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아이들아 안녕! 오늘도 수고가 많았다. 저녁은 먹었니?지금쯤 배 많이 고프겠다. 씻고 또 책상에 앉았겠지.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왔는데 기분은 어때? 봄비가 참 많이 내리는 밤이구나. 아침부터 바람이 불고 잿빛 하늘이더니 마침내 시원하게 비가 내리고 있네. 얼마나 좋은지…. 난 비를 참 좋아해. 비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가라앉고 차분해지면서 평화를 찾는 것 같아. 괜히 모든 것을 용서하고 싶고, 누군가에게 편지도 쓰고 싶고, 밤새 좋은 생각들을 하며, 이 느낌을 간직하고 싶어.
늦은 밤이지만 너희들을 생각하면서 원두커피도 한잔 끓여 마시면서 한껏 분위기 잡고 있어. 커피 향 가득한 방에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무반주 첼로 곡도 함께 어우러져 참 기분 좋은 밤이야. 원래는 앙드레 가뇽의 음악을 듣고 싶었는데, 이사하면서 CD를 잃어버렸나봐. 너무 너무 아쉬워 내일 새로 하나 사야겠어.
얼마 전에 벚꽃이 정말 예쁘게 폈던데, 혹시 구경했니? 난 처음으로 밤 벚꽃을 봤는데 너무너무 아름다웠어. 꼭 하늘에서 눈이 내려 나무 전체를 하얗게 만든 것 같았거든. 유채꽃도 너무 예쁘게 폈더라. 아마 그 시간에 너희들은 책이라는 엄청난 상대와 대결을 하고 있었을 거야. 때론 책이나 공부보다 야외에 나와서 바람도 느껴보고, 꽃도 보고 아름다운 색깔로 어우러진 자연도 품어 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봐.
하지만 지금은 그것도 사치라고 생각하겠지. ‘조금만 참자, 이제 일년만 아니 몇 개월만 참자.’라고 하면서 이 악물고 모든 것을 포기하겠지. 어쩌면 그것이 더 현명한 판단이고, 이성적이라 생각 할 수도 있을 거야. 나도 생각이 나네. 고등학교 때 어떤 선생님께서 수업하시다가 “야, 너거들 힘들제? 하지만 조금만 참아라. 지금 바짝 해놓으면 평생이 즐겁고 편할 수 있고, 지금 놀면 평생 후회하며 살끼다.”하신 말씀.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씀이었는데, 한편으론 공부가 나의 모든 것을 행복하게 해 주는 방법밖에 안되나 하는 생각도 했어. 어쩌면 선생님 말씀이 맞는 부분도 있어. 이 세상은 학벌이 우선시 되고 소위 좋은 대학, 명문대학을 나와야지 뭐 좀 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근데 모두가 일등을 할 수 없는 게 사회의 순위 구조인데 일등만이 행복하고 출세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니까 그것이 문제인 것 같아. 일등과 행복은 반드시 등식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데 말이야. 그리고 행복한 삶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일등은 한 명밖에 없잖아.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해. 가끔은 지금 이 순간 각자가 행복을 찾는 연습을 하면 좋겠어. 공부하다가 하늘도 한번 쳐다보고, 푸른 나뭇잎들도 바라보고, 창가에서 봄바람을 온몸으로 느껴보면 어떨까 하고 말이야.
난 전에 너희들이 늦은 밤에 집으로 돌아갈 때 ‘조금 있다가 보자.’ 라는 말을 듣고 마음이 많이 아팠어. 내일 보자가 아니라 조금 있다가 보자는 말은 매일매일 하루만 사는 사람들 같았거든. 하루 밤을 자야지 또 내일이라는 시간을 맞이하는데 매일 자정을 넘기면서 공부하는 너희들이 너무 안타까워 보였어. 학교를 나서면 교문 앞에 독서실 차와 학원 차가 기다리고 있고 그곳에 기친 몸을 또 실어야 하는 너희들이 꼭 기계 같아 보이기도 했어. 집에 돌아오면 한 시, 두 시 그러면 씻고 또 책보고 잠시 눈 붙이고, 새벽에 학교에 와서는 정신 못 차리고 책상에 엎어져 있는 모습이 너희들이잖아.
