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관구 대신학원 신학생들의 ‘거룩한 독서’ 영성수련기 - ①
“끝까지 사랑하셨다.” (요한 13,1)
이무창(사도요한)|대구관구 대신학원 연구과
영성수련에 들어가기 전에 만난 선배 사제들은 저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경험했던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생애에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좋은 기회이며, 지금 그들이 사제로 살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었던 특별한 시간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특별한 체험을 원하던 제게는 선배들의 조언이 좋은 동기부여가 되었고, 영성수련을 손꼽아 기다리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나름의 절박함을 안고 한티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그 절박함이 화근이었을까요? 열정적으로 수련에 임했지만 말씀을 듣는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얻어가야 한다는 욕심을 버려야만 했습니다. 그런 마음들을 버리고 나니 비로소 말씀이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영성수련이 시작되면서 그분께서 제게 보여주신 것은 저의 부족함이었습니다.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차마 스스로가 인정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그분께서는 여과 없이 드러내 보여 주셨습니다. 오만과 편견, 고집, 독선, 옹졸함, 교만 등등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저의 어두운 면들이 터져 나왔습니다. 수련을 시작한 지 며칠이 지나자 그분은 저를 무장해제 시키셨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분께서는 저에게 “괜찮다!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들려 주셨습니다. 저는 그분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분의 사랑을 아무렇지 않게 넙죽 받아들이면 제가 너무 염치없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저는 매일 성당에서 성체조배를 하며 하느님과 씨름하는 야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떨 때는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했던 베드로가 되기도 했고, 또 어떤 때는 유다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영성수련은 정말 처절할 만큼 힘들었고, 신부님들께서 왜 이런 시간을 보내도록 하시는지 의문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또 주님께서는 어쩌자고 저를 이토록 힘들게 하시는지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이렇게 성소의 길을 포기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 순간 동반 신부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신부님의 도움으로 저는 제 자신을 새롭게 보게 되었고 저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내면 깊숙한 곳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계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제 모습을 모두 알고 계셨고 그 모습 그대로 제게 “괜찮다! 사랑한다!”고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다가온 그분의 사랑은 그 자체로 감동이요 감사였습니다.
그 후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계속해서 당신의 마음과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저에게 보여 주신 그 사랑은 정말 예수님께서 제 눈앞에 있는 것처럼 가까이 와 닿았고 그럴 때마다 제 심장은 가파른 산을 오를 때처럼 터질듯이 두근거리며 벅차올랐습니다. 예수님께서 제게 보여주신 그 사랑의 절정은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저를 살리시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고, 당신의 몸을 제게 주셨습니다. 그날 미사시간에 당신의 몸이 제 손 위에 누이시고, 제 혀에 녹으실 때 그 가슴 떨림이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감사의 순간이었습니다.
이번 수련을 통해서 제 가슴 깊숙한 곳에 새겨진 말씀은 “끝까지 사랑하셨다.”(요한 13,1)입니다. 이 말씀을 보며 ‘왜 현재형이 아닌 과거형으로 되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저의 시작부터 끝까지 이미 사랑하셨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제 모습을 이미 사랑하셨고, 저의 마지막까지 이미 사랑하셨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수련을 통해서 저는 저의 본래 모습을 마주 할 수 있었고, 예수님께서 저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사랑이 제게 큰 힘이 되었고 저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전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서로 사랑하여라.”는 말씀처럼 이제 그 사랑을 실천해 보려고 합니다. 먼저 가장 가까운 나의 가족들, 동기들, 그리고 제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해보려고 합니다. 이런 결심을 하면서 ‘과연 제가 그분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지만 그분께서 저를 끝까지 도와주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저는 제가 만나는 모든 이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싶습니다. “괜찮다! 사랑한다!”
대구관구 대신학원 신학생들의 ‘거룩한 독서’ 영성수련기 - ②
“하느님의 사랑은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저에게 전해졌습니다.”
이효인(요셉)|대구관구 대신학원 연구과
사실 한 달 영성수련은 사제직으로 나아가는 한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특별한 각오도 없이 한티 영성관에 도착했다. 영성수련을 시작하면서 1학년 시절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7년 전 철없던 나의 모습이었다. 그때의 생활을 반복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기에 해야 할 것을 놓쳤을 때 나중에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게 되는지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은 참다운 사제생활을 위한 튼튼한 기초를 닦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내가 한티에 다시 온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물음이 계속해서 내 안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일까? 수련과정 시작부터 조바심을 내기 시작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성경 말씀에서 무언가를 획득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나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것이었고, 내가 말씀 안에 머무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다. 다행히 이런 상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나와 함께 하시는 영적 동반자 신부님이 계셨다. 신부님께서는 나의 마음을 아시고 나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셨다.
나는 영성수련을 통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먼저 나는 주님 앞에서 벌거벗은 존재가 되었다. 내안에 감추어둔 부끄러운 모습들까지 모두 드러났다. 그분 앞에서 아무것도 숨길 수가 없었다. 특히 나의 삶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이끄심을 오직 내 능력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교만은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나를 안아주셨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시고 그냥 사랑해주셨다. 그분의 무조건적인 사랑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감사의 기도뿐이었다.
두 번째는 이 세상에 사람이 되어 오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낀 것이다. 영성수련에 들어가기 전 ‘복음 말씀을 따라 산다는 것에는 인간적 한계가 존재한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완전한 사람이 되시고, 우리와 똑같은 인간적 한계 안에서 사랑을 펼치시고, 이후에 성령의 위로와 은사까지 주시는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쫓아가면서, ‘인간적 한계’라는 말이 나의 나태함을 숨기기 위해 만들어낸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사랑에는 한계가 없었다. 사랑은 한계를 초월하는 것이었다.
