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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향기를 찾아서 - 20년 째 한티순교성지에서 벌초하는 본당사무직원회 회원들
우리는 신앙의 상속자


취재|박지현(프란체스카) 기자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득명리에 위치한 한티는 가산과 팔공산 사이에 위치하며, 가산에서 동쪽으로 7km 떨어진 깊은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해발 600m가 넘는 이 산골은 박해 때 교우들이 난을 피해 몸을 숨긴 곳이요, 처형을 당한 곳이며, 그들의 유해가 묻혀있는 대구대교구의 순교성지이다. 그곳에는 모두 37기의 묘가 있는데, 그 중에서 4기만 신원이 밝혀졌으며 나머지 33기는 무명 순교자의 묘지이다.

해마다 명절이 다가오면 후손들이 조상의 묘를 찾아 벌초하는 것처럼 대구대교구 본당사무직원회(회장 : 김동국 요셉, 담당 : 박석재 가롤로 신부)의 회원들은 순교자들의 후손이라는 마음으로 벌써 20년째 한티순교성지에서 벌초를 하고 있다.

본당사무직원회의 김동국(요셉, 월성성당 사무장) 회장은 벌초봉사를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1993년 본당사무직원회 피정 중에 신동성당의 전교회장과 사무장을 오랫동안 해 오신 마백락(클레멘스) 회장님께서 한티순교성지의 역사와 그곳에 묻혀있는 순교자 묘에 대해 설명해주시면서 다 같이 벌초를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다. 갑작스러웠지만 다 같이 정성껏 벌초를 했고, 이제는 본당사무직원회의 연례행사로 자리잡게 되었다.”

순교자 성월을 잘 맞이하자는 의미로 해마다 8월 마지막 주 월요일에 실시하는 한티순교성지의 벌초봉사는 참여 인원이 점차 증가하여 올해는 다섯 개 대리구에서 80여 명이 함께했다. 본당사무직원회의 지선일(이냐시오, 대덕성당 사무장) 총무는 “‘벌초대장’이라 불리는 동촌성당 김재수(바오로) 사무장님의 지휘에 따라 대리구별로 구역을 나뉘어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벌초했다.”면서 “일의 능률을 높이고자 대리구별로 제초기를 준비했지만 묘의 크기와 모양이 워낙 제각각인 탓에 기계를 사용할 수 없어 손으로 직접 해야 하는 곳도 적지 않다.”고 들려주었다.
 
 
37기의 순교자 묘가 한티 곳곳에 넓게 위치하고 있어서 하나하나 찾아다니면서 벌초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김동국 회장은 “‘신앙의 상속자’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그동안 교회 안에서 일하면서 받은 은총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자 봉사하고 있다.”면서 “벌초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의 기분은 쉽게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기쁘고 뿌듯하다.”고 했다.

지선일 총무는 “벌초하는 날이 되면 갈까 말까 심각하게 고민하지만 한결같이 꾸준히 봉사하시는 사무직원들 생각에 13년째 한티로 향한다.”면서 “제초기 다루는 솜씨가 수준급인 선배사무직원들 옆에서 이것저것 도와드리면서 보람있는 시간을 보낸다.”고 하였다.

 
벌초를 끝낸 사무직원들은 한티 피정의 집에서 정성껏 준비한 점심식사를 한 뒤 개인 또는 대리구별로 십자가의 길을 하면서 14처를 묵상한다. “벌초를 할 때마다 박해받는 순교자들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뜨거워진다.”는 김동국 회장은 “한티에는 다른 곳과 달리 등을 베인 상처를 입고 죽은 이들이 많다고 한다. 갑자기 들이닥친 군사들이 도망가는 사람들을 뒤에서 창이나 칼로 공격한 것이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가족들은 시신을 제대로 거둘 정신도 없이 사람이 죽은 그 자리에 묘를 만들다보니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이고 한티 곳곳에 넓게 위치하게 된 것”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지선일 총무는 “순교자들이 살던 모습을 재현해 놓은 한티의 초가집을 보면서 ‘천주교가 무엇이기에 저렇게 작은 집에서 여러 명의 식구가 숯이나 옹기를 만들어 힘들게 생활하면서도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했을까?’라고 생각하며 그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김동국 회장은 “이번 취재를 통해 사무직원들은 ‘유급봉사자’라는 시선을 벗어나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대구대교구 본당사무직원회에서는 해마다 봄이 되면 사무직원들의 단합을 위해 성지순례를 기획하고 있으며, 11월에는 피정과 연수 겸 총회를 마련하여 사무직원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모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