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몸이나 정신이 건강하고, 생활에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큰소리치면서 성모당(聖母堂)과 성직자(聖職者) 묘지(墓地)를 찾았다. 자주 다니던 곳인데도 반시간 넘게 헤매고 다녔다. 지하철 서문시장 역에서 내려 남산초등학교 앞에서 왼쪽으로 꺾어 송림아파트를 지나면 남산성당이 있고 그 곁이 성모당인데도….
그날은 도시철도 3호선 공사로 큰 시멘트 기둥들에 홀려 길을 못 찾은 것일까? 아파트의 이름이 낯이 익어 들어갔더니 또 다른 아파트가 나오고, 낯선 공원도 보이고, 그렇게 걷다가 계대네거리까지 와 버렸다. 서문시장 역에서 이곳까지는 제법 먼 거리가 아닌가? 도무지 방향을 종잡을 수가 없다. 다시 기억을 더듬는다.
여기 네거리에서 동쪽으로 중학교가 있었지, 그 앞길을 따라 계산오거리 쪽으로 가면 그 중간쯤이 성모당이다. 그 길을 가는데 공사 중이라는 푯말이 있고 또 길이 막힌다.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물어보겠는데…. 길 옆 전봇대에 흰 종이가 붙어있어 가까이 가서 보니 성모당으로 가는 방향을 안내해 두었다. 화살표를 따라 한참을 걸었더니 성모당 정문이 보인다. 벌써 미사가 봉헌되고 있었다. 얼굴엔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월례작품 토론회에서의 일이다. 물론 능력이 모자라기도 하지만 혹시 나무나 숲을 보지 못하고 잔가지나 잎을 보는 우를 범할까 두려워 언제나 듣는 것으로 만족한다. 지난 달 모임에서 고향 학교에 근무했던 선배에게 “글 쓰는 일을 접어야 할 것 같다.”고 운을 떼었다. 그랬더니 그 분도 “같은 생각이다.”라고 하였다. 좁은 가슴 속에 자리한 생각이지만 ‘글 같은 글 한 편’을 남기지 못한다면 굳이 쓸 필요도 없지 않을까 싶다. 그저 그런 사람이야 더더욱 절실한 이야기가 아니랴. 어느 큰스님은 열반하시기 전에 “내 책을 출판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셨다. 책의 공해를 염려해서다.
방하착(放下着)이란 말이 있다. ‘집착을 내려놓는 일’을 말한다. 긴 인생여정에서 가져가지도 못할 것, 또 얻지도 못한 것-돈, 명예, 지위- 등에 집착을 하여 시간만 낭비하지 않았는가? ‘무소유(無所有)’의 의미도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라 하지 않던가?
얼마 전에 이사를 하면서 책이며 옷이며 가구며 버려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교육서적들은 후배에게 가져다주었고, 잡지들은 차에 실어 고물장수 할머니에게 넘겨 주었지만 아직도 멀었다. 가장 골칫거리는 앨범이다. 어느 시점에서는 넘겨보지도 않고 몽땅 버릴 것들인데, 왜 그렇게 애지중지하며 모아 두었을까?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 게 잘하는 일일까? 그건 인생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늘 다니던 길을 헤매고 다닌 건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자신을 돌아보며 애써 합리화 하지 않는 게 좋겠다. 앞으로 얼마의 시간을 허락해 주실지 모르지만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항상 웃는 모습이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늦긴 하였지만 이제는 모든 걸 다 내려놓고 가벼운 걸음이면 더더욱 좋지 않으랴.
“우리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으며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합시다.”(1티모 6,7-8) 아! 그렇지.
* 약력 : 「문예사조」 및 「수필문학」 천료. 한국문인협회, 영남수필문학회, 대구수필가협회, 대구가톨릭문인회 회원. 수필집으로 〈내가 선 자리에서〉, 〈하얀 바다의 명상〉, 〈느끼며 살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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