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2월, 김천 평화성당에 송재준 마르코 신부님이 부임하셨습니다. 구약성경 박사인 신부님을 통해 그 해 봄, 사순 9일 특강 중에 ‘메주자(Mezuzah)’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습니다. 몹시 궁금하였고, 관심을 갖게 되었지요.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6,4-5) ‘항상 이것을 기억하며 너희 집 문설주와 대문에도 써 놓아라.’하신….
저의 표현대로 하자면 “하느님의 문패”입니다. 그러던 중에 2011년 부활대축일을 지내고 평화성당의 바닥 마루를 뜯어내는 공사가 결정, 시작되었습니다. 신발을 신고 들어가는 바닥으로 교체하기 위해서였지요. 성당 건립이 1958년 10월이니까 53년이 넘은 마룻장이지요. 마루의 소재는 나왕이었습니다. 저의 남편 전용대 프란치스코 사베리오는 옛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쉬움에 뜯어낸 그 마루들을 가지고 ‘메주자’형태를 만들어 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경천애인(敬天愛人)과 서울세계성체대회 마크를 넣고 작업방법은 서각(書閣)으로 하여, 5월부터 성탄까지 9개월에 걸쳐 평화성당 총 900가구를 목표로 시작하였는데 그 뒤 1,000개가 되었어요.
수효도, 시간에도 무리가 있었고 힘든 수(手)작업이라 가까운 이들은 말렸습니다만, 남편은 ‘시작이 반이다.’라는 속담대로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그러나 하루에 3개 정도밖에 완성을 하지 못했고 나무를 다듬는 과정부터 모두 수작업이라 1개 만드는데 꼬박 3시간 반이 걸리더군요. 그러나 숙달되면 좀 더 빨라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남편의 열정은 식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꿋꿋하게, 그 누가 하라는 것도 아닐진대 자신만의 남모를 의미를 부여하는 듯 했습니다. 전 신자 가정에 하나씩 나누고 싶은 마음, 옛 것에 대한 소중한 마음, 성전에 대해 가지는 경건한 마음, 또 그 당시(6.25 전쟁 직후) 도움을 주셨던 이국 땅(주로 독일)의 낯선 분들의 선한 지향과 행위에 대한 기억들, 원조 받은 물건들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의 마음의 표현이지요.
마룻장이 그냥 버려지고 없어져버린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다고나 할까요? 공동체 속에 다른 형태로나마 남아 있으면 하는 마음이었겠지요. 그리하여 우리가 되새겨보고 낯모를 그들을 기억하며 또한 우리에게 신앙의 보금자리를 마련하여줌에 감사하고, 앞으로 우리들 또한 어렵고 부족한 나라들에게 그 어떤 방법으로든 관심을 기울여야 할 시점에 와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음을 생각하였나 봅니다.
 
우리는 쉽게, 간단히 편리함을 쫓아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시대를 따른다는 명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또 다르게 변할 수 있지만, 옛것에 대한 보존은 힘든 사명감이 있어야 하며 변화 이후에 복원되기에는 어렵습니다. 김천 평화성당을 지으신 탁세영 파비아노 신부님은 성 베네딕도수도회의 독일분이십니다. 1956년도 김천지역 황금성당에 부임하시어 이 곳 김천의 미래를 보시고 지금의 평화성당을 지으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붉은 벽돌 건축물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시멘트 벽돌, 콘크리트 건축물로는 거의 처음이라고 합니다. 신부님께서는 암반 위에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려가며 굳건히 이 성전을 지으셨습니다. 한국의 뚜렷한 사계절과 청명한 날씨, 하늘을 보시고 성당에 그 어떤 성물이나 스테인드글라스 등 별다른 장식들로 꾸미지 않고, 단지 창(窓), 크고 작은 창문에 밝은 햇살만으로 충분히 성스러운 공간이 되도록 설계를 하셨답니다. 그래서 평화성당의 창문들의 숫자는 모두 각각의 의미를 지니고 있어요. 열두 사도(12), 예수님의 다섯 상처(5), 구약 46권, 신약 27권, 72제자…. 나름대로 추측하여 맞추어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본당신부님께서도 공사 중에 이런 부분들을 소중하게 생각하시고 그대로 잘 보존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문패”에 새기게 된 ‘경천애인(敬天愛人)’은 불교, 유교 등 모든 종파에서 통용되는 말입니다.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라. 하늘을 공경하듯이 사람을 사랑하라. 사람을 하늘같이 공경하고 사랑하라! 여러 각도에서 해석되고 있지만 저는 경천 곧 하느님 사랑, 애인 곧 이웃 사랑이라고 하겠습니다. ‘하느님 그분은 나와도 하나이고, 너와도 하나이다.’라고 하신 신비신학자 마이스트 에카르트의 말을 다시 새겨봅니다. 신약성경에서 마태오 22,37-39; 마르코 12,29-30, 루카 10,27에 신명기 6,4-5, ‘이스라엘아, 들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위의 공관복음서에는 모두 한결같이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라고 덧붙여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또한 목숨까지 내어놓으시면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오셔서 간곡하게 가르쳐주신 당부 말씀이지요.
