄 선물을 사는 데 쓰는 가구당 평균 비용이 14만 원이라고 하니까, 예수님 생일 핑계로 엄청난 양의 소비를 하는 셈이다. 서양에서 수입한 명절 중에 이렇게까지 우리 삶에 깊이 파고든 것이 또 없는데, 이것이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본래의 의미보다는 장사에 도움이 되기 때문인 것이 어째 좀 씁쓸하다.

중학교 2학년 성탄 때, 검사동에 있는 SOS 어린이마을에 간 적이 있었다. 무슨 봉사활동을 하러 간 것이 아니고, 누나의 친구 한 분이 그곳에 계셨기 때문에 놀러 간 것이었다. 단순히 고아원이라고만 알고 있던 SOS마을이 내 예상과는 달리 아주 깨끗하고 근사해서 연신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누나 친구분이 느닷없이 “너 견진 받았지?”하고 묻는 것이었다. 바로 그 해 여름에 견진을 받았노라고 자랑스럽게 대답을 했더니, 그럼 좋은 일 한 번 하라면서 바로 옆에 있는 동촌성당으로 나를 이끌고 갔다. 동촌성당에서는 한 아기의 유아세례가 베풀어졌고, 나는 얼떨결에 그 아기의 대부가 되었다. 그 전날 새벽에 SOS 어린이마을 앞에 유기된 갓난아기였다. 세례명은 임마누엘, 이사야 예언자가 예수님의 탄생을 두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이사 7,14)라고 예언한 말씀에서 따 온 것이다. 그 날 이후 나는 성탄절이 되면 선물을 사 들고 동촌 SOS 어린이마을을 찾아갔다. 신학교에 들어간 후에는 자주 가지 못했는데, 그럴 때면 “대부 형님”을 기다리고 있을 임마누엘 생각에 마음이 짠했다. 지금은 소식을 모르고 있으니 이렇게 부끄럽고 미안할 데가 없다.

내가 사 간 선물은 주로 아기 장난감이었지만 진짜 선물은 내가 받은 것이었다.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마태 18,5)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글자 그대로 진리라는 것을 배우게 된 은혜는 값을 따질 수 없다. 사실 생각해 보면 성탄절의 선물은 모두 받은 은혜를 갚자고 하는 것이고, 우리에게 선물이 되어 오신 아기 예수님이야말로 모든 성탄절 선물의 원조이시다.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신 뜻을 몇 마디 말로 아우를 수야 없겠지만,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위해 당신 자신을 낮추셨다는 사실이야말로 주님의 생신을 맞아 마음에 새길 한 가지 뜻이라고 생각한다. 주님께서 몸소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마태 23,12)라고 하셨을 때나,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르 9,35) 하셨을 때나,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 자신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우리는 낮아지는 것을 몹시 싫어하고 어찌하든 높은 자리에 올라앉으려고 하지만, 작고 힘없는 아기가 되어 오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요한 13,15)하고 말씀하신다.

성탄절에 우리가 훈훈하고 넉넉한 마음을 절로 갖게 되는 것은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분께서 보여주신 이 겸손 때문이다. 만민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천사들이 경배하는 대상은 압도하는 권력이 아니라 어린 아기가 되신 사랑이다. 총칼로 위협해도 굴복하지 않는 이들이 세상에 많이 있지만, 여물통에 누워 계신 아기 하느님 앞에서는 저항할 수가 없다. 이번 성탄에는 요란한 치장과 거창한 선물에 마음을 뺏기는 대신, 우리 가운데 보잘 것 없는 사람의 모습으로 와 계신 주님을 찾아뵙는 일을 하면 좋겠다. 우리가 당신을 알아뵈올 수 있도록, 주님께서 우리에게 겸손한 마음을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