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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생 필리핀 연수기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생 필리핀 연수기


김우현, 최원모 신학생

① 필리핀에 다녀와서
김우현(비오)|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학부 2



대신학교 1학년들의 교육과정에는 방학 중 교육활동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여름방학 때 지역의 사회복지시설로 파견이 된다면 겨울방학 때는 사목체험 및 해외교회연수의 목적으로 필리핀에서 한 달 간 생활하게 된다. 한티에서 지낸 1학년 생활을 돌이켜보니 나도 그렇고 동기 신학생들 역시 2학기가 시작되자 필리핀에 갈 생각에 들떠 있었던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해외에 처음으로 가게 된 동기들도 있고, 선배들로부터 즐거웠던 여행담을 그간 많이 들어왔던 때문이기도 했다. 특히 학기 말에 연수조도 짜고, 제비뽑기로 방 배정까지 끝내자 필리핀으로 떠나는 것이 점차 현실로 다가왔었다.

드디어 필리핀으로 떠나는 당일! 여행책자 한 권을 손에 들고 우리들은 들뜬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필리핀 국민의 대다수가 로마 가톨릭을 믿고 있는 가톨릭 국가에서 나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돌아올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기내에서 시간을 보내며 4시간여의 비행 끝에 필리핀 땅에 도착했다. 내가 한국이 아닌 필리핀에 와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낀 것은 매서운 칼바람이 아닌 후텁지근한 여름날씨 때문이었다. 또한 낯선 거리 풍경과 우리나라에서 외국인노동자라고 불리며 간간이 볼 수 있었던 사람들 속에서 그 순간엔 내가 그들 속에서 이방인이 되어 버린 모습에서도 그랬다.

한 달 간 필리핀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며 나에게 큰 재산이 된 경험이 있다면, 그것은 마닐라에서 여러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마닐라 지역을 돌아보기 위해 유명 호텔들과 여러 숙소들이 밀집된 말라테 지역으로 들어서자 나는 호객 행위로 인하여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해가 지자 호객 행위는 더 치열해졌는데, 호객 행위라는 것이 호텔 투숙객들을 잡기 위한 것이 아닌, 그저 외국인들을 유흥가로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었다. 현지인들은 서툰 한국어로 “오빠!”, “아가씨, 예쁘다!” 등에서부터 누구에게 배웠는지 글로 적기도 힘든 비속어까지 써가며 지나가는 한국인들을 불러댔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한편으로 “얼마나 많은 한국 사람들이 다녀갔으면…”하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도 들었다. 이 사람들 기억 속에 한국인들, 특히 한국 남성들의 모습은 어떻게 비쳐져 있을까? 이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혼잡할 때 더 충격적인 모습은 버젓이 호객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에서 잠을 자지도 않고 도로를 종횡무진 하는 어린이들의 모습이었다. 아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지나가는 외국인에게 불쑥 손을 내민다. 손에는 담뱃갑 또는 꽃을 들고 말이다. 누가 아이들의 손에 담배를 쥐어 줬을까? 좋은 환경 속에서 어린이답게 자라야 할 아이들이 손에 담배를 든 채 호객행위가 이루어지는 곳에서 어떤 것을 보고 자라게 될까? 몹시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호화로운 호텔들과 외국인들이 많이 오고가는 이곳에는 노숙인들 또한 아이러니 하게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야자수 밑 또는 건물 한편에 돗자리나 자그만 천막을 치고 살아가는 사람들, 편의점이나 식당 앞에서 갓난아기를 업고 돈을 구걸하는 사람들, 바가지에 물을 떠서 씻고 있는 사람들, 아이들은 또 얼마나 많이 낳았는지…. 내가 이들의 삶을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필리핀에서 어학공부 중이신 임종필(프란치스코) 신부님과 함께 퀘존 지역에서 선교활동 중인 한국순교복자수녀회를 방문해서였다. 이곳은 두 분의 한국 수녀님께서 현지 선생님들과 함께 가정형편이 어려운 취학 전 아이들을 위한 교육활동과 부모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곳이다. 수녀님의 도움으로 마을도 둘러볼 수 있었고, 가정방문을 하며 열악한 환경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유치원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아이들을 만날 수도 있었는데, 수녀원에서 제작한 파란 원복을 입고 환한 미소로 인사를 건네는 아이들이 참으로 예뻤다. 눈은 어찌나 부리부리하고 맑은지 정말 이 모습이 아이들의 모습인데, 싶었다.