영 교시와 자습 때문에 아침도 제대로 못 먹고 와서 쉬는 시간마다 달려가는 매점, 완전히 먹기 전쟁이지. 10분간의 여유가 허기진 배를 채울 수는 없겠지만 즐거운 시간인 것 같더라. 점심 종이 울리면 교복 치마 오른쪽이나 윗주머니에 꽂은 반짝이는 숟가락, 젓가락은 너희들의 행복 도구처럼 보이더라. 달려라 식당으로….
햇볕을 못보고 밥 먹고 와서는 바로 앉아서 공부하고 그 책상에 엎드려 잠자고 하니까 얼굴은 하얗고 스트레스성 비만과 변비, 속 쓰림 등으로 몸의 건강은 엉망이 되는 것 같더라. 하지만 때론 그 책상에서 미래를 꿈꾸며 살아가는 너희들의 학창시절 모습이 아름다울 때도 있어. 또래 친구들과 수다도 떨고, 가끔 교정을 거닐며 정의와 인생의 참된 의미를 얘기하는 진지함은 너희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겠지.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 중에 하나일 거라고 생각해.
사실 이 편지를 쓰는 이유는 너희들에게 조금이라도 사과하기 위한 마음 때문이야.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구조와 교육환경에 희생당하고, 몸과 마음과 영혼이 건조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지. 그러나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너희들이 바로 희망 자체이기 때문에 어른들은 그 희망을 보고 살아가기도 한단다.
학교생활을 하다가 보면 어려운 일, 힘든 일, 짜증나는 일들도 많을 거야. 때론 공부 때문에, 친구 때문에 부모님 때문에, 이성문제 때문에 나를 괴롭히기도 할 거야. 그럴 때마다 의지할 수 있는 분을 소개해줄까! 바로 예수님이야. 우리에게는 가장 큰 힘이 되는 분 예수님이 계시잖아.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힘들어 넘어졌을 때 손을 내밀어 붙잡아 일으켜 세워주시고, 지쳐 있을 때 우리를 업고 가야 할 길을 걸어 가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잘 살 수 있고 우리에게 힘이 될 것 같아. 예수님께서는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에게 힘이 되어 주실 거야. 또 우리가 고통과 시련을 겪을 때도 그것을 이겨 나갈 수 있는 힘과 지혜도 함께 주시니까 걱정 할 것 없다고 생각해.
특히 예수 성심 성월을 지내고 있는 이번 달, 넓고 인자한 예수님의 성심에 나를 온전히 내어 맡기고 살아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예수님의 마음은 항상 우리를 향해 계시니까 말이야. 너희들 혹시 가수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노래 아니? 나는 그 노래를 참 좋아해. 곡도 좋지만 가사가 너무 좋고, 특히 제목이 정말 멋지지 않니? 이 세상에 그 어떤 아름다운 것과 예쁜 것이 있다고 해도 사람보다 더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없어. 그리고 그 중에서도 너희들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사랑 받아야 할 소중한 사람들이야. 자신감과 자부심을 갖고 살기를 바래. 그 어떤 것도 너희들을 힘들게 하지 못할 거야. 예수님의 성심으로 항상 밝은 마음 간직하길 신부님이 기도할게.
주님, 이 세상 아이들을 지켜 주십시오.
그들이 힘들고 지쳐 있을 때 당신 손길을 내밀어 주십시오.
그들이 외로울 때 당신 함께 해 주십시오.
그들이 넘어졌을 때 당신이 일으켜 주십시오.
그들이 어둠을 헤매고 있을 때 당신이 밝은 빛을 비추어 주십시오.
그들이 정의와 사랑에 목말라 있을 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당신
께서 길을 열어주십시오.
주님, 당신 성심을 통해 아이들이 행복하게 해 주십시오.
웃음을 주시고 편안함을 주십시오.
희망을 갖게 해주시고, 세상을 사랑하는 눈을 갖게 해주십시오.
주님의 성심에 오늘도 우리의 삶을 봉헌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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