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5일 연중 제18주일 : 요한 6,24-35
김동진(제멜로)|신부, 성정하상성당 보좌
24군중은 거기에 예수님도 계시지 않고 제자들도 없는 것을 알고서, 그 배들에 나누어 타고 예수님을 찾아 카파르나움으로 갔다.
25 들은 호수 건너편에서 예수님을 찾아내고, “라삐, 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26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27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28그들이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29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30그들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
31‘그분께서는 하늘에서 그들에게 빵을 내리시어 먹게 하셨다.’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32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 준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33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
34그들이 예수님께, “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 하자,
35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생명의 빵을 얻기 위해 노력하자!>
예전에 군대를 막 다녀와서 <웰컴 투 동막골>이라는 영화를 본적이 있습니다. 한국 전쟁 중 동막골이라는 곳에서 남한병사와 북한병사가 만나서 일어나는 일들을 재미있게 그린 영화인데, 너무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거기에 북한 병사 역을 맡은 정재영 씨가 동막골 촌장님에게 마을 사람들이 절대 충성하는 것을 보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합니다. “촌장님! 위대한 영도력의 비밀이 무엇인가요?” 그러자 촌장님은 “위대한 영도력? 그건 잘 먹이는 거지.”라고 대답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을 찾아서 군중이 갈릴래아 호수 이쪽저쪽을 헤매는데 그 이유가 예수님께서 그들의 배를 부르게 해 주었기 때문이라니, 예나 지금이나 먹는 것은 인간이 꼭 해결해야만 하는 숙제인가 봅니다. 성경에는 단순히 먹는 것으로 표현되었지만 빵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육체적 생명에 대한 갈망을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육체가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게 하는 힘을 얻기를 인간은 갈망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육체적인 힘을 넘어서는 영적인 힘을 갈구하라고 우리에게 당부하십니다. 육체적인 힘이 아니라 영적인 힘을 주는 것은 바로 성체성사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주일의 미사를 통해 생명의 빵인 성체를 모시고, 영적인 생명을 얻어 살아갑니다. 누군가 매주일 성체를 모시지 않는다면 그는 영적인 힘이 고갈 되어가고 있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아는 한 청년이 늘 주일에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주일미사를 매주 빠뜨리게 되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주일에는 근무를 하지 않는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주변에 흔히 있는 미담이라 생각되지만 저는 이 시대에 정말 필요한 영성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실제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할 것입니다.
먹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위해서 사는 것!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사는 것! 이러한 영성이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영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한 주간 영원한 생명을 주는 성체성사를 자주 받아 모셔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신앙인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8월 12일 연중 제19주일 : 요한 6,41-51
이동철(대건 안드레아)|신부, 구암성당 보좌
41예수님께서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유다인들이 그분을 두고 수군거리기 시작하였다.
42그들이 말하였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닌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우리가 알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떻게 ‘나는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말할 수 있는가?”
43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끼리 수군거리지 마라.
44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그리고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
45‘그들은 모두 하느님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라고 예언서들에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온다.
46그렇다고 하느님에게서 온 이 말고 누가 아버지를 보았다는 말은 아니다. 하느님에게서 온 이만 아버지를 보았다.
47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48나는 생명의 빵이다.
49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
50그러나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51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신원을 드러내십니다. 당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라고 소개하십니다. 유다인들에게 ‘하늘’은 하느님께서 계신 곳을 의미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당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라 소개하신 의미는 당신이 하느님께로부터 왔음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장정만도 오천 명을 먹이시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고 그 혜택을 충분히 누렸습니다. 그러나 그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의 신원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고 수군거립니다. 누릴 혜택은 다 누리고 자신들의 배만 채운 유다인들은 그 기적의 의미는 잊어버린 채, 예수님의 말씀을 두고 수군거리기 시작합니다. 유다인들의 이러한 모습은 이 복음 단락에 나오는 그들만의 모습은 아닙니다. 하느님의 은혜로 이집트의 노예살이에서 탈출했던 그들의 조상들에게서도 그러한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바로 ‘나’에게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신앙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는 많은 은총을 받고 있지만 때로는 하느님의 뜻을 외면한 채 불평과 불만을 가집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부족한 모습을 가진 유다인들, 그리고 ‘나’를 불평과 불만의 상태로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다시 진리의 말씀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당신께서 하느님으로부터 오셨으며 당신을 통해 모든 사람이 하느님께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말씀해 주십니다. 그리고 당신께로 오는 사람을 당신께서 내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십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사람의 가장 큰 희망인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지리라 말씀하십니다.
인간에게 생명이란 필수적인 것입니다. 생명이 없으면 살지 못합니다. 바로 이 생명이 하느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가르쳐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생명에 대해 깨우쳐 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셨습니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나’는 매 미사 때마다 지금 내 삶의 근원인 내 생명에 힘을 불어넣어 주시는 예수님을 모십니다. 이 얼마나 큰 은총입니까? ‘나’는 그 은총을 얼마나 깨닫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렇게 큰 은총을 받고 있으면서도 작은 고통과 시련에 불평과 불만을 하고 하느님을 외면하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생명에 대해, 그리고 그 생명을 주신 하느님에 대해 생각하며 살아가는 ‘나’ 자신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생명에 힘을 주는 ‘성체성사’의 은총에 감사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8월 19일연중 제20주일 : 요한 6,51-58
김기환(미카엘)|신부, 두류성당 보좌
51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52그러자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유다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53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54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55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56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57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58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너희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것과는 달리,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위대한 선언문(宣言文)>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주님의 말씀을 들어봅시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이 말씀을 두고 제가 감히 이렇다 저렇다 평한다면, 저는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하던 유다인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주님의 이 말씀을 감히 ‘위대한 사랑의 선언’이라 이름 붙여 봅니다.