마닐라를 떠올리며 그래도 나에게 위안이 된 것이 있다면, 이렇게 필리핀 교회가 지역사회 속으로 파견되어 이웃들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동고동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말라테 교회 역시 무료 급식소와 무료 진료소를 운영하며 노숙인들을 위한 쉼터를 마련하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식사 봉사활동을 하고 계신 한국 신자들을 만나니 어찌나 반갑고 감사하던지…. 노숙인들의 진정한 이웃이 되고 허물없이 소통할 수 있는 필리핀 신부님의 모습도 참 인상적이었다. 또한 필리핀에서 지내는 동안 예수성심시녀회와 사랑의 선교수녀회 등 지역 교회와 수도원을 방문하며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복음적 삶을 실천해가는 성직자, 수도자들도 만날 수 있었다. 이들과 우리들이 끊임없이 기도하고 예수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을 나누기 위해 이웃들과 소통한다면, 말라테에서 손에 담뱃갑을 들고 있던 아이들의 손에도 담배가 아닌 책과 연필이 쥐어지지 않을까? 그들도 그때는 좀 더 어린이답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신분, 피부색, 나이, 가정환경, 장애 등에 관계없이 모두가 사랑받고 행복한 하느님 나라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 말이다.




② 한 달, 감사의 시간
최원모(베드로)|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학부 2



기온이 30도 이상 차이나는 외국 타지에서 보낸 한 달의 짧은 생활은 기대 이상으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도록 해주었다. 겨울을 맛보고 출발한 우리는 마치 6개월의 시간을 단숨에 뛰어넘은 듯, 필리핀에 도착하여 피곤함도 모른 채 공항을 벗어나 숙소(예수성심시녀회 수녀원)로 가는 버스 안에서 거리의 익숙한 패스트푸드 간판들에 신기해 하며 그대로 잠이 들었다.

공항에서부터 느낀 필리핀의 첫 인상은 가난과 소박함이었다. 그러나 지금 되돌아보면, 그러한 환경 속에서 늘 웃고 있는 사람들과 구유의 왕 예수님이 겹쳐진다. 국민의 90% 이상이 가톨릭을 믿는 나라라는 것을 잊을 수 없을 만큼 성물과 성구들이 쉽게 눈에 들어왔고 몇 푼 벌지 못하는 트라이시클(tricycle, 필리핀의 주요 대중교통수단 중 하나로 오토바이를 개조하여 만든 삼륜 자동차.) 운전기사도 틈만 있으면 묵주와 성화로 트라이시클 내부를 꾸며댔다. 처음 방문한 이국인데도 마치 고향에라도 온 듯 편안함을 느낀 것은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필리핀은 천여 년 전의 스페인 식민지였기 때문에 가톨릭 역사도 상당했다. 대부분의 성당은 상상 이상으로 거대하고, 미사에 참례하는 신자 수 역시 대단했다. 한 가지 신기했던 것은 필리핀 사람들의 국민성 자체가 가톨릭이기라도 한 것처럼 전례와 기도 속에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근처 성당에 사진을 찍으러 갔다가 미사참례를 기다리는 신자가 너무 많아서 미사가 당장 시작되는 줄 알고 급하게 자리에 앉은 적도 있었다. 누군가 기도를 하면 자연스레 침묵을 지켜주고 목적을 알 수 없는 기도에 동참하는 모습도 자주 보았다. 이를 통해 작은 것에서부터 많이 배우고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어학연수도 중요한 목적이니만큼 영어 선생님들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겠다. 우리와 상당한 시간을 함께한 그들에게서 나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진심어린 애정을 느꼈다. 나이 차이도 많이 나지 않는 선생님들이었지만, 배우는 우리보다 더욱 진지한 눈빛으로 늘 최선을 다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들뿐만 아니라 많은 필리핀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작은 일에도 잘 웃고 순수하게 감사하며 열심히 살아간다. 특별한 게 아닌 것처럼 생각되는 그러한 사실들이 순간순간 실감나면서 나에겐 얼마나 충격이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오직 단 하나의 표지판만을 바라보며 목적도 의미도 이해하지 못한 채 무작정 무리지어 달리고 있는 우리나라 10대들의 모습이 떠올라 씁쓸해지기도 했다.



나에게 무엇보다 이 여행이 중요했던 것은 그곳에서 느꼈던 나의 감정들이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순수하고 해맑은 아이들을 보며 다른 데에서 구할 수 없는 행복이 샘솟는 것에 놀랐다. 친하게 지냈던 아이들 생각에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몸은 피곤했지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들과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상상을 오랫동안 했었다. 또 하나는 그곳의 성문제였다. 국가적으로 다루어야 할 만큼 심각한 성문제의 실태를 보면서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앞으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사실 고민하기 껄끄럽고 외면하기 쉬운 이 부분에 대해 각성하고 마주볼 수 있게 된 것에 큰 가치를 두고 싶다.

이 글을 쓰고 보니 더욱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던 한 달, 감사의 시간이었다. 주님께서 필리핀을 통해 내게 전하신 메시지가 무엇인지 더 고민해서, 사제의 길을 걷는 데에 큰 보탬이 되도록 해야겠다. 필리핀, 그곳은 언젠가 사제로서 다시 만나고 싶은 나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