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는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고치시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 주신다.”(시편 147,3)
우리에게 주어지는 병과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갑자기 이러한 병과 고통이 주어졌을 때 우리는 부정적인 생각에 쉽게 빠지게 되어 가족과 이웃 더 나아가 하느님과의 관계를 부정하기에 이른다. 분명한 것은 그 이유를 단순히 죄의 결과로만 단정할 수 없으며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하느님의 신비를 담고 있고, 현재적 차원이 아니라 하느님의 구원 계획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려 할 때,그것은 부정적인 것을 넘어서 신앙의 차원에서 긍정적인 것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신앙적 이해에 가족과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여러 가지 형태로 도움을 줄 수 있다. 몸의 장애를 가족과 이웃과의 관계 안에서 극복해 가는 영화 〈파란 자전거〉를 소개한다.
손이 불편한 동규는 가족과의 관계도, 여자 친구인 유리와의 관계도 모두 삐뚤어져 있다.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에 마음의 문을 닫은 채 어떤 것에도 마음을 두지 못한다. 동규는 아픈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아버지와의 과거의 추억을 기억해 내고, 그것이 아버지의 깊은 배려와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동물원에서 우연히 만난 하경과의 관계를 통해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동규가 가진 오른손의 장애는 비록 형태와 상태는 다르지만 우리가 지닌 외적·내적 상처와 장애에 대한 상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외적인 장애는 눈으로 보고 알 수 있어 쉽게 그 존재를 알아차리지만 마음속에 있는 상처나 죄의 경향은 쉽게 드러나지 않기에 스스로도 인정하기 쉽지 않다. 이것은 주위의 사람들과 관계 맺기에 있어서 불편함과 단절을 야기하며 더 나아가 하느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그분을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동규에게 자신의 외적 장애보다 자신을 더 괴롭히는 것은 사람들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과 스스로를 비하하려는 마음이었고, 이를 극복할 수 있던 것은 그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사랑이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아버지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깨닫게 되었을 때 동규는 자신 안에 갇힌 사람이 아니라 세상에 나아가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있는 보통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이 영화에서 자전거는 아버지와 동규를 잇는 매개체이며 세상과 대화하는 도구이다. 아버지가 자전거 고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 것, 아버지가 태워준 자전거, 학교에 가기 싫었을 때 동규의 누나가 자전거 바퀴에서 소리 나는 방법을 가르쳐 준 것, 가족사진을 찍고 난 후 동규가 아버지를 태우고 가는 것, 초등학교 시절 여자 친구의 자전거에 칠을 해준 것, 동규가 우연히 만난 하경을 자전거에 태우고 가는 장면들을 통해 동규가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어가는 것을 알 수 있다.
 
 
 
* 터닝포인트
- 동규가 아버지로부터 강을 건너는 방법을 배우는 장면(1:13:54~1:17:42)
동규는 유리의 집에 찾아간 아버지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오다 아버지와 함께 강가에 앉아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아버지는 동규에게 다리가 없을 때 강을 건너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데, 그것은 물살에 휩쓸려 가지 않도록 무거운 돌을 들고서 조금씩 앞으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무거운 돌을 드는 것은 분명 힘든 일이지만 그 돌의 무게에 의지해 물살을 이겨내는 것이다. 이는 동규가 비록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생각하고 받아들일 때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
* 생각해 볼 수 있는 주제들
- 나에게 주어진 병과 고통, 장애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이를 통해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성장시키고 있는가?
- 내 가족과 이웃이 그들의 병, 고통, 장애를 이겨내도록 어떤 도움을 주는가?
- 장애우들을 어떻게 대하는가? 그들을 불편한 시선으로 대하지 않는가?
* 조용준 니콜라오 신부는 1992년 성바오로 수도회 입회하여 2004년에 종신서원, 2005년에 사제서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006년-2008년 NYFA Filmmaking 과정 수료후, 현재 영화, 인터넷, 뉴미디어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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