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엄마’라는 말을 들으면 저절로 힘이 나고 위로가 된다. 그래서인지 소설가 신경숙 님의 《엄마를 부탁해》라는 책은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미국과 일본 등의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인기있는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러나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은 《엄마를 부탁해》 속의 ‘엄마’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미국의 모 교수는 이 책이 ‘김치 냄새나는 크리넥스 소설’이라는 혹평을 했다. 눈물 짜내는 멜로드라마나 죄책감의 도덕이야기라는 것이다. 물론 이 책을 읽은 몇몇 사람들은 모교수의 말처럼 엄마에 대한 소중함과 미안함을 느꼈을 것이다. 이러한 반성과 성찰 때문에 사람들이 이 책을 그토록 선호했던가? 하지만 이러한 종류의 책들은 우리 주위에서 얼마든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 사람들은 왜 이 책을 그렇게 읽고 싶어 하는 것인가?
그 이유는 《엄마를 부탁해》의 엄마는 ‘가장 한국적인 엄마’이기 때문이다. 1950~60년대에 먹을 것, 입을 것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가난하고 힘겹게 살았던 한국 사람들이 알고 있던 엄마의 모습인 것이다. 흰 쌀밥 한번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도 젓가락으로 큰 아들의 밥에 고기를 얹어주던 엄마, 꽁꽁 언 딸의 손을 자신의 투박한 두 손으로 감싸고 비벼주던 엄마가 그리웠던 것인지도 모른다.
자식을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희생했던 엄마를 아무도 비판할 수는 없다. 엄마는 항상 고통과 인내를 견디어 내는 사람이 아니며, 엄마의 희생은 가족들이 잘못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오로지 자식을 위해서 무엇이든지 해 주고 싶었던 그 엄마의 마음 때문이다.
《엄마를 부탁해》 속의 엄마를 생각하면서 지극한 모성을 보여주었던 한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바로 예수님의 고통을 옆에서 지켜보셨던 성모님이시다. 피에타상의 성모님 또한 아들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해주기 위해서 죽어가는 아들을 안고 눈물을 흘리던 엄마였다. 《엄마를 부탁해》의 엄마와 마찬가지로 자식을 위해서 무엇이든지 해 주고 싶었던 똑같은 엄마였다. 단지 자식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다.
흔히 사람들은 엄마의 소중함을 깨닫는 이야기가 너무 뻔하고 멜로드라마 같다고 이야기한다. 비록 자식의 밥에 고기 하나 더 얹어주는 것과 추운 겨울날 꽁꽁 언 손을 감싸주는 것이 너무나 작고 보잘것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작은 것 하나도 해 주지 못할까 미안해하는 엄마의 마음 때문에 가슴 한 구석이 아려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요즘 시대에 《엄마를 부탁해》라는 책은 또 다른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자식을 훌륭하게 교육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나 완벽하고 똑똑한 모습만 보여주려는 엄마의 모습이 아니라, 자식들 앞에서 가장 바보 같고 미련스러운 모습으로 살아가면서도 지극한 모성을 보여주었던 가장 한국적인 엄마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게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한국적인 엄마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지금의 세상 기준으로 정해놓은 훌륭한 엄마의 자격에 얽매여 바보 같고 미련스러운 엄마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한 여성으로서의 가냘픔을 지니면서도 엄마로서의 억척스러운 모성을 지닌 가장 한국적인 엄마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 류명옥 님은 경북대 국문과에서 고전문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문학과 인간의 삶에 대한 고민과 고전문학의 대중화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다고 해요.
* 지금까지 <내 마음의 책 한 권>을 애독해 주신 여러분과 글을 써 주신 필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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