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어깨는 처져 있었고 얼굴은 무표정했으며 대답은 거의 단답식이었다. 원래 과묵하고 감정을 잘 드러내는 편은 아니었지만 집을 떠나 대학을 가고 나서는 더 대화할 기회가 없었다. 법학과에 진학하고부터 사법 시험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던 아들은 시간이 갈수록 앞이 보이지 않는 컴컴한 동굴 속에 갇혀있는 듯 보였다.
기대가 컸던 만큼 아들의 장래도 뜻대로 잘 되리라 믿었다. 곧 시험에 합격할 것 같은 마음이 조금 기다리면 언젠가 되겠지 하다가 세월이 갈수록 불안해졌다. 청춘을 다 바쳐 열심히 해도 성공하지 못한 고시 낭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애써 평상심을 유지하던 마음이 주체할 수 없이 무거워졌다. 아들 또래의 남녀가 다정히 손을 잡고 가는 것을 보면 울컥 슬픔이 밀려왔다. 배낭을 메고 여행을 다니는 젊은이들의 모습에도 가슴이 아려왔다.
불 꺼진 성당에 홀로 멍하니 앉아 있는데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아들이 감당해야 할 상실감과 불안감에 나는 어떤 도움과 위로의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힘과 용기를 가지라는 말도 거듭되는 실패에 공허하다는 걸 서로 잘 알고 있었다.
학원에서 돌아온 아들을 붙잡고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계속 미련을 가지다가는 취업을 할 기회조차 놓쳐 버리니 방향을 바꾸는 게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지 그건 너의 판단에 맡기지만 우리는 네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고 했다. 아들은 마지막으로 로스쿨로 방향을 바꾸어 시도하면서 회사에도 취업 원서를 내겠다고 했다.
두 가지 길을 동시에 시도한 아들은 슬럼프에서 벗어난 듯 오히려 활기가 있어 보였다. 손 놓고 있었던 영어 공부에도 매달렸다. 좋아하던 과목이라 그런지 우울해 보이던 얼굴이 밝아 보였다.
아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따뜻한 밥과 기도뿐이었다. ‘주님, 우리 아들 토마스 모어를 예쁘게 봐 주시고 사랑을 베풀어 주십시오. 다만 주님 생각대로 해 주십시오. 어떤 길을 가든지 그건 모두 주님의 뜻입니다.’
고시 준비만 해왔던 아들에게 기업은 생각보다 쉽게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여태껏 해왔던 공부와는 상관없이 처음부터 새롭게 준비를 해야 하는 로스쿨 역시 힘들게 넘어야 할 산이었다.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닥쳐와 내가 공연히 아이를 더 힘들게 하는 건 아닌지 두려워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또 기다려 주는 것과 기도뿐이었다.
아들이 먼저 합격한 건 회사였다. 기쁜 마음으로 준비해서 보냈던 신입사원 연수도 거의 끝날 즈음 로스쿨 합격 발표가 났다. 선택의 문제를 놓고 우리 부부는 또 다시 고민을 하였다. 아들이 이제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가기를 원했고, 취업을 포기하고 두꺼운 법전과 또 다시 씨름해야 한다는 게 선뜻 내키지 않았다. 연수 중에 있는 아들과 자정이 다 되어서야 연락이 되었다. 조심스럽게 물어보는데 아들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였다. “어머니, 저 로스쿨 가겠습니다. 이건 아마도 하늘의 뜻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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