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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봄날


김광선, 조순자, 신제승

독자마당 ①
봄날
김광선(클라라)|성요셉성당

 

추적거리던 비가 그쳤다. 훈풍이 불어오고 유리알처럼 투명한 하늘이 열린다. 아, 어느새 봄인가! 아파트 화단의 여린 잎들이 따스한 온기에 여린 속살 숨기느라 부산스럽다. 내다보이는 먼 산자락도 푸르스름하다. 자연은 이 계절의 변화를 어떻게 알아차릴까? 참으로 신기하고 대견하다. 지난 계절 하늘이 낮게 드리우면 비가 내리고, 아지랑이 꼬물꼬물 피어오르면 숲은 이내 울창해지고 곧이어 매미가 울어댔다. 한낮 골짜기의 햇살이 사정없이 산의 중턱을 점령하면 어느새 흰 꽃들은 낮은 자세로 땅으로 내려서고 뒤이어 달려온 가을은 형형색색으로 치장했다. 골 깊은 계곡의 찬바람은 사람들을 서서히 산에서 몰아내고 겨울을 준비했다. 그리고 다시 새 봄이다. 이처럼 자연은 순리대로 살아가는 이치를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그런데 내 꼴은 어떠했는가?
지난 가을 갑자기 의식을 잃고 응급실로 실려 갔었다. 대학병원에서 온갖 검사 끝에 이름도 생소한 뇌하수체종양 판정을 받았다. 종양으로 인한 호르몬 과다 분비는 말단비대증을 불러왔고 알게 모르게 내 온몸의 모습을 변형시키고 있었지만 미련한 나는 알지 못했다. 일상 속에서 어지럼증을 달고 살아도, 여러 번의 대수술을 하고도 눈치 채지 못했다. 무지한 탓에 몸의 순리를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나를 보다 못한 하느님께서 작업을 시작하셨다. 병명을 알게 해 주시고, 명의를 소개해 주시고, 몇 달을 기다려야 했던 수술날짜도 본당 교우를 통해 두 달이나 앞당겨 주셨다.
이처럼 그분께서 하시는 일은 모든 게 놀라웠다. 내게 병상에서의 하루하루는 주님을 체험하는 은총의 시간이었다. 날이 너무 퍼렇게 살아 사금파리 같았던 내 이기심과 교만을 고통이라는 순례를 통해서 낱낱이 부수어 주시고, 하얀 솜털 같은 양탄자 위로 어둠에 웅크리고 있던 내 못난 자아를 이끌어 내셨다. 보기 좋게 포장만 했던 나의 신앙심을 되짚어 보게도 하셨다. 너무 들떠 거푸집 같았던 나의 기도 생활을 점검해주시고, 말만 앞섰던 나의 실천을 질책해 주신다. 이처럼 좋으신 그분께서는 다정한 사귐으로 또한 따뜻한 위로로 나를 찾아주신다. 그 크신 사랑은 나의 고통을 또 다른 이를 위해 바치게도 해 주신다.  
아직은 면역력이 약해서 바깥출입뿐만 아니라 방문객도 지극히 제한적이다. 누군가가  “침묵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가득 찬 것”이라고 했다. 병상에서의 긴 나의 하루를 하느님께 내어맡기고 두 손 모아 기도드린다. 이 은둔의 시간 속에 침묵으로 오시는 그분만이 나의 유일한 벗이다. 오늘도 살짝 열린 창으로 들어오시는 그분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나는 고백한다.
“주님, 저는 당신밖에 아는 사람이 없어요. 이 모습 그대로 받아주소서.” 그분은 오늘도 내게 주문하신다. ‘더 비워라, 더 낮아져라, 더 기도하라.’고 말이다. “예, 주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참으로 안일하게 살아왔던 저의 삶을 반성합니다. 제 것인 줄 알고 허비했던 지난 시간들에 대해 깊이 반성합니다. 당신께서 허락하지 않으신 그 모든 것, 값없음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성할 때는 보지 못했던 제 자신의 교만과 아집들이 이제야 보입니다.
주님! 창문으로 들어오는 봄볕이 마냥 따사롭습니다. 당신의 뜰에서 지내는 하루가 마냥 좋사옵니다. 아멘.”

