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지도부’에서 연락이 왔다. 지도를 받고 있던 민수가 선생님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없어졌다고 한다. 부모님이나 선생님들께 혼이 날까봐 지레 겁을 먹고 달아났나 보다. 얼마 후 집 근처 게임방에 있던 아이를 부모님께서 찾아서 데리고 오셨는데 중학교 때부터 걱정을 끼친 민수 때문에 속이 다 탔다고 하시는 민수 어머니의 얼굴이 민수보다 더 어둡다.
살아가면서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왜 없겠는가. 큰애가 소장(小腸)에 생긴 궤양 때문에 수술을 받고 병원에 누웠을 때는 나도 도망치고만 싶었다. 난치성 질환이라는 ‘크론병’이 얼마나 고약한 병인지 수술 후 2개월 가까이 장(腸)을 비우다시피 해도 잘 낫지를 않자 큰애도 나도 지쳐가고 있었다.
힘들 땐 기도하라고 남들에겐 참 쉽게도 이야기하곤 했다. 미사 전례 중 해설을 맡을 때면 주님 말씀, 주님 은혜를 더 가까이서 접하는 것 같아 얼마나 가슴 설레며 기뻐했던가. 그런데 신앙이라고 믿었던 그 모든 것들도 힘든 상황 앞에서는 걱정부터 하고, 원망부터 하며 주님으로부터 떠나 도망을 다녔다. 그런 나의 주저앉음은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서야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교만했습니다.” 그렇게 눈물로 기도하며 무릎을 꿇었을 때 주님은 가장 먼저 손을 잡아 주셨다.
요즘 학교에서는 체벌 대신 생활지도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그런데 민수처럼 잘못에 대한 꾸중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큰애의 아픔도 내가 잘못한 무언가에 대한 주님의 따뜻한 나무람이었으리라. 그런데 그 나무람이 싫고 무서워 도망치던 나 또한 벌이 무서워 달아났던 민수와 다를 바가 없다.
기세등등하던 무더위도 힘을 잃어가고,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매미 소리도 하루하루 잦아들 듯이 시간이 가면 민수도 걱정 끼치는 일이 줄어들 것이라는 내 위로에 민수 어머니가 결국 눈물을 쏟으셨다. 엄마의 눈물이다. 모든 부모들은 이렇게 자식들의 마음이, 혹은 몸이 아플 때 더 가슴이 아프다.
주님은 우리가 당신을 찾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두 아신다. 우리들이 아플 때 더 아프신 분이 주님이시다. 그러기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말하노니”라고 하시며 ‘진실로’라는 말을 반복하시지 않는가. “나를 찾아 헤매라!”라고 부르 시는데도 내 안의 교만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주님 곁에서 달아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그 방황이 너무 길어지기 전에 돌려 세워 품어 주시는 분 또한 주님이시다.
퇴원한 뒤 공부를 다시 시작한 큰애가 그동안 걱정을 끼쳐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이젠 괜찮다면서 오히려 엄마의 건강을 염려하는 문자를 보내왔다. 별 탈 없다는 큰애의 말이 그저 고맙기만 하듯이 주님께서도 우리들이 잘 지내고 있다는 말을 들으시면 얼마나 흐뭇해하실까? 늘 돌봐 달라고 보채기만 하는 우리들의 청원 때문에 ‘별고(別故)’ 많으신 일상을 잠시만이라도 내려놓고 쉬셨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나도 주님께 그리운 안부 한 줄을 문자로 띄운다.
“주님! 덕분에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잘 계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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