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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나이롱 신자, 얼마나 좋을까


전응열, 이상윤

독자마당 ①
나이롱 신자
전응열(도미니코)|불로성당

성당에서 말씀뽑기 중에 제가 뽑은 성경말씀은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라는 말씀입니다. 10여 년 전 저는 생각도 하기 싫은 암이라는 병의 방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암은 곧 죽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아프면 병원에서 치료받고 수술해야 할 병이면 수술을 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의 뜻입니다. 그러나 당시 의약분업 반대시위가 극에 달해서 진료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검사도 한 달 정도 걸렸고 암 진단 후 수술 일정을 정하는 데도 한 달이 넘게 걸렸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죽음이라는 공포를 안고 ‘암환자 수술시기 놓쳐 위험하다.’는 TV 뉴스를 보며 마음을 졸이는 일뿐이었습니다.
살아오면서 행한 선행을 열거하라면 얼른 떠오르는 일은 없지만 그렇다고 몹쓸 악행을 저지른 일도 선뜻 생각나는 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련이 왜 하필이면 나에게 왔으며, 내 인생의 단막은 여기까지인가?’라는 생각에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저도 모르게 주르륵 흘러 내렸습니다. 아내와 둘이 손잡고 병원 정원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재수 없는 놈, 이럴 때 꼭 병 난데이.”라고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무척이나 재수가 없는 놈 중의 한 놈이었나 봅니다.
수술 후 우리 부부는 언제나 함께 다녔습니다. 퇴원해서 요양하는 동안 아내가 그림자처럼 저와 동행하며 모든 일의  손발이 되어 주었습니다. 공기 좋고 운동하기 좋다고 생각되는 현재의 집으로 이사를 온 어느 날 아내가 “당신 아파서 수술할 때 당신 살려 달라고 하느님께 얼마나 매달려 기도했는지 모른다.”고 말했을 때 가슴이 뭉클하였습니다. 그 당시의 절박했던 순간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 갔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고마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래, 내가 원기회복만 하면 당신이 그렇게 원했던 성당에 함께 가마.”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세례 후 주일이면 성당에 가고, 집에 오고하는 것이 매번 반복되는 주일의 일상이었습니다. 교회의 교리와 전례를 잘 모르는 저로서는 별 재미도 없었고 흥미도 없었습니다. 더구나 습관화 되지 않은 기도를 한다는 것이 민망하고 부끄러웠습니다. 한 마디로 저는 나이롱 신자였던 것입니다.
그랬던 제가 언제부터인가 주일이 마냥 즐겁고 기다려집니다. 제 의지로 성당에 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저에게 덤으로 생명을 주시고 교회로 인도까지 해주셨음을 깨닫는 순간 저의 가슴은 뜨겁게 달아 올랐습니다. 인간은 생명을 주신 하느님께 찬미와 찬송을 바쳐야 하는 것이 도리입니다. 저는 지난해 연말부터 성가대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하느님을 더 가까이 모시고 찬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언제나 마음의 여유와 평화를 가질 수 있게 해주신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드리며 하느님의 신비를 깨우치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그 죽음이 나와는 직접 관계가 없고 다른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일인 것처럼 망각하고 살아갑니다. 헛되이 보낸 오늘 하루가 어제 죽은 이들이 그토록 소망하던 내일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예수님께서 겟세마니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너희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 하여라.”고 하신 말씀(마태 26,41, 마르 14,38, 루카 22,40)을 따라 생을 마감하는 마지막 날에 주님의 자녀로서 후회없는 삶이 될 수 있도록 주님을 찬양하며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이제 제 삶은 제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제 안에 사시기 때문에 하느님을 영원히 따르는 질기고 질긴 나이롱 신자가 될 것입니다.(* ‘나이롱’의 표준표기는 ‘나일론’이지만 글쓴이의 느낌을 살려 나이롱으로 표기하였음을 밝힙니다.)


독자마당 ②
얼마나 좋을까 이상윤(가롤로)|시인, 죽전성당

나 이 세상 올 때
아무런 준비도 없이 왔다가
이렇게 한평생
눈물 나게 살았으니

갈 때는
그냥 꽃 지듯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잎의 잎도 모르게
줄기도 모르게
가지와
뿌리도 모르게

그러다가 마침내는 기어이
제가 꽃인 줄도 잊고
아주 영영 저도 모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