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달 전, 제 기사가 이번 달을 마지막으로 끝을 보게 될 것이라는 담당자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그간 스크랩해 두었던 기사들을 모두 꺼내서 천천히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참으로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내가 썼지만 정말 내가 썼던가 싶은 기사도 있었고, 어떤 글은 조금 부끄러운 글도 있었습니다. 글을 써내기 위해 고민했던 나날들도 기억이 났고 이 글 때문에 기뻐하고 또 반대로 역정을 내셨던 분들도 기억이 났습니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고 저는 어느덧 첫 기사를 쓰던 마음으로 이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저의 선교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비단 볼리비아에서뿐만이 아니라 그 뒤에 한국에서도, 그 후에 어디를 가서도 계속해서 이어지겠지요. 아마 죽기 직전까지 그러할 것이고 죽고 나서도 그럴 것 같습니다. 단 하나의 마음, 하느님의 마음, 하느님의 사랑을 세상에 전하는 일이 저의 유일한 사명이 되겠지요.
 
아침에 사무실 앞에 앉아 있는데 예비신학생인 리까르도가 음료수 두 개와 막대사탕 두 개를 들고 찾아왔습니다. 모든 성인 대축일이라 쉬는 날이랍니다. 참 고마웠습니다. 그래도 나란 존재를 기억하고 찾아와 주는 벗이 있어서 말이죠. 막대사탕을 빨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신부님, 우리 구역 반장이 절 나무랐어요. 세례자 명단을 가져다 드렸어야 했는데 그걸 못했거든요. 그리고 어느 신부님도 그것 때문에 저에게 뭐라고 하셨어요. 저는 공소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있고 나쁘게 할 의도는 없었는데 말이죠.”라며 투덜거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리까르도, 우리는 할 만큼 하는 거야. 어딜 가든 우리를 반대하고 불만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야. 우리는 그저 하느님의 뜻을 이루겠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거지. 그리고나서 일어나는 일들은 그냥 받아들이는 거야. 물론 속상하지. 하지만 하느님께서 바라보고 계실테니 걱정할 건 없어. 안 그래?” 라고 말하며 연습장에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해 주었습니다.
 
“잘 봐,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언제나 과거와 미래라는 두 가지 방향이 있지. 미래는 그저 단순한 미래와 멀리 바라볼 수 있는 비전이라는 게 있어. 단순한 미래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걱정거리, 근심거리로 다가오지만 비전은 우리가 꾸준히 준비해서 맞이하게 되는 현실이 될 거야. 비전을 가지고 꾸준히 걸어 나가는 사람은 단순한 미래들을 걱정, 근심할 필요가 없지. 그리고 과거는 지나간 좋지 않은 흔적들인 죄와 그 반대의 좋은 경험들이 남게 되는데 경험은 잘 살려서 오늘날의 튼튼한 기틀로 삼고, 죄는 가능한 당장 지워버려야 하지.”
 
리까르도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말합니다. “신부님은 선생님이 되지 그랬어요?” “하하하, 신부로 살면서도 이미 열심히 가르치고 있는 걸? 무슨 모습인 게 뭐가 그리 중요해? 마음 속에 하느님을 담고 있으면 신부로 살든, 수사로 살든, 평신도로 살든, 어디 가서 무엇을 하든 똑같은 일을 하고 있을 거야. 바로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거지.”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어 함께 집으로 걸어가며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리까르도, 하느님을 가장 먼저 사랑하도록 해. 하느님 사랑은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까?” “사람을 사랑하면 되지 않나요?” “그렇지, 하지만 그게 전부가 될 순 없어. 사람을 사랑한다면서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거든. 자녀를 사랑하는 아버지가 돈을 벌려고 밤에 강도로 나선다면 그건 참 사랑이 아니지. 먼저 하느님을 온 마음을 다해서 사랑해야 해. 그리고 그분께서 알려주시는 진실과 정의 사랑과 같은 가치들을 추구해야 하지.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사람도 참되게 사랑할 수 있는 거란다. 보이지 않는 그분을 사랑한다는 게 쉽지는 않아, 그렇기 때문에 기도하는 걸 잊지 말아야 하지. 기도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믿는다는 걸 드러내는 아주 중요한 행동이야.”
“세상을 만드신 하느님은 분명 우리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제가 여기서 하는 모든 일들은 바로 이 사실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가 많지만 이 근본 바탕을 의심하지는 않으렵니다. 지난 3년간의 여러분들과의 만남을 마감하면서 이 말씀을 거듭 강조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하느님은 분명 존재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저 역시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서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저의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고 볼리비아를 기억해 주신 여러분들의 사랑에 감사드리고 또한 저의 미흡함에 사과드립니다. 사랑합니다.
2011년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에 볼리비아, 산타크루즈에서
마진우 요셉 신부 올림
* 그동안 볼리비아 소식을 들려주신 마진우 신부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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