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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생일잔치?


김철재(바오로)|주교대리 신부, 제5대리구장

  어떤 본당 신부님이 생일을 맞이하여 기쁨을 함께 나눌 사람들을 초대하였습니다. 초대받은 지인들은 본당 신부님이 자기들을 기억해 주심에 흐뭇하였습니다. 생일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그날이 오기 며칠 전부터 흥겨워서 신부님께 들려줄 축하 노래를 연습하였고 각자 나름대로 성의껏 생일선물도 준비하였습니다. 드디어 신부님의 생일날, 잔치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은 서로서로 생일의 기쁨을 나누고 인사하면서 선물을 주고 받았습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해피 버스데이 투 유!” “축 생일!” 그러나 정작 생일을 맞은 주인공인 신부님에게는 생일축하인사를 하는 사람도, 선물을 주는 사람 하나 없었습니다. 그냥 생일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끼리만 생일축하인사를 하고 생일선물을 주고 받으며 생일노래를 부르고 생일음식을 먹고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본당 신부님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황당한 상황이겠습니까? 본당 신부님의 생일잔치에서 본당 신부님이 소외된, 참으로 이상한 생일잔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위의 상황은 꾸며진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생일잔치의 주인공이라면 어떤 기분이겠습니까? 그러면서 이런 이상한 생일잔치가 실제로 있을 수 있겠는가, 여기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상한 생일잔치가 해마다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무려 2000년 동안이나….

12월 25일은 바로 크리스마스이고 세상의 모든 사람이 즐거운 축제를 지내는 날입니다. 해마다 12월이 되면 사람들은 들뜬 마음으로 성탄절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상가에서는 흥겨운 캐럴이 울리고 성탄 트리가 휘황찬란하게 반짝입니다. 이 축제일을 즐겁게 보내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 존경하는 분, 지인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합니다. 필리핀 같은 나라에서는 10월부터 무려 3개월 동안이나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고 트리를 만들며 성탄 선물을 마련하기 시작합니다.

성탄은 예수님이 태어나심을 기념하는 날, 바로 예수님의 생일입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의 탄생이 주는 즐거움을 누리는 데만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정작 성탄절, 바로 생일의 주인공이신 예수님께 선물을 드리거나 예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은 사람들의 안중에 없는 듯합니다.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이 초대받고 즐거워하는 예수님의 생일 잔칫날에 사람들은 서로에게 축하인사를 하고 선물을 나누지만 주인공이신 예수님께 축하카드나 선물은 드리지 않습니다. 생일 잔칫날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은 철저히 소외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일에 예수님은 아니 계시는 듯합니다. 이것은 마치 초상집에 가서 한참 동안 울고 나서 “죽은 사람이 누구냐?” 하고 묻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금년 성탄에는 예수님께 생일을 되찾아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을 성탄절의 주인공으로 모시고 예수님께 선물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번 대림절에는 그분이 받아서 기뻐하실 선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준비하는 시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성탄의 의미는 하느님께서 겸손하게 당신 자신을 낮추어 오셔서 당신의 품위를 사람들에게 베풀고 참 생명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자신보다 낮은 지위의 사람이나 자신보다 가진 것이 적은 이웃에게 선물을 베풀어야 할 것입니다. 자기보다 높은 지위의 사람이나 자기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에게 베푸는 선물은 진정한 사랑의 선물이 아니라 상거래나 아부가 됩니다. 자신을 낮추어 남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이 대림절 기간 동안 나보다 지위가 낮고 가진 것이 적은 사람에게, 나에게 되돌려줄 능력이 없는 이들에게 베풀고 나 자신을 낮춤으로써 남을 돋보이게 해주는 겸손의 실천이 있다면 예수님의 생일에 드릴 좋은 선물이 될 것이고 예수님을 진정한 성탄절의 주인공으로 모시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