세 번째는 복음에서 만난 사람들의 아름다움이었다. 고통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의 순명과 겸손과 참된 사목자의 모습을 보여주신 세례자 요한의 아름다움! 아무 말 없이 오직 말씀을 따라 살아가신 요셉 성인의 아름다움! 그리고 단순한 따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신 베드로 사도! 하느님을 닮은 이 분들의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며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느낀 것은 지금까지 너무나 무관심했던 악마의 존재였다. 이 존재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이 이번 수련 중 가장 큰 축복이 아닐까 싶다. 나를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드는 많은 유혹들! 악마와 타협하려 했던 나를 떠올리며 이제는 타협이 아닌 끝없는 싸움을 할 것이라 다짐해본다. 이 영적투쟁을 위한 무기는 하느님 말씀이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과 같이 믿음과 사랑의 갑옷을 입고 구원의 희망을 투구로 쓰고 이 영적투쟁을 계속 해 나갈 것이다.
한 달 동안의 영성수련은 큰 행복의 시간이었다. 주님의 말씀이 기쁨으로 다가온 날들과 말씀이 고통으로 느껴져 힘든 시간을 보냈던 날들, 말씀을 통해 나에게 오시는 주님을 만나고 그분의 사랑 안에서 위로받고 기뻐했던 시간들. 이것은 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사치이며 하느님의 초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부족한 나를 이 행복의 시간에 초대해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이제 내가 해야 할 것은 그 사랑을 사는 것이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하심을 잊지 않으며, 사랑을 살아야겠다.
대구관구 대신학원 신학생들의 ‘거룩한 독서’ 영성수련기 - ③
‘말씀’, 영혼의 동반자
배재민(안젤로)|대구관구 대신학원 연구과
영성수련을 시작하면서 처음 가졌던 각오는 사제직으로 나아가는 나의 새로운 다짐만을 새겨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거룩한 독서’를 통해서 처음으로 성경 말씀이 내게 하신 일은 가족 관계 속에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예수님의 시선으로 가족들을 바라보게 하였다. 그렇게 보니 내가 그동안 가족들에게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학교와 본당에서만 ‘사랑’에 대해서 고민했었지 정작 가족 안에서는 사랑하려 노력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말씀’을 통해서 가족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내 사랑의 첫 대상임을 깨닫게 되었고, 이 가족의 사랑 없이는 내가 걸어갈 사제직도 빛을 바랠 뿐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말씀’을 계속 읽고 묵상하면서 가족들에게 필요한 나의 사랑을 생각하게 되었고, 구체적으로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떠올려 보았다. 그래서 영성수련을 마칠 무렵 나는 사랑할 가족들을 만날 생각에 마음이 설레였다.
아울러 영성수련을 통해서 처음 생각하려 했던 사제직에 대한 나의 각오도 다시 새롭게 하였다. 그동안 부족한 나 자신에 대해서 얼마나 회의적으로 생각했는지 모른다. 수많은 고민과 갈등을 혼자 짊어지고 가고 있었다. 하느님께 매달려 보지도 않은 채 말이다. 그런데 ‘거룩한 독서’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느님께서 나를 정말 사랑하셔서 사제직으로 부르고 계심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 확신이 들자, 내가 그동안 부끄럽게 여겼던 나의 부족함과 죄들을 그분의 크신 사랑 앞에 맡겨드렸다. 그렇게 모든 것을 그분 앞에 놓아 드리니, 가벼운 몸과 마음이 되었다.
영성수련을 통한 나의 또 다른 변화는 ‘거룩한 독서’에 대한 나의 태도변화이다. 과거에 나는 성경을 ‘풀지 않고 놓아둔 과제’로 받아들이고 읽었었다. 그래서 영성수련 초기에 그 마음 그대로 모든 성경본문을 대하다 보니, 너무나도 머리가 아프고 복잡했다. 하지만 동반해 주시는 신부님과 함께 성경을 바라보면서 성경은 내가 풀어야 할 과제만이 아님을 깨달았다. 성경은 하느님 사랑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나를 부르시고 나를 사랑하신다는 그분의 목소리였다. 그런데 나는 그 목소리는 들으려 하지 않고, 오직 나의 지적 욕구만을 채우려 애썼던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는 ‘거룩한 독서’에 임하는 마음을 조금씩 비워 나갔다. 내가 모르는 것, 내가 놓친 것은 영적 동반 신부님의 지도에 맡겨드리고, 나는 그분의 목소리에 집중하고자 애썼다. 그러자 매일 고해성사를 보듯이 하루하루 나의 무거웠던 마음들이 가벼워져갔다. 바로 이것이 하느님 말씀의 은총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결심한 것이 ‘거룩한 독서’를 잘하려 애쓰기보다는 꾸준히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이와 더불어 영성수련을 통해서 느낀 점을 하나 더 덧붙여보면, ‘말씀의 선포자’로 살고자 하면서 ‘말씀을 참 모르고 있었구나.’하는 사실이다. 영적 독서를 위한 책을 살 때는 많은 고민을 하면서, 정작 거룩한 독서를 통해서 ‘말씀’을 어떻게 살아갈 지는 고민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제 스스로도 말씀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지를 고민하면서 말씀을 좀 더 가까이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나 더 해 보았다.
한 달 동안의 영성수련을 되돌아보면 힘든 시간이었지만 복된 시간이었다. 그동안 나를 옭아매고 있던 모든 영혼의 짐들을 들여다보아야 했기에 힘든 시간이었으나, 그 모든 것을 하느님의 마음과 사랑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복된 시간이었던 것이다. 앞으로도 다시 힘든 일들과 시간이 다가오겠지만, ‘말씀’을 영혼의 동반자로 삼아서 위로와 힘을 얻으며 사제직으로 조금씩 나아가고자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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