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 들기에 앞서 하루를 생각해 본다. 여러가지 일들이 클로즈업 되면서 떠오른다. 좀 힘들었다는 마음이 든다. 생활한다는 것, 아니 살아간다는 것은 무한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점점 시간에 따라 세월이 흐르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어느 누구든지 생활하는데 있어 고통과 시련, 실패를 몇 번씩 경험하는 것은 확실한 일이다. 나는 생활하면서 어렵고 고달픔이 들면 어느 신부님의 오래된 강론 말씀을 떠올리곤 한다.
“오늘 여기 계신 분들, 살아온 이 시점에서 가장 기뻤던 일 다섯 가지만 손꼽을 수 있으면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날 이후로 가끔 손가락을 꼽아본다. 기쁘고 즐거운 일들도 있었지만 슬픈 일들도 종종 있었다. 이는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일어날 수 있는 보통의 일들이기에 받아 안는다. 하지만 어떤 때는 분노한 일들, 억울한 일들, 얼토당토않은 일들이 혈압을 오르게 하는가 하면 가슴 여리게도 하고 또 쓰리게도 한다. 이런 모든 일들은 내가 받아내기 힘들고 해결 할 수 없는 일들이 꽤 많다. 이때 나는 예수님께 간다.
“예수님, 어떻게 사람으로서는 생각 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 날 수 있을까요? 나쁜 사람들, 아니 나쁜 놈들 죗값 치르게 해주세요.”, “예수님, 가난이 죄입니까, 어째서 약자들에게만 가슴 아픈 일들이 주어지나요?”, “예수님,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들이 사기를 치고 거짓말들을 늘어놓습니다. 벌 좀 주세요.”, “이간질 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갈수록 사람이 무섭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뱉어내면 하루 사이에 날개를 달고 천만 리 길을 간다. 말이 말을 물어서 풍선이 되고 구름이 되어 세상을 떠돈다. 이때부터 나는 여러 면으로 씹히고 밟히며 죄인 아닌 죄인이 된다. 하지만 예수님께 앞, 뒤 순서도 없이 나의 속마음의 모든 이야기들을 털어 내어도 탈이 없다. 어떤 일, 어떤 속내를 다 쏟아 놓아도 다른 데로 흘러 나가거나 떠돌지 않는다. 불평불만이 아니면 미운사람 욕도실컷하고 흉을 보아도 절대 바람은 타지 않는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얼마나 좋으신 멘토이신지 아직도 잘 모르고 있다. 언제나 들어 주시고 위로해 주시면서 힘을 주신다. 미소를 지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 길을 주님께 맡기고 그분을 신뢰하여라. 그분께서 몸소 해 주시리라.”(시편 37.5) 나는 이 말씀에 늘 힘을 얻으면서 나의 생활을 해 왔다. 또한 손가락을 하나라도 더 꼽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얼마 전 아주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허망한 소리를 들은 일이 있다. 무언지 모르게 불편하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시 제대 앞에 두 손 을 모으고 앉았다.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와 불평도 꺼내지 않았다. 마냥 제대만 바라보았을 뿐…. 시간이 한참 흘렸다. 문자를 보내야지 하는 마음이 머리를 스쳤다. 하트와 빛나는 별을 넣고 풍선을 띄워 문자를 보냈다. 따뜻한 답이 왔다. 누구에게 감사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다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늘 이렇게 사람들 안에서 아옹다옹하면서 살아가지만, 이 모든 생활은 나의 하느님, 나의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고 있다는 것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세상을 사노라면 누구에게나 한 명의 멘토가 필요할 것이고 그런 멘토가 있다면 삶은 한결 더 편안해지지 않을까! 새 날이 열리고 있다. 따뜻하고 너그러우면서도 넉넉한 사랑을 베푸는 멘토 님은 멀리 계시지 않다. 바로 우리 곁에 계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