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공동체 복음나누기 자료제공 : 교구 성서사도직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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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일 대림 제1주일 : 루카 21,25-28. 34-36.
김동진(제멜로)|성정하상성당 보좌신부
25“그리고 해와 달과 별들에는 표징들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바다와 거센 파도 소리에 자지러진 민족들이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26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27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28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34“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리고 그날이 너희를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
35그날은 온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들이닥칠 것이다.
36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개인의 종말의 때를 준비하고 살자!
저는 아직 젊고 튼튼한 편이라 특별히 건강을 챙기지 않는 편입니다. 때때로 행사들이 많으면 조금 무리를 할 때도 있지만…. 몇 달 전의 일입니다. 본당일 때문에 조금 과도한 신경을 쓴 다음날 아침, 갑자기 가슴에 통증이 있었습니다. 검사 결과 아무 이상이 없는 걸로 밝혀졌지만 통증이 꽤 오랜 시간 지속되자 저는 하느님께 속으로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주님! 아직 저 할 일이 많이 남았는데요.’그런 일이 있고 난 뒤에 선배 신부님들의 말씀이 새삼 떠올랐습니다. “잠을 잘 때는 꼭 잠옷을 입고 자고, 방 정리도 늘 잘 해두고….”등등. 늘 언제 떠나도 괜찮도록 준비를 하고 살라는 말씀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대림 제1주일 복음은 종말에 관한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구원하고 심판하실 궁극적 종말의 때는 알 수 없지만 개인에게 있어 종말이란 바로 죽음을 이야기합니다. 종말론적인 신앙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결국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고 우리의 현세적 삶도 언젠가는 끝이 나고 만다는 것을 견지하고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죽음을 늘 준비하고 살아갑시다. 너무 아옹다옹 하지 말고 언젠가는 모든 것을 놓고 가야 한다는 것을 늘 생각하고, 내가 오늘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 주님께서 마지막 날에 상급을 내려 주신다는 것을 희망하고 살아갑시다. 예수님의 성탄 대축일을 준비하는 대림절 기간 대림 제1주일 복음의 예수님 말씀 중에 루카 21장 28절의 말씀을 선물로 드리고 싶습니다.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고 어려움 속에서도 종말의 때를 준비하며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신앙인들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종말의 때를 준비하는 대림시기를 맞으시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아멘.
12월 9일대림 제2주일 : 루카 3,1-6.
이동철(대건안드레아)|구암성당 보좌신부
1티베리우스 황제의 치세 제십오년, 본시오 빌라도가 유다 총독으로, 헤로데가 갈릴래아의 영주로, 그의 동생 필리포스가 이투래아와 트라코니티스 지방의 영주로, 리사니아스가 아빌레네의 영주로 있을 때,
2또 한나스와 카야파가 대사제로 있을 때, 하느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즈카르야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다.
3그리하여 요한은 요르단 부근의 모든 지방을 다니며,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4이는 이사야 예언자가 선포한 말씀의 책에 기록된 그대로이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5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
6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오늘 복음은 짧은 편입니다. 그 구성도 ‘역사적인 시기의 제시’와 ‘세례자 요한의 활동의 핵심 소개’라는 단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짧은 복음의 묵상을 통해 두 가지 중요한 신앙적 내용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역사적인 시기의 제시
3,1에서는 당시 유다와 그와 가까운 시리아의 통치자들의 이름을 기준으로 그 시기를 제시합니다. 우선 시리아의 황제였던 티베리우스의 통치 연대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그리고 유다로 들어와서 당시 유다의 총독이었던 빌라도의 이름을 거론합니다. 그리고 더 구체적인 지역으로 들어가서 갈릴래아를 다스렸던 헤로데의 이름을 거론합니다. 그리고 갈릴래아 주변의 이교도 지방을 다스렸던 필리포스와 리사니아스의 이름을 거론합니다. 이를 통해 루카복음서의 복음사가가 이 복음서를 통해 복음을 선포하고자하는 대상을 알 수 있습니다. 루카복음서의 복음사가는 인류의 구원을 위한 예수님의 탄생을, 생애를, 수난을, 죽음을, 부활을 담은 이 복음을 유다인들뿐 아니라 그 둘레에 있는 여러 이교도들에게도 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복음이 이제는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이곳에도 전해진 것입니다.
