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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부부입니다
대구ME 293차 주말을 체험하고


김진홍(요셉)·이모임(안나)|성김대건성당

* 남편이 아내에게

“주님, 오늘 이 귀한 시간 저희에게 허락하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안나! 오늘은 “가까운 지인의 죽음 소식을 들었을 때”라는 주제로 당신에게 사랑의 편지를 써 봅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죽을 수밖에 없지만, 한편으로는 계속 살아가려는 본능이 있지요. 우리가 태어나겠다는 의식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니듯 죽겠다는 의식을 가진다고 하여 죽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우리는 죽을 수밖에,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그분께 의지하고 살아가는 것이지요.

언젠가 갑자기 머리와 가슴에 통증을 심하게 느낀 적이 있습니다. 이러다 죽는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때 순간적으로 ‘장성한 아이들의 결혼도 못 시키고 죽는단 말인가?’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렇지요. 엘리사벳, 프란치스코가 짝을 이루는 것을 보는 것이 계속 살아가야 할 첫 번째 이유입니다.

또 어젯밤 당신이 이야기한 대로 아직은 50대인 지금, 그래도 정신이 또렷한 지금, 당신을 좀 더 잘 사랑하는 기술을 배워서 당신과 함께 아름다운 단풍과 같은 노후를 보내고 싶습니다. 80세가 넘어서도 허리를 꼿꼿이 하고 당신과 손잡고 묵주기도 드리러 성모당에도 자주 가고, 추억의 팔공산 동봉에도 올라가고 싶네요. 이 또한 계속 살아가고 싶은 이유입니다.

우리의 나이가 조금은 들어서인지 모르지만, 문득문득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가을 날의 낙엽처럼 허무한 느낌이 들다가도 ‘아! 우리에게는 예수님과 성모님이 계시지!’하는 생각을 하면 단단한 반석 위에 앉아 있는 듯이 든든합니다. 무(無)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돌아갈 본향이 있는 뿌듯함 말입니다. 또 있습니다. 미래의 우리 손자, 손녀들이 어떻게 살아갈지도 궁금합니다. 그리고 그들 중에 사제나 수도자도 생겨나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그런 영광스러운 봉헌의 모습을 보고 싶네요. 마지막으로 나와 당신의 수명을 하느님께서 허락하신다면, 당신이 90세가 되어도 지금과 같은 날렵한 몸매를 유지하는지, 하하하, 정말 보고 싶습니다.

돌이켜보면 당신과 만나 살아온 모든 과정이 괴로워하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가슴조이는 등 그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이었습니다. 우리의 혼인생활은 하느님께서 주신 또 하나의 거룩한 소명이었습니다. 우리 부부가 더욱 사랑으로 일치하고, 우리의 사랑을 이웃에게도 나눌 수 있도록 ME주말에 더 많은 부부들을 초대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하겠지요.  그렇게 주님을 우리 부부 가운데 모시고 열심히 살아가다 때가 되면 내 마지막 말은 ‘당신과 살아온 모든 세월이 감사하고, 당신이 나에게 해준 모든 것이 행복했습니다. 조금 있다가 하느님 앞에서 봅시다.’라는 것이기를 바랍니다. - 당신과 함께 지리산 천왕봉을 올라갔던 요셉이



* 아내가 남편에게


사랑하는 남편 요셉 씨! 어제 ME부부들의 모임에서 누구보다 먼저 약속장소에 도착하도록 일정을 맞추어주고 함께 한 당신이 참 고마웠어요. 지난 해 한티에서 23쌍의 부부가 참가한 가운데 열린 ME주말 과정에서, 발표부부들의 체험을 들으면서 우리의 혼인생활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좋은 기회를 가졌었지요.

돌이켜보면 저는 모든 것을 당신 중심으로 살아왔던 것 같아요. 제가 아이들 방에서 기도를 하고 있을 때조차도 당신이 퇴근을 하면, 기도하고 있는 저의 마음은 빨리 당신 곁으로 가야겠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제 옆에, 제 옆에는 언제나 당신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당신의 잠든 모습을 보며 ‘우리 둘 중 한 사람이 먼저 이 세상을 하직하고 나면 남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저의 마음은 한없이 슬퍼집니다. 그리고 다짐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서로를 사랑하고, 눈을 감을 때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사랑을 하리라고….

2박 3일간의 ME주말 동안 묵상했습니다. ‘하느님은 어찌하여 저에게 요셉 씨와 같이 좋은 사람을 동반자로 보내주셨나요?’ 저는 이제껏 살아오면서 당신이 ‘내 남편’이라는 것이 공기나 물처럼 그냥 가만히 주어진 양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감사할 줄 모르고 제가 누리는 그 모든 것이 ‘내가 노력했으니 그렇겠지.’하는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던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신과 저 사이에 언제나 하느님의 역사와 섭리가 계셨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분은 자비하신 분이어서 부족하고 보잘 것 없는 저에게 당신을 보내주시어 저로 하여금 주님의 길을 올바르게 걸어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체험했던 ME주말을 통하여 저는 더욱 성숙한 신앙인으로, 당신께 사랑받는 아내로 거듭 태어날 수 있도록 기도드렸고 하느님께서는 많은 응답을 해주셨습니다. 사랑이란 말은 너무 흔해서 당신 앞에서 할 수 없지만, 저 혼자 길을 걸어갈 때면 노래합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남편 요셉을 사랑합니다. 주님의 선물인 우리 아이들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받은 이 크신 은총을 이웃들에게 나누면서 살아가리라고…. - 당신의 아내 안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