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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성탄을 맞으며
하느님의 문패 ‘경천애인(敬天愛人)’, 그 뒷이야기


강금숙(글라라)|김천 평화성당

2011년 성탄전야! 제 들뜬 마음을 주저앉히기라도 하듯 저의 발등이 찍히는 일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마침 그날은 남편 프란치스코 사베리오의 ‘경천애인 메주자’ 봉헌날로, 드디어 평화본당 각 교우 가정에 성탄 선물로 나눠 드리기로 한 날이어서 몹시 기쁘고 흥분된 상태였다고 할까요. 그런데 웬일이었을까요? 저를 가라앉히고 주저앉히는 일이 생긴 것입니다. 정말 우연처럼 그것도 저에 대한 사랑만 있었을 남편에게서-기다란 폐목을 같이 마주 들다가 놓쳐버린-말입니다. 저희 집은 나무보일러입니다. 그날 밤, 집안을 좀 더 따뜻하게 해놓고 성당에 가려고 굵은 나무를 자르려다가 그만….

저는 그런 중에도 성탄전야미사에 참석하지 못하면, 성탄절미사를 놓친 것 같은 생각에 엄청나게 부어오르는 발을 싸매고 성당으로 향했답니다. 통증이 대단하였습니다. 그런데 성당 안에 들어서는 순간, 제대 앞에 꾸며진 구유를 보며 저는 기쁨과 환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구유 장식들 사이에 탄생하실 아기예수를 맞으러 나온 것 같이 큰 팻말 ‘경천애인’(평화성당 사무실에 걸기 위해서 큰 현판으로 만듦)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발등의 아픔도 잊고 감사의 감사가 저절로 솟구쳤습니다. 지난 9개월 동안 남편의 수고로움과 저의 응원까지 그 모든 것이 파노라마처럼 한순간 스쳐가더군요. 감격스런 미사를 마치고 1000개의 메주자가 교우들의 각 가정마다 골고루 귀하게 나누어지는 모습을 보며, 또 미사 중에 주임신부님께서 들려주신 메주자-성당마루의 의미와 메주자의 의미-이야기에 교우분들의 감격도 컸으리라 봅니다. 저는 그분들의 수고와 관심에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2012년 부활절까지 꼬박 걷지 못하는 앉은뱅이 생활을 해야 했고,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는 절면서 다듬다듬 걸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걸을 수가 없으니 하던 식당도 운영할 수 없게 되었지요. 그러자 자연스레 “쉼”이 시작되었습니다. 일상의 모든 것들이 많이 불편하고 답답하였지만 제가 예수님께, 성모님께 배워 온 것, 그것은 “견딤”이었습니다. 조금은 미련스럽다 할 만큼 견디는 일에는 나름 이력이 나 있으니까요.

건강, 경제부분, 생각, 말, 행동 등에서 말입니다. 남들보다 굴곡이 많고 조금은 드세게 살아온 날들에 비로소 “고요함”이 찾아온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다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 것이지요. 그저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신기할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 또한 은총이었습니다. 주저앉아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보니 이것저것 책을 찾아 읽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본당에서 신심서적 읽기가 소공동체 활성화와 맞물려 실시되었어요.


각 반별로 8권의 책을 구입하여(도서는 본당에서 선택) 4월부터 11월까지 반원들이 책을 돌려가며 읽고 독서노트에 정리하도록 권장한 것입니다. 마침 읽을거리를 찾던 저로서는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책 8권을 개인으로 구입한 자매님의 것을 모두 빌려서 한 달 만에 다 읽고 정리를 하였답니다. 그렇게 독서노트에 요점들을 기록하며 참고 될 내용들을 적다보니 책을 되돌려 주어도 그 기록들이 남아있어 더욱 좋았습니다. 또 반장님과 다른 반원들이 저에게 독서노트를 주는 대로 받다보니 7권이나 되었어요. 슬슬 욕심이 나기 시작하여 마음이 가는대로 궁금해 하던 영성서적들을 구하여 읽어가면서 정리를 하다보니 마음도, 정신도 풍요로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기억력도 쇠퇴해감을 통감합니다. 그래도 노트에 기록한 것들을 들추어 보다보면 책에서 읽은 본문들이 떠오르는 효과가 있더군요.

 그래서 책을 보며 ‘이거다.’하는 부분을 더 많이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28권의 신심서적을 읽으며 6권의 독서노트를 다 썼습니다. 노트 1권은 차동엽 신부님의 ‘사도신경’ 평화방송 강의를 받아 적었답니다. 21주간의 강의였지요. 저는 주님께서 “쉼”의 시간에 좋은 일감을 주심에 감사드렸습니다. 일손을 놓고 한심스러워 할 그 시간을 제가 보람있고 알차게 보낼 수 있었음에 감사드리고 ‘신심서적 독서노트 7권’을 보면 귀하고 부자가 된 느낌입니다.


 모든 독서에서 얻은 결론적인 저의 생각은, 내가 이웃에게 무엇을 알려야 할 것인가? 또 그들도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에 동참하도록 일깨워야 한다는 것, 그것은 결국 ‘선교’였습니다. 아직은 말 주변도, 다가감에도 익숙하지 못한 저이지만 그동안 읽은 신심서적과 성인·성녀들의 삶, 그리고 그들이 지향했던 가르침을 마음 깊이 되새기며 제가 그 누구와 마주하게 될 때면 그때그때 필요한 이야기들을 기억하게 될 것 같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각별히 관심가지시며 측은하게 여기시는 대상들, 귀머거리, 말 못하는 이, 눈 먼 이들…. 그곳에 꼭 절름발이가 함께 있더군요. 하느님과 씨름하다 엉덩이뼈를 다친 성조 야곱의 절름발이. 결국 형 에사우의 동정심을 불러 일으켰다는 전화위복의 이야기. 한편으로 저의 다리절음은 주님께서 무엇을 준비시키시기 위함일까, 하고 자주 묵상해봅니다. 그저 모든 것을 선으로 이끄시는 그분께서 잘 이끌어 주시리라 저는 믿고 또 믿을 뿐입니다. 제가 다시 성한 걸음걸음을 걷게 되더라도, 아니 이 상태를 계속해 가더라고 지금의 이 시간들은 정말 소중한 부분으로 남게 되겠지요.
 

“당신께 빌어야 할 일, 당신 안에 찾아야 할 일, 당신께 두드려야 할 일이오니, 오직 이럼으로써 받아지리이다. 얻어지리이다. 열리리이다.” - 성 아우구스티노의 《고백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