네 복음서 중 특히 루카복음서의 여러 곳에서 유다인들뿐 아니라 다른 민족들을 염두에 둔 표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복음은 우리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에게만 전해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의 구원사업의 정점인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활을 준비했던 인물입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받으라고 외쳤습니다. 구원에 있어서, 즉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하느님의 뜻에 맞춰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세례자 요한은 그 사실을 사람들에게 외쳤던 것입니다.
대림 제2주일입니다. 우리는 성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탄을 기다리는 이유는 우리에게 결정적으로 구원을 선포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드리고 그분의 말씀에 따라 회개하고 우리에게 다가온 하늘 나라를 바라보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먼저 회개하고 또 나의 회개하는 삶을 통해 세례자 요한처럼 내 주변에 하늘 나라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하늘 나라는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성탄을 준비하는 대림시기에 우리가 해야 할 일 중 하나일 것입니다.
12월 16일 대림 제3주일 : 루카 3,10-18.
김기환(미카엘)|두류성당 보좌신부
10군중이 그에게 물었다. “그러면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11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이에게 나누어 주어라.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
12세리들도 세례를 받으러 와서 그에게, “스승님,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자,
13요한은 그들에게 “정해진 것보다 더 요구하지 마라.” 하고 일렀다.
14군사들도 그에게 “저희는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요한은 그들에게 “아무도 강탈하거나 갈취하지 말고 너희 봉급으로 만족하여라.” 하고 일렀다.
15백성은 기대에 차 있었으므로, 모두 마음속으로 요한이 메시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다.
16그래서 요한은 모든 사람에게 말하였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신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17또 손에 키를 드시고 당신의 타작마당을 깨끗이 치우시어, 알곡은 당신의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 버리실 것이다.”
18요한은 그 밖에도 여러 가지로 권고하면서 백성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문(門)이신 예수 그리스도님! 당신의 거룩한 강생(降生)과 재림(再臨)을 기다리는 저희의 영혼이 기쁨 중에 항상 깨어 기다리며 희망하고, 회개하게 하소서.
“대림시기는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참 하느님이신 성자께서 동시에 참 사람이 되시어 인간의 역사(歷史) 안으로 온전히 개입하심을 기념한다. 그러므로 이 대림시기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신비와 세상의 마지막 날 재림하실 주님의 구원 신비를 항상 함께 기억해야 한다. 그리하여 이 지상에서 순례자의 삶을 살아가는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완성된 구원을 ‘이미’체험하면서, 심판관이요 구세주로서 주님이 영광스러이 다시 오실 때 완전히 드러날 구원, 우리 안에서 완전히 실현될 구원을 기다리며 살아가게 된다.”- 참조. A. Bergamini, 전례학 사전, 대림시기, 김인영 역
주님, 복음의 군중이 했던 질문을 오늘 이곳의 저희도 당신께 다시 여쭙게 됩니다. 당신의 오심(Advent)을 기다리는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시는 당신을 어떻게 기다리면 좋겠습니까? 또 동시에 마지막날 영광스러운 심판자요 구세주로 오시는 당신을 어떻게 기다리면 좋겠습니까?
복음서는 세례자 요한의 말을 전해줍니다. 세례자 요한은 이미 어머니 엘리사벳의 태중에서 당신의 오심을 기다렸고, 광야에서 당신의 현현(顯現)을 기다렸으며, 마지막 날 주님의 심판을 내다보고 기다린 사람입니다. 그러니 저희와 요한은 똑같은 것을 기다리고 있으며, 요한의 지침을 마음에 새기는 것이 합당하다 여겨집니다. 세례자 요한의 지침은 이러합니다.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이에게 나누어 주어라.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 정해진 것보다 더 요구하지 마라. 아무도 강탈하거나 갈취하지 말고 너희 봉급으로 만족하여라.”
주님! 저희 마음은 갈등하고 있습니다. 옷을 두 벌 가졌지만, 혹시나 한 벌이 해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남은 한 벌을 가난한 이에게 나누기를 주저합니다. 오늘 내일 먹을 것은 겨우 있지만, 모레 걱정에 또 주저하고 맙니다. 당장 가진 것으로 만족하고 싶으나, 손에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침범하여 마음이 허무해져 버리기도 합니다.
도래(渡來)하시는 영광의 주님이시여! 당신께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저희의 마음을 채우시어, 이 세상의 걱정과 허무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이 땅의 사라질 것을 찾지 않고, 하늘의 영원한 것을 바라게 하소서. 저희의 나약한 마음을 당신 성령의 불로 제련(製鍊)하시어, 이 땅과 하늘에서 당신 타작마당의 알곡을 일구는 도구가 되게 하소서. 마지막으로 바라오니, 당신을 기다렸던 세례자 요한의 겸손을 저희에게 일깨워 주시어 당신을 향한 회개의 발걸음을 걸으며 세상에 선포하게 하소서. 아멘.
