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서 우리는 현대과학의 발전과 1989년의 사건이 현대의 세계가 다문화 사회로 변화하는데 큰 역할을 했음을 살펴보았다. 이번 호에서는 FTA 체제의 대두와 개인주의 및 다원주의의 대두가 현대 사회를 다문화 사회로 변화시켜 가는데 중요한 요소임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런데 경제와 관련되는 세계 무역체제의 변화가 개인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는 개인주의와 다원주의 및 다문화사회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 생각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우선 FTA와 개인주의 및 다원주의가 어떤 모습인지 또 다문화 사회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살펴보자.
3. FTA 체제의 대두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국제 경제 질서는 GATT(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에 의하여 주도되어 왔으나, 1994년 4월 7년 간에 걸친 우루과이 협상이 타결됨에 따라 1995년 WTO(World Trade Organization, 세계무역기구)가 출범하였다. GATT체제에서는 말 그대로 생산품을 주 대상으로 관세와 수출입 규제의 완화 등을 통하여 무역장벽을 제거하는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WTO의 출범과 더불어 세계의 무역은 FTA(Free Trade Agreement, 자유무역협정) 체제로 전환하면서 교역대상이 대폭 확장되었다. 즉 농산물, 서비스 및 지적 소유를 포함한 그야말로 모든 생산품만이 아니라 생산과정의 근로조건과 자연환경을 비롯하여 금융과 인적자원까지도 포함하게 되었다.
FTA는 양자주의 및 지역주의적인 특혜무역체제로 회원국에만 무관세나 낮은 관세를 적용한다. 그럼으로써 FTA 당사국들의 경제 체제가 하나의 경제 체제로 묶이고 시장이 확대되어 비교우위에 있는 상품의 수출과 투자가 촉진되고, 동시에 무역창출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러나 협정대상국에 비해 경쟁력이 낮은 산업은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현재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에 맺어진 FTA에 대한 반대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농업 및 금융투자와 관련된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부분에서 우리의 경쟁력이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해서 이 분야가 피폐화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아무튼 세계 경제체제가 FTA를 통해서 새롭게 재편되고 있으며, 이 체제로 인하여 각국의 생산품과 금융 그리고 인적 자원들이 국경을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게 되었다. 다국적 기업들의 출현과 더불어 상품과 사람들이 국경을 자유로이 넘나들면서 사람들은 자신들과 다른 문화, 기술뿐 아니라 외모와 가치관이 다른 외국인을 만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더 나은 삶과 일자리를 찾아서 또 상품을 판매하기 위하여 국경을 넘나들 뿐 아니라 자신의 조국을 떠나는 유목민(nomad)의 삶을 살고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난 곳의 전통적인 문화 속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있으며, 사회 자체가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다.
4. 개인주의(individualism)와 다원주의(pluralism)
유교를 바탕으로 한 전통적인 우리 사회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보다 가족, 가문, 지역 공동체, 민족 등의 가치를 우선시하였다. 이런 사회에서 개인은 가족과 가문을 위하여 희생하는 것이 당연시 되었다. 또한 개인은 가문을 위해, 아내는 남편을 위해, 딸은 아들을 위해, 지차들은 장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급속하게 산업화, 도시화, 민주화되면서 이제는 가족이나 가문 등 공동체보다 개인의 존엄성과 자유를 중시하는 개인주의적 경향이 매우 강해졌다.
개인주의는 근본적으로 개인의 자기결정, 즉 자유를 중시하며 개인이 갖는 개성을 절대적이고 유일한 것으로 존중하며 침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유와 유일한 개성을 지닌 개인은 침해할 수 없는 각자의 유일한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개인주의적 경향에 따라 사람들은 국가나 다른 사람들의 간섭과 통제를 거부하면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다른 사람의 그것과 사회적 가치를 침해하지 않는다면, 개인은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무제한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어떤 해악을 끼치지 않으면 남의 일에 관여를 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한다.
개인주의는 필연적으로 사회를 다원화에로 나아가게 만든다. 개인의 존엄과 책임을 강조하는 개인주의는 개인적 차이를 인정한다. 개인의 차이가 인정되는 사회에는 필연적으로 다양한 가치관, 다양한 문화, 다양한 윤리도덕, 다양한 종교들이 등장하게 된다. 이렇게 사회는 다원화된 사회로 사람들이 하나의 기준, 하나의 가치, 하나의 종교, 하나의 문화, 하나의 정치권력에 따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각자 다양하고 개성 넘치는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인간의 삶과 사회 현상을 해석하는데 있어서도 각자 다른 기준에 따른 다원주의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다원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문화, 윤리, 종교, 집단들과 관련하여 배타주의, 포용주의, 무차별주의, 상대주의, 무관심주의 등 다양한 태도를 취할 수 있다. 사람들이 어떠한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다원화된 사회는 혼란과 분열을 가져오거나 융화와 발전을 가져오기도 한다.
우리 사회는 오늘날 지식·정보의 급증과 과학기술의 발전 그리고 경제적 발전으로 인해 개인주의가 발전하였고 다원주의 사회로 변모하였다. 개인주의와 다원주의는 곧 사람들이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기본으로 하기에 서로 다양한 생각과 삶의 형태를 인정하는 다문화 사회로 이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온 국민의 관심사인 대학입시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 과거 대학입시는 성적으로만 결정이 되었으나 최근에는 입학사정관제도를 통해 성적만이 아닌 학생의 잠재력과 개성에 맞추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즉 단 하나의 잣대로 대학입학을 결정하던 것에서 다양한 잣대를 통해 학생들을 평가하고 입시를 치르는 것이 다원주의 사회의 모습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결론 : 신앙의 눈으로
오늘날 사회는 과학기술의 발전, 공산주의의 몰락, 세계 경제체제의 변화, 개인주의와 다원주의 시대의 도래 등으로 너무나 다양한 가치관과 삶의 형태가 존재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사람들은 경제적 목적으로 삶의 자리를 수시로 이동하는 유목민의 삶을 살고 있다. 과거의 유목민들이 가축을 이끌고 풀을 찾아 삶의 자리를 찾아갔다면 오늘날의 현대인들은 경제적 이유뿐만 아니라 더 풍요로운 사회에서 살기 위하여, 정치적 이유 때문에, 짝을 찾아서, 일자리를 찾아서, 자녀의 교육을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삶의 자리를 옮기고 있다.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전 지구적인 이주와 이민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대규모의 이주와 이민으로 인해 하나의 문화로 이루어진 사회에서 살던 사람들이 이제는 한 사회에 살면서 서로 다른 문화에 따라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사회적 현상을 가져왔고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분명 신앙적인 해답을 찾아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신앙의 눈으로 이런 현상을 바라보아야 하는데, 다음 호부터 성경에서 실마리를 찾는 작업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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