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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마음으로 세상보기
신앙과 자유


정인용(바르톨로메오)|주교대리 신부, 제3대리구장

머리 아픈 철학적인 말들보다는 그냥 신앙 안에서 발견하는 자유와 삶의 여유에 대해서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신앙이 무엇인지는 다들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몇 마디를 덧붙이자면, ‘하느님을 믿음’이고, 이것은 신뢰이고 의탁(依託)함을 뜻합니다. 자유는 뜻이 좀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자유의 개념을 정리하기도 그렇고, 또 그러기에는 지면도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자유는 아무렇게나 자의(自意)에 따라 행하거나 본능을 맹목적으로 따르면서 책임을 벗어 버리는 방종(放縱)과는 완전히 다름을 잘 아실 겁니다. 무신론적 실존 철학자들은 하느님께 대한 신앙이 인간의 자유를 소외시키고 인간을 하느님께 예속(隸屬)시키는 것으로 말합니다. 모리스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Ponty)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인간은 자기의 삶을 스스로 박탈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 존재는 자기의 삶을 영점(零點)에서부터 기획할 수 없고 투명 위에서 그려낼 수는 없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닙니다. 인간이 텅 빈 허공에 떠있는 존재라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몸도 지구라는 든든한 바탕이 받쳐주고 힘들게도 하지만 중력이라는 적당한 힘이 잡아주기 때문에 나름대로 자유롭게 움직이고 싶은 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공중에 떠 있는 존재라면 바람이 부는 대로 나부낄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나를 받쳐주고 붙들어주는 바닥이 불안정하고 요동을 치면 우리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그저 불안하고 거기에 매달리기 급급할 뿐일 겁니다.

우리를 받쳐주는 가장 든든하고 변함없는 바탕(진리)은 하느님뿐입니다. 하느님은 내가 ‘나’인 것보다 더 근원적으로 ‘나’자신인 분이십니다. 내가 ‘나’인 것도 ‘나는 내가 있노라.(야훼)’ 하신 그분께 바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하느님께서 언제나 사랑으로 우리를 끌어당겨 주시기 때문에 그 위에서 우리는 각자 나름의 삶을 자유롭게 펼쳐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의지하지 않으면, 하느님을 떠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든지 아니면 세상의 다른 것들에 매달릴 수밖에 없게 됩니다. 즉 돈이나 권력이나 향락입니다. 이런 것들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거나 해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노예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런 것들은 요동치기 때문에 더 불안하고 더 매달리려고 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자유를 빼앗겨 버리고 삶의 여유도 찾을 수가 없게 되어 버립니다.

인간이 자유를 잃으면 인간성의 상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각박하게 세상을 살다가 마침내 매달리고 의지했던 것이 깨어지게 되면 그 존재는 끊임없는 나락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경제적으로는 풍요롭지만 행복지수는 아주 낮은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굳이 아니더라도 돈에만 너무 매달리지 말아야 할 터인데 말입니다. 

비록 우리 사회가 경제위주의 사회라고는 하지만 많은 신앙인이 또한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럽습니다. 신앙은 돈벼락을 내려주는 요술방망이도 아니고, 로또에 당첨되게 해주는 어떤 것도 아니고 재테크의 기막힌 방법도 아닙니다. 그러나 신앙을 통해서 인생의 참다운 자유와 여유로움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그야말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우리 자녀들이, 젊은이들이 신앙을 통해서 하느님과 하느님의 사랑을 바탕으로 삼고 그 위에서 자유롭게 용기있고 자신감을 가지고 두려움 없이 나름대로 자신의 삶을 굳건히 일으켜 세우도록 이끌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복음 8장 3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