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서 근대 이후 일민족(一民族) 일국가(一國家) 원칙에 따라 발전한 민족국가들이 세계 제2차 대전 이후 국가 간의 교류의 증대로 인하여 다민족 다문화 국가가 되어가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이번 호에는 왜 현대 국가들이 다민족, 다인종, 다문화 국가가 되어 가는지 그 원인을 살펴보고 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왜 다문화사회로 변화하고 있는가에 대한 원인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 해답은 간단하지 않지만 현대 사회의 풍조 안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는 과거의 그 어떤 사회와는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그러한 특징들 때문에 현대 사회가 다문화사회로 변해간다고 할 수 있겠다.
이렇듯 현대 사회를 다문화사회로 만들어 가고 있는 요소들은 무척 많지만 대표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4가지 요소, 즉 현대 과학의 영향, 공산주의의 몰락(1989년), FTA 체제의 등장, 개인주의와 다원주의의 등장 등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사실 이상의 4가지 요소들 외에 다양한 요소들이 오늘날 다문화시대를 만들어 가고 있지만 모든 요소들을 나열하기보다 4가지 요소로 축약하여 설명을 하려 한다.
1. 현대 과학의 발달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생활의 이기들은 50년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50년 전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신문이나 라디오를 통해 세상을 접했고, 대구에서 서울로 출장을 가려면 적어도 1박 2일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떤가? 아침에 일어나면 신문, TV, 라디오뿐 아니라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통해서 간밤에 일어난 사건들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동영상까지도 쉽게 볼 수 있다. KTX를 타고 1시간 40분이면 동대구역에서 서울역에 도착할 수 있기에 오전에 출장을 가면 저녁은 대구에서 가족들과 함께 먹을 수 있다. 또 외국에 있는 바이어나 외국에서 근무하는 직원들과 화상회의를 할 수도 있다.
현대 첨단과학들이 인간을 더욱 건강하게 오래 살도록 도울 뿐 아니라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한 자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제 지리적으로 지구 반대편에 있어도 사람들은 실시간으로 얼굴을 마주보며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쉽게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교통의 발전과 더불어 컴퓨터와 뉴 미디어의 출현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을 줄였고,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게 만들어 주었다. 또 인터넷을 통해 우리는 필요한 물건과 지식 그리고 정보를 언제 어디서든 구할 수 있게 되었고, 사람들의 삶의 태도와 정신을 바꾸고 있다.
100여 년 전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100Km 이상을 떠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전통적인 문화와 관습에 젖어서 살았고, 다른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교통과 통신의 발전에 힘입어 자신이 태어난 지역과 국가를 벗어나 다양한 문화와 문물을 접하고 있으며, 외국인과 어울려 함께 일하고, 외국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다. 달리 말해서 교통과 통신의 발전으로 인해 인류는 이제 한 마을에 살고 있듯이 서로 만나며 삶을 나누고 있다. 결국 교통과 통신의 발전은 떨어져 살던 사람들을 서로 만나게 만들었고, 이 만남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들이 속한 문화와 다른 문화가 있음을 인식하고,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의식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의식이 한 국가 혹은 한 사회에 다양한 문화가 존재함을 인정하게 만들뿐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다문화사회를 만들게 했다.
2. 1989년
1989년은 인류역사에 있어서 대 전환점을 기록한 해이다. 왜냐하면 미국과 소련이 주축이 되어 오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투쟁이 종식된 해이기 때문이다. 공산주의는 산업혁명 이후 자유자본주의의 모순을 지적하면서 탄생하였고, 마침내 1848년 2월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독일어로 작성된 ‘공산당 선언’을 발표하면서 체계화되었다. 이 문헌은 23쪽에 지나지 않지만 어쩌면 성경 이후 지구촌에 가장 큰 파장을 몰고 온 문헌일 것이다. 1917년 소련은 볼셰비키 혁명을 통해 공산당 정권을 세웠고, 이후 세계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로 양분되어 이데올로기의 대립시대에 접어들게 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부터 공산주의는 그 자체의 모순으로 인해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85년 소련의 공산당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자유)와 글라스노스트(개방)정책을 통해 공산주의가 힘을 잃고 있었다. 1989년 동유럽 혁명으로 소련의 위성국이었던 폴란드, 유고슬라비아, 헝가리, 루마니아 등이 민주화되었고, 11월 10일에는 이데올로기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마침내 12월 3일 몰타 회담에서 미국의 부시 대통령과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새로운 시대’를 선언하면서 냉전 시대의 종식과 유럽분단의 극복을 천명하게 만들었다.
동유럽이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민주화됨과 동시에 전 세계를 양분하던 이데올로기의 장벽이 무너지게 되었다. 이데올로기 장벽의 붕괴는 세상 사람들의 사고에도 영향을 미쳤다. 사람들은 이데올로기에 따라 서로 적대시하며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경원시하다가 이제는 서로 만날 수 있고, 또 함께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 전 세계의 국가들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현실적인 경제적 이득을 위하여 서로 개방적인 관계를 맺게 되었다. 이로 인해 관광, 연구, 취업 등의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이 쉽게 국경을 넘나들게 되었고, 전 세계 국가들이 민족국가에서 다인종, 다문화사회로 변화의 물결이 일게 되었다.
소결론
이번 호에서 다문화시대의 원인 2가지를 살펴보았다. 즉 현대과학의 발전과 1989년의 사건은 어찌보면 다문화사회의 도래와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현대 과학의 발전은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바꾸어 놓았다. 지리적으로 수십만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사람도 이제는 동 시간대에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고, 교통의 발전은 사람들의 만남을 쉽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인류에게 자신이 속한 문화가 전부가 아니라 다른 문화가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반면 1989년의 사건은 이데올로기가 사람과 사람의 사이, 국가와 국가의 사이를 갈라놓고 경쟁하도록 만들었던 과거의 관행이 사라지게 하였다.
이제는 이데올로기가 차지하던 그 자리에 경제적 이익이 자리잡게 되었다. 이로 인해 국가와 기업 그리고 개인들은 경제적 이익을 위해 정책과 삶의 태도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또한 사람들은 이데올로기가 전부가 아니라 현실의 빵을 위하여 이념과 생각을 바꿀 수 있음을 체험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실의 체험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삶의 형태가 존재함을 인정하게 만들었으며, 이는 곧 다문화사회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기본적인 삶의 태도를 형성하는 토대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