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11월 5일(토)은 보령 화력발전소에서의 업무를 마치고,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을 만나러 고향인 포항으로 가는 날이었고 마침 휴무였습니다. 그런데 출발을 하려고만 하면 발주처에서 안전에 관련된 서류를 요구해오는 바람에 늦게까지 업무를 보게 되어 아내에게 이번 주에는 내려가기 힘들겠다는 전화를 해야 했습니다. 할 수 없이 그날은 직장 근처 숙소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인 11월 6일(이 날은 결혼기념일이기도 함) 대천성당에서 주일 교중미사에 참례한 후 순교자들의 모후 레지오 단원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 숙소로 가기 위해 승용차를 운전하여 주교삼거리를 지나는데 마침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안면이 있는 청년(나중에 한전식당 경영자의 동생이라는 것을 알게 됨)이 있기에 청년을 앞자리에 태워 함께 숙소 쪽으로 향하였습니다. 마침 초겨울이라 그런지 날씨도 약간 쌀쌀했고 비도 부슬부슬 내리고 있어 히터를 틀고 운전을 하며 가던 중이었는데, 1차선 도로에다 굽이굽이 휘어진 도로를 운전하며 모퉁이를 돌아가는 순간 차는 순식간에 1차선을 넘어 반대편 차선으로 진입, 낭떠러지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의식불명이었는지, 아니면 어느 순간 의식이 없다가 다시 정신이 들었는지 아무튼 제 몸의 자세는 거꾸로 된 채였고, 바른 자세로 하고 보니 평소 목에 착용하고 있던 성모님의 기적의 패가 제 눈앞에서 흔들리는 것을 잠시 보고는 또다시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얼마 후 승용차에서 빠져 나오긴 했는데 어떻게 빠져 나왔는지 기억도 없이 그저 혼미한 상태로 엉금엉금 기어 도로에 올라서니 어떤 빨간색 승용차가 저를 발견하고는 보령종합병원으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얼마 후 저는 의사선생님께 조수석에 동승한 청년은 어떻게 되었는지 여쭤보았습니다. 의사선생님께서 “청년은 무사히 살아있고 어깨쪽만 살짝 다쳐 치료 중”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안도의 숨을 쉰 후 “살아 있다니 정말 다행이다.” 하고 감사의 기도를 바쳤습니다. 그러고 나니 비로소 제 몸 어디가 아픈지, 상처가 있나 없나, 또 뼈는 부러졌는지 안 부러졌는지를 살펴보게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온몸에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하여 바로 숙소로 돌아와서 하루를 더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전화를 해서 사고경위에 대해 알아보니 보험회사 측에서 사진촬영을 한 후 승용차를 견인해야 한다며 견인차를 불러 사고장소로 간다고 했습니다. 현장에 가서 보니 낭떠러지 아래에 있는 자동차는 망가진 채로 거꾸로 뒤집혀져 있고 견인되는 차를 지켜 본 회사 직원들은 저더러 “어떻게 차에서 빠져 나왔느냐?”며 ‘기적의 사나이’라고까지 했습니다.
결국 제 승용차는 폐차를 시켜야 했고 동승했던 청년에게는 보약을 지어 먹도록 돈을 건네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고 후 어머니께서 많이 편찮기 시작하시더니 1995년 5월 26일 임종을 맞으셨습니다. 돌아가신 후 1년째 되는 날 기제사를 지내고 음복을 하는데 누님께서 저에게 “너 승용차 사고 났을 때 엄마가 꿈 이야기를 들려 주셨는데 네가 ‘찌그러진 차에서 빠져나오는 장면이 운전석 쪽 유리창으로 싹 빠져 나오는 모습’이라고 하시며 ‘얘가 혹시 자동차 사고를 당한 것이 아닌가?’하고 걱정하셨다.”는 이야기를 해주시는 거였습니다. 저는 다시금 하느님께 감사 또 감사를 드렸습니다. 아마 제가 생각하기로 원죄 없으신 동정성모 마리아께서 하느님께 전구하시어 저를 구해주신 것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그때 복되신 동정녀께서 제게 말씀하시기를 ‘이 모양을 본 따서 패를 만들어라. 이 패를 축성 받아 몸에 지니는 이는, 특히 목에 거는 이는 큰 은총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성녀 카타리나 라부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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