‘선언’의 사전적 뜻은 첫째, 널리 펴서 말함 또는 그런 내용. 둘째, 개인 또는 국가나 집단이 자기의 방침, 의견, 주장 등을 외부에 정식으로 표명함. 덧붙여서, 어떤 회의의 진행에 한계를 두기 위하여 하는 말 정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선언문은 듣는 쪽의 생각이 아니라 선언하는 쪽의 생각과 내용을 올바로 알아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입장에서 그분 말씀의 진의(眞義)를 헤아려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라 하십니다. 또 당신의 살과 피를 먹지 않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그저 듣는 쪽에서만 이해한다면,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의 비밀을 홀로 지니고 있다는 것으로, 당신만이 구원의 유일한 문이라는 것으로 묵상이 그쳐버릴 것입니다. 물론 틀린 묵상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의 편에서 그 말씀을 헤아려 본다면 더욱 깊은 성심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의 성심을 헤아려 봅시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 몸과 피를 내어주십니다. 당신 존재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우리를 위하여 내어주십니다. 추수한 밀을 맷돌에 갈아 밀가루로 만들어 빵을 만들 듯, 주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살이 찢어지고 뼈가 부서지는 고통으로 만든 영원한 생명의 빵을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귀한 것을 우리는 값없이 ‘받아 모시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빵은 먹으면 좋고 안 먹으면 그만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받아먹어서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원하십니다. 그것이 ‘내어 주시는’ 주님의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주님의 위대한 선언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내어 주시는’ 분의 이 간절한 마음을 ‘받아 모시는’ 우리가 몰라서는 안 됩니다. 또한 그 고귀한 사랑을 소홀히 여겨서도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편에 서서 그분의 마음을 가장 잘 알아야 합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8월 26일 연중 제21주일 : 요한 6,60-69
이영승(아우구스티노)|신부, 범물성당 보좌
60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말하였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61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의 말씀을 두고 투덜거리는 것을 속으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
62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
63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64그러나 너희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이며 또 당신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것이다.
65이어서 또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너희에게 말한 것이다.”
66이 일이 일어난 뒤로,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67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다.
68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69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정말 팍팍한 세상이군요!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예수님 말씀대로 살기에는 세상이 너무 팍팍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살고 싶으면서도 손해만 보는 것 같은 건 싫고 또 마음 따뜻한 사람이고 싶지만 너무 쉬운 사람이 되는 것도 싫어서 우리는 늘 갈팡질팡할 때가 있기 마련이지요. 그뿐만이 아니라 내 상황이 어려워지면 하느님께서는 따뜻한 위로의 말씀보다 오히려 따가운 채찍을 더 많이 내려주시는 것만 같아 늘 마음 한쪽이 시리기까지 합니다.
그래도 기억합시다!
하지만 이것만은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머리로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고 우리의 가슴으로는 완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분을 우리는 믿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이지요. 만약 내가 다 알아들을 수 있고, 내가 다 받아들일 수 있는 분을 우리가 믿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그분에 대한 믿음을 쉽게 잃어버릴 것입니다. 왜냐하면 더 이상 알아갈 것이 없고 더 이상 받아들일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그분에게서 어떤 것을 바랄 마음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혹시 이것만 놓아버리면?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을 따르던 이들은 생명의 빵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여 예수님을 떠나가 버렸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는 그 양식을 스스로 포기하고 만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순간들은 우리에게도 찾아옵니다. 우리도 삶의 많은 순간들 속에서 신앙만 포기하면 더 나은 삶이 펼쳐질 것만 같은 유혹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 더 마음이 편해질 줄 알았는데, 어려움만 커지는 것 같아 그냥 하느님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오는 것이지요.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신앙을 포기하고 하느님을 떠난다고 해서 우리 삶의 어려움들이, 우리 삶의 고통들이 저절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보다도 더 극심한 고통과 어려움들에 직면해야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도 그분이 계십니다, 여러분!
여전히 나에게만 불공평한 것 같고, 여전히 나에게만 눈물을 쏟게 하는 분이 하느님 같지만, 그래도 나를 먼저 생각하고 계시고 그래도 나를 가장 사랑하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우리가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떠나면 잊힐지 모르지만,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는 떠나면 떠날수록 더욱 가까이 계심을 느끼고 잊으려 하면 할수록 더욱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하고 물으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이 대답했던 것과 같이 우리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해보면 어떨까요?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하고 말입니다.
하느님을 떠나서는 우리의 삶이 결코 더 나아지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힘들어도 곁에 있는 것이 우리에게는 더 유익합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힘들게 하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