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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오 신부의 영화이야기
야곱 신부의 편지(Letters To Father Jacob, 2009)


조용준(니콜라오)|성바오로수도회 신부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환난을 겪을 때마다 위로해 주시어, 우리도 그분에게서 받은 위로로, 온갖 환난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2코린 1,4)
 

‘웰빙’이라는 단어가 한때 유행이었다면, 요즘 시대를 대표하는 단어는 ‘힐링’, 즉 ‘위로와 치유’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진정한 위로와 치유는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위로를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눌 때 그 위로와 치유는 개인적인 것을 넘어 공동체와 함께 하게 된다. 위로와 치유와 관련된 영화 〈야곱 신부의 편지〉를 소개한다.

12년간 종신형을 받고 복역 중이던 레일라는 갑자기 사면을 받게 되고,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야곱 신부에게로 보내진다. 레일라의 역할은 야곱 신부에게 기도를 부탁하기 위해 온 편지들을 읽어주고 대신 답장하는 일이었는데, 야곱 신부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귀찮게 생각한다.

어느 날 야곱 신부에게 더 이상 편지가 오지 않게 되고 야곱 신부는 이에 낙심하며 자신의 역할이 끝났음을 안타까워한다. 야곱 신부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해 레일라는 거짓으로 편지가 왔다고 하며 그를 불러내고 편지 내용을 거짓으로 꾸미려다가 자신의 과거를 야곱 신부에게 털어놓는다. 야곱 신부는 레일라의 언니가 끊임없이 편지를 보내왔음을 알려주며 레일라 언니의 편지를 그녀에게 전해주고 세상을 떠난다.
 

눈이 보이지 않는 야곱 신부의 삶은 아주 단순하다. 사람들의 편지를 받으면, 그 편지를 읽고서 기도하며 성경을 인용한 위로의 편지를 써주는 것. 건강한 다른 사제들처럼 성사를 거행할 수도 없고, 사람들을 찾아 나설 수도 없지만 그의 역할은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하느님의 위로와 치유를 전해주는 분명한 표징이다. 그렇지만 그는 누군가의 도움없이는 그 역할을 할 수가 없다. 눈이 보이지 않기에 스스로 사람들의 편지를 읽거나 답장을 써줄 수가 없다. 레일라는 감옥이 아니라 야곱 신부를 돕는 이 역할로 초대된다. 야곱 신부의 답장이 얼마나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답을 줄 수 있는지 그 가치를 알지 못한 채 말이다.

사람들의 편지를 받고 그들에게 답장을 써 주는 것을 하느님께서 맡기신 역할이라고 믿었던 야곱 신부에게 더 이상 편지가 오지 않음은 사형선고와 같은 것이었다. 하느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그 역할을 해왔음을 고백하는 모습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분명한 의문을 던진다. 그런데 이 영화는 여기서부터 진정한 화해의 과정을 시작하게 한다. 야곱 신부의 절망은 결국 레일라가 마음을 열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레일라가 야곱 신부를 기쁘게 하기 위해 가짜 편지를 읽어 주려다가 자신의 어두운 과거인 “언니와의 관계”를 고백하게 하고, 그 고백은 이 모든 사건의 시작에 레일라 언니의 편지가 있었음을 알게 한다. 야곱 신부가 마지막으로 레일라가 그녀의 언니와 화해하도록 편지를 전해주는 것은 그가 답장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주었던 화해와 용서의 완성이었다.
 

신앙인으로서 자신의 어려움과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하느님의 위로를 간구하고 그 은총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하느님의 위로에 기뻐하기는 하지만, 그 위로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을 위해 함께 쓰여야 함을 잊고 살 때가 많다. 나의 기쁨과 내 이웃의 슬픔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야곱 신부를 통해서 레일라가 위로와 치유를 받고, 레일라를 통해서 야곱 신부가 위로와 치유를 받은 것처럼, 하느님의 위로와 치유는 그 도움이 필요한 이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주고 받음으로써 공동체의 화해와 일치로 나아가는데 큰 역할을 한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 안에서 발견하는 개인주의적 신앙생활의 갈등과 반목은 이러한 하느님의 위로와 치유를 나눔으로써 극복이 가능할 것이다.
 
 
 

* 터닝포인트
- 레일라가 떠나려고 하다가 다시 사제관으로 돌아오는 장면 (1:13:54~1:17:42)

야곱 신부를 성당으로 인도한 레일라는 체념하는 야곱 신부의 모습에 실망해 사제관으로 돌아간다. 돈을 챙기고 택시를 불러 떠나려는 레일라는 막상 택시에 탔지만 갈 곳이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 다시 사제관으로 돌아온다. 레일라는 낙심하며 자살을 시도하려다가 갑자기 돌아온 야곱 신부의 모습을 보고 그만둔다. 이후 레일라는 야곱 신부를 더 이상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적극적으로 그를 도우려고 한다. 야곱 신부를 도우려는 그녀의 시도는 결국 자신의 속마음을 고백하게 하고, 자신의 사면과 관련된 비밀, 즉 레일라의 언니의 편지의 요청을 알게 된다.
 

* 생각해 볼 수 있는 주제들
- 신앙인으로서 주위의 위로가 필요한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적극적으로 도우려고 하는가?
- 나의 기도 주제는 무엇인가? 내 자신과 가족만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가?
- 화해하지 못하고 있는 형제자매들이 있는가? 그들과 화해하기 위해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