우리들, 공동체, 세계 인류가 함께 살아남지 못한다면 결국은 희망이 없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함께 살아가야 하며, 함께 그 영원한 생명의 길로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나눔의 실천만이 곧 이웃사랑이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올바른 자세입니다. 크고 작은 것들, 즉 기도의 나눔, 사랑의 나눔, 시간의 나눔, 생각의 나눔, 행위의 나눔, 물질의 나눔 등으로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듯 너와도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깨달을 때 이웃과의 불편한 모든 장벽들은 쉽게 허물어지지 않겠습니까?
저의 남편 전 프란치스코 사베리오는 이 작업에 열정을 다 쏟고 있습니다. 그 어떤 의미가 부여되지 않더라도 나눌 수 있고, 또한 그 작업 중에서 맛보는 기쁨과 보람은 당사자만이 느끼는 은혜로움이겠지요. 그래서 모든 부족함 가운데서도 풍요로울 수 있었나 봅니다. 지난 한여름은 우난히 비가 많고 구름이 많은 날씨로 이 작업을 하기에는 차분한 기후 조건이었습니다. 나름대로 많은 도움이 되었답니다. 프란치스 사베리오가 만들고 있는 “하느님 문패”의 공정과정은 대충 이렇습니다.
① 뜯어낸 성당 마룻장을 22cm 정도 길이로 자르고 다듬기
② 사포질을 하여 면을 고르게 깎아내기
③ 1차 락카 칠을 하여 말리기
④‘경천애인’ 종이붙이기
⑤ 서각하기
⑥ 남은 종이 물에 불려 뜯어내기
⑦ 글자 파낸 자리에 색칠하기
⑧ 옆 모서리부분에 구멍뚫기(말씀 두루마리 넣을 곳)
⑨ 앞, 뒤, 옆면 2차 마무리 칠하기
⑩ 고리달기
⑪ 뒷면에 기념 연도 및 낙인찍기(가로 8~9cm, 세로 22cm)
작은 칼과 작은 망치로 글자 한 획 한 획을 파내는 것을 서각이라 합니다. 나왕이라는 나무에는 결이 있어서 조금의 힘만 놓쳐도 결이 찢어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즉 서각 용도의 나무가 아니라는 건데, 왼손에는 칼, 오른손에는 망치로 긴장감 속에서 작업을 합니다. 사베리오는 스스로 터득한 기법으로 정성을 다하여 기도하는 마음(이 작업을 시작함과 동시에 묵주기도, 성경쓰기가 일시 중단됨), 보속하는 마음, 수련하는 마음으로 온 힘과 정신을 하느님께 향하고 있음을 느끼게 되더군요. “하느님,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파란만장한 삶의 굴곡과 사연 속에서 여기까지 이끄신 당신의 오묘하심을 보게 됩니다. 저들을 어여삐 보시고 바로 잡아가시며 오로지 당신께로 향하게 하소서. 당신께서 기꺼우시다면 그것으로 족하옵니다.”
2011년도 성탄절에 이 “하느님의 문패”가 축성되어 각 교우 가정에 걸리어 당신의 말씀을 기억하고 틈틈이 되새기며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데 작은 도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성모님 그의 새벽을 깨우시고 항상 옆에서 돌보셨음에 감사합니다. 목수 일을 하시는 성 요셉의 상본을 놓고 당신을 닮고 싶은 마음이었을 그에게 힘을 주소서. 그 손에 힘을 주소서.”
끝으로 본당 신부님, 평화성당 교우 분들의 관심에 감사드리고 그동안 크고 작은 불만과 마찰들, 서로 이해하지 못하여 불미스러웠던 일들, 이 모두를 이 “하느님의 문패”가 완성됨에 다 떠나보냅니다. 그리고 각 가정에서 하느님의 간절한 이 당부 말씀을 되새기고,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데 작은 도구 역할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나아가 그 누군가가 온 마음, 힘을 다하여 이 ‘경천애인’, “하느님의 문패”를 만듦을 한 번쯤 기억해주신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 메주자(Mezuzah)
‘메주자’는 하느님의 명령을 기억하고 그에 따라 살아가기 위해서 각 문설주에 붙여놓아야 하는 성서적인 명령이다. 유다인 가정에서는 문설주, 대문에 빠짐없이 붙어있는 물품으로 메주자의 모양에 대한 규칙은 없고 타일, 유리, 나무, 은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진다. 또한 메주자는 화장실을 제외한 대문에서 방문에 이르기까지, 들어가는 문의 오른쪽 위에 붙인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하느님의 명령을 되새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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