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센터에 다소 덤덤한 목소리의 남자가 전화를 해서 자신의 아내가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데 상담을 받을 수 있겠냐며 문의를 해왔다. 상담약속을 한 날, 부부가 다소 어색한 모습으로 센터를 내방하였다. 전화를 건 남편은 깔끔한 점퍼차림이었고 남자의 아내는 화장기 없는 얼굴에 체육복차림이었다. 부부가 차를 마시는 동안 침묵이 흘렀고 아내는 무표정한 얼굴에 다소 냉담기 있는 모습이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눈 뒤 남편은 다른 상담실로 모셔드리고 아내와 본격적으로 상담을 진행하였다.
나는 그 남자의 아내에게 센터에 용기 내어 찾아준 것에 대해 격려를 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음주자인 그녀는 처음에는 몸을 뒤로 뺀 채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을 만지작만지작거리는 등 다소 방어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상담이 진행되면서 나와 조금씩 눈을 맞추기도 하고 이야기를 풀어 나가면서 센터에 온 이유를 말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연애결혼으로 남편과 결혼생활을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집안의 반대로 다소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행복한 가정을 꾸리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결혼생활은 시간이 흐를수록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들이 발생하였다. 그럼에도 부부는 가게를 차려서 잘 꾸려 나가야겠다고 굳게 다짐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은 손님과의 대화 중에 자신의 뜻대로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고 있는 데다 자꾸만 곁에서 아내가 의견을 끄집어내자 그만 주먹으로 아내의 배를 강타하였다고 했다. 갑작스런 남편의 폭력적인 성향은 그 뒤로 집에서마저 이어져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도 빈번히 폭력을 행사하였다고 했다. 그런 일이 있은 뒤에는 늘 미안하다고 이야기했다.
이렇게 결혼 전에는 알지 못했던 남편의 폭력적이고 난폭한 모습들이 일 년에 몇 차례씩 발생되자, 처음에는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평소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남편이기에, 또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니기에 아내는 남편의 뜻에 거스르지 않는 범위 안에서 생활을 지속하였다.
하지만 그런 생활이 지속되면서 지치고 힘들어진 아내는 나름의 돌파구로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그냥 기분 좋은 상태로 마시고 그것으로 좋았으나 마시는 횟수가 잦아지고 양이 늘어나면서 집에도 취해서 들어가는 일이 자주 생겨났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술에 취해 들어가는 날에는 남편에게 소리를 지르고 평소에 불만스러웠던 것들에 대해 퍼붓기 시작하였다. 어느 순간에는 간간이 필름이 끊기면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게 되었다.
지속되는 불안과 우울로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에 5년 전 신경정신과에서 상담을 받고 중증우울증을 진단받고 약물치료를 권유받았지만 임의로 중단하며 이러한 시간이 반복되었다.
처음 남편의 폭력적인 모습에 대한 돌파구로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이 어느 순간에는 오히려 남편의 폭력을 더 유발하는 상황을 만들게 되었다. 이제는 아이들도 성인이 되었고 더 이상 이렇게는 못살겠다는 생각에 최근 이혼을 결정하고 합의이혼서류를 접수하고 위자료 합의를 하는 과정에서 술을 마시게끔 원인을 제공한 남편이 이러한 심정을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센터에 오게 되었다며 장시간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렇게 그녀는 다음에 만날 것을 약속했지만 그 뒤로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고 연락도 닿지 않았다. 처음에는 자신의 힘든 상황을 잊어버리기 위해 시작한 술이 나중에는 오히려 문제를 더 악화시켰고 결국 이혼을 선택하게 만든 안타까운 사연이었다.
센터에 근무한 지 6년 정도 되는 시점에서 돌아보면 초기에는 알코올 문제자들이 대부분 남성이었으나, 최근 몇 년 사이에 여성 알코올 문제자들이 늘어나고 또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다. 과거에는 집에서 몰래 숨어 마시고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으나 최근에는 여성들의 사회진출과 개방적인 술 문화 분위기의 조장으로 술에 취약한 여성들의 경우 짧은 시간에 문제가 발생되어 센터를 찾는 경우가 종종 있다.
흔히 청소년이나 주부들이 즐겨 보는 드라마에서도 담배 피는 장면은 모자이크 처리를 하지만, 술 마시는 장면은 거르지 않고 그대로 방송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화가 나도 한 잔! 우울해도 한 잔! 즐거워도 한 잔! 그렇게 시작한 술이 나중에는 자신의 신체뿐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 영적인 기능마저도 황폐화시킨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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