 

 


독자마당 ②
중풍병자를 고쳐 주신 예수님
조순자(마리아)|김천 황금성당

“동생! 내가 견진성사를 받으려고 하는데 교리반에 못나가니까 신부님께서 성경을 읽어오라고 하시는데 눈이 나빠 글씨가 안 보이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우리 반원 중 간암 말기 판정으로 투병 중인 자매님의 이야기입니다. 그 자매님이 견진성사를 받고 싶은데, 사는 곳이 본당에서 7㎞나 떨어진 데다 버스도 하루에 다섯 번밖에 운행이 안 되는 오지마을이다 보니, 견진성사 교리반에 나갈 수 없는 자매님을 배려해서 본당신부님께서 성경을 읽는 것으로 교리를 대신하라고 숙제를 내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자매님은 오랜 지병으로 인하여 시력조차 떨어져 성경을 읽을 수가 없다며 저에게 와서 하소연을 하신 것입니다. 교리반에도 나갈 수 없고 성경조차 읽을 수 없지만, 견진성사를 받겠다는 일념으로  고민을 거듭하다가 궁리 끝에 반모임을 하는 날, 우리 집에 오시면 그나마 시력이 좋은 저와 남편이 번갈아가며 성경을 읽어주는 것으로 견진교리 숙제를 하기로 하고 반모임 날짜를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반모임을 하는 날, 성경을 읽는 시간에 반원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그 자매님의 숙제를 위해 성경읽기를 대신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순간 우리 소공동체 모임 안에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반원들이 서로서로 한 줄씩 읽어주겠다고 앞장서 나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반원 모두 나서서 성경을 몇 구절씩 읽었더니 너무 쉽게 숙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그 자매님은 무사히 견진성사를 받으시고 얼마 후 병이 악화되어 홀연히 주님 곁으로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반원들은 지금 우리들이 무슨 일을 했었는지를 느끼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중풍병자를 고치기 위하여 지붕을 뚫고 중풍병자를 예수님 곁으로 내려 보냈던 성경말씀(마르 2,1~12)처럼 우리 반원들도 같은 마음으로 그 자매님과 함께 했음을 압니다. 중풍병자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데에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하느님 사랑의 도구가 되어 중풍병자에게 치유의 천사가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도움을 조금만 받으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참 많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기심과 욕심이 가득 찬 사람으로 살지 말라고 하십니다. 지금 나를 통해 사랑의 기적이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를 묵상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독자마당 ③
군대에서 받은 사랑을 이제는 돌려 줄 때
신제승(라파엘)|포항 대해성당

얼마 전부터 군종후원회에 후원금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에서 저에게 “다른 후원회도 많은데 왜 하필 군종후원회냐?”고 질문을 종종 합니다. 특히 군필자들은 저에게 “군대에서 그렇게 굴러놓고 또 무슨 미련이 남았냐?”라고도 한답니다. 
질문에 대한 답을 드리자면 “제가 도움을 입었으니 이제 조금이나마 돌려주는 것”입니다. 저 역시 군대에서 교리를 배워 세례성사를 받았고 군종후원회의 온정에 기대어 24개월을 잘 버텨냈습니다. 그리고 이제 매월 3천 원의 후원금을 보내고 있으니 매달 1개 분대가 초코파이 를 먹도록 돕는 셈이지요. 매월 몇 만 원씩 후원하고 계시는 분들에 비하면 이야깃거리도 되지 않겠지만 작은 정성이라 여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렇게 군종후원회에 가입하게  된 것도 사실은 어느 주일미사 때의 일입니다. 군종후원회 모금을 위해 나오셨던 해군 6전단 중령님의 호소가 그날 생생하게 제 마음에 전해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순간 저는 ‘군복무 기간 동안 그 많은 은혜와 온정을 받고도 왜 여태 돌려 줄 생각을 하지 않았지.’ 하는 생각에 잊고 지낸 시간들이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어떻게 보면 한 명이라도 더 주님의 자녀로 이끄는 일에 무신경했다고나 할까요. 아무튼 그날을 계기로 저는 군종후원회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때때로 터미널에 가면 군인들이 보입니다. 제대를 한 지 2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아직까지 군복을 입은 군인들의 모습을 보면 괜히 마음이 찡해져 묵상을 하게 됩니다. 특히 해군수병들이 보일 때는 화살기도라도 꼭 해주곤 합니다.
그렇습니다. 최전방 초소의 초병에서부터 대해의 초계함에 타고 있는 수병까지 모두가 주님의 은총이 필요한 이들입니다. 매순간순간 혹한의 추위를 견디며 그리움, 아픔, 슬픔, 기쁨 모두를 가슴속에 묻어둔 채 나라의 부름에 응답한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주님의 귀중한 영혼들입니다. 제가 대한민국 해군에서 주님을 만난 것처럼 대한민국 전 장병이 주님의 소중한 자녀가 되어 사회의 품으로 돌아오길 빌어봅니다.
주님! 은총을 주시는 김에 국방부 시계도 좀 빨리 돌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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