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까지 길을 적셨던 비가 그치니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바람도 잦아들어 아주 좋은 날씨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우리 단원 8명은 성당 앞에서 만나 차량 2대에 분승하여 출발하였다. 목 디스크 증상이 있어 장거리 여행이 좋을 것 같지는 않았으나 의사와 상의하여 조심해서 다녀오라는 이야기를 듣고 함께 하기로 결심했다. 신경 쓰이게 할까 봐 말은 안 했지만 차를 얌전하게 몰아주어 다행이었다.
첫 번째 목적지인 성모당을 찾아가기 위해 대구대교구청으로 향했다. 대구 시내까지는 잘 도착하였으나 교구청 근처에서 내비게이션이 혼돈을 일으켜 골목길을 더듬거리고 일방통행로를 거꾸로 들어가기도 했다. 뒤따라오는 차량의 운전자가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린다고 지레 겁을 먹고 농담을 하였으나 내려서 물어보니 그런 일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앞서 가며 길을 헤맸던 사람들도 안도했다. 결국 전에 가본 적이 있다는 기억을 더듬어 가톨릭교육원으로 향하는 문을 통과하여 어렵게 교구청에 도착하였다.
성모당에는 약간의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으나 삼삼오오 모여 기도하는 분들이 꽤 있었다. 숙연한 분위기가 딴 세상 같았다. 단체로 기도하면 다른 이에게 방해가 된다 하여 각자 묵주기도를 바치기로 했다. 묵주 기도 후에 스테파노 형제가 봉헌 초를 단체로 구입하여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우리는 “봉헌은 우리가, 축복은 스테파노 형제에게!”하면서 촛불을 봉헌하였다.
그렇게 성모당 참배를 마친 뒤에 계산주교좌성당으로 향했다. 계산주교좌성당까지는 10분 거리라고 한다. 차를 타거나 걷는 시간이 비슷하다 하여 걷기로 하였다. 성당 쪽을 바라보니 높은 교회 건물이 두 채나 보인다. 그러나 그 두 채 모두 아니었다. 성당은 교구청에서는 건물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근대 초기 성당은 대개 높은 곳에 위치해 마을을 내려다 보는 것이 통례라고 했다. 높은 곳에 높이 솟아 있어야 하느님의 권위를 드러낼 수 있는 것처럼 생각했기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계산주교좌성당은 평지에 자리 잡았다고 한다. 지을 당시에는 그 근처에서 우뚝한 건물이었겠지만 지금은 건물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평지에 자리 잡았다는 것이 마음에 든다. 그만큼 사람 사는 세상과 가까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니 기둥이나 벽체가 마치 명동성당을 연상시킨다. 계산동주교좌성당은 고딕양식이 가미된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대구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다. 그래서 사적 290호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성체조배를 하고 밖에서 기념촬영도 했다. 주변에 콘크리트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어 속세에 포위된 듯하다. 그러면서 그 의연한 모습이 속세를 타이르는 듯하다.
다시 교구청으로 돌아와 성직자 묘역을 참배하였다. 외국인 사제들의 묘도 있었다. 머나먼 이국땅에 와서 선교를 하시다가 돌아가신 분들이다. 또 연세가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신 분들의 묘도 있다. 그들의 삶이 지향했던 바를 잠시 묵상해 본다. 우리나라는 특이하게도 우리 선조들이 스스로 천주교를 들여왔지만 그 후로 수많은 외국인 사제들이 이 땅에 와서 헌신적으로 노력한 결과 오늘날의 한국 천주교가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렇게 참배를 다 마친 뒤 우리 일행은 다시 차를 타고 한티순교성지로 향하는 길목의 한 식당에서 들께 수제비로 점심을 대신했다. 점심시간이 좀 지나 맛있게 먹었는데, 점심을 늦게 먹은 것은 진행 측의 작전인 것 같다. 시장하면 무엇이나 맛이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수제비는 정말 맛이 있었다.
한티순교성지에 도착해 먼저 십자가의 길부터 했다. 순교자 묘를 연결하여 십자가의 길 14처를 조성해 놓았다. 호젓한 산길을 따라 가며 드리는 기도는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때마침 부는 바람에 낙엽이 우수수 떨어졌다. 영화 ‘닥터 지바고’의 한 장면 같았다. 기억이 맞는다면 지바고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죽어 묘에 묻힐 무렵에 바람이 휘몰아쳐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서 아픔보다는 아름다움을 느끼는 그런 장면이라고나 할까. 고통과 죽음 속에 아름다움이 빛나고 있다.
기도를 마치고 내려오면서 누군가가 자주 오느냐고 물어왔다. 쑥스럽게도 처음이었다. 다행히 옆에 있는 분이 자기도 처음이라고 해 위안이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아침 9시나, 12시나, 오후 5시에 만난 일꾼들 모두를 공평하게 대해주셨다.(마태 20장 참조) 그렇게 언제나 받아 주신다. 그러나 나는 불림은 일찍 받았으나 수많은 태업과 파업으로 일꾼으로서의 의무를 소홀히 하였다. 태업과 파업뿐만 아니라 못을 박는 그런 생활을 해왔다. 그러면서 일꾼들을 공평하게 대해주신 분을 생각하고 용서를 청하고 있는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저녁식사를 하면서 본당 활동에 대해 이야기하는 중에 최근 재무위원회를 그만 두었다고 하니 단장님이 무슨 단체든지 가입해서 활동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웃자고 “단장님 지시사항입니까?”라고 물었더니 정색을 하고 “제단체 활동은 기본이지, 단장의 지시가 아니야.”라고 하면서 반드시 가입하라고 진지하게 말씀하신다. 너무 진지하게 말씀하셔서 나도 모르게 그만 가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아마도 성지순례의 결실, 하느님의 선물인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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