12월 23일 대림 제4주일 : 루카 1,39-45.
사공병도(베드로)|동촌성당 보좌신부
39그 무렵에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40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41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42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43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44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45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오늘 또 다시 성령 아버지와 함께하는 우리의 여정이 시작되려 합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이끄신 이곳은 2000년 전 이스라엘의 어느 한적한 길 가, 우리는 엠마오로 향하는 두 제자 앞에 나타나셨던 예수님을 그리며 천천히 발걸음을 떼어 봅니다. 얼마나 걸었을까요? 갑자기 초라한 행색의 소녀 하나가 종종걸음으로 우리 옆을 스쳐 지나갑니다. 열다섯 살, 열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연약한 소녀가 홀로 어딜 그리 급히 가는 것일까? 낯빛이 어두운 것을 보니 결코 좋은 일은 아닌 듯합니다. 우리는 걱정스런 마음으로 그 아이의 걸음을 따라잡아 봅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한참을 우물쭈물 하던 소녀의 입이 열리고 우리는 놀라운 이야기를 듣습니다. “제가 천사를 만났어요.”
그 소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이 천사를 봤고, 천사가 자신에게 곧 잉태하여 하느님의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말을 전했으며, 자신이 그것을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하면서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어린 너에게 그게 가능이나 하냐?”며 반신반의해 하자 소녀는 자신도 처음에는 그랬다며, 하지만 천사가 나이 많은 친척의 잉태소식을 전해주면서 하느님께는 불가능이란 없다고 말했다며 자신의 사정을 토로합니다.
이즈음 되자 자연스레 소녀의 배로 눈길이 갑니다. 저 초라한 소녀의 조그마한 뱃속에 세상을 구원할 위대한 왕이 자라고 있다니…. 이 놀라운 사실이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확신에 차 흔들리지 않는 소녀의 눈빛을 배신할 수 없어서 한 번 믿어보기로 합니다. 이렇게 저 소녀의 뱃속에 구세주가 자라고 있음을 믿고 나니 이젠 여러 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저 아이 이제 어떻게 하지?’, ‘몰래 숨어서 아이를 낳아야 하나?’, ‘혹시 사람들에게 들켜 돌에 맞아 죽게 되면 어쩌지?’ ‘그러니 서둘러 도망가고 있었구나.’ 겨우 얻은 구세주를 잃을까봐 걱정이 앞섭니다. 그래서 조심스레 소녀에게 묻습니다. “숨어서 낳아 기르기 위해 도망가던 중이신가요?”
우리의 질문에 소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자신은 자신이 만난 천사와 천사를 보내신 하느님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러기에 어떠한 위험에서도 그분이 구해 주시리라 믿기에 요나처럼 또는 엘리야처럼 도망치지는 않을 거랍니다. 하지만 자신도 인간인지라 그 순간에 놀랍게도 “예!”라고 대답하기는 했지만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 점점 커지고 있답니다. 그래서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픈 심정에서 불가능함이 없는 하느님의 능력을 보고자 늘그막에 아이를 가졌다는 그 친척을 만나러 가는 중이라는 것입니다. 소녀가 왜 그리도 멀고도 험한 길을 가녀린 몸으로 서둘러 가고 있었는지 이제야 이해가 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실 분께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또 소녀의 이야기에 대한 진실을 확인하고픈 마음에서 친척이 있다는 에인카림까지 함께 걸어가기로 합니다.
오랜 걸음들이 이어져 소녀와 우리는 마침내 친척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소녀와 만삭이 된 소녀의 친척이 반갑게 마주합니다. 모든 사정을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한 친척의 첫 인사말이 온 사방에 울려 퍼지고, 그제야 여정 내내 근심이 어려 있던 소녀의 얼굴에 화사한 빛이 맴돕니다.
빛, 소녀의 얼굴에서 발하는 그 빛은 비단 소녀에게만이 아니라, 마주 서 있는 소녀의 친척과 그 뒤에 서서 두 여인의 만남을 지켜보고 있는 우리들의 마음속까지도 가득히 채워줍니다. 지금 여기에는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구세주가 지금 이곳에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저 어리고 연약한 소녀 안에 계시듯, 내세울 것 없는 우리를 거처 삼아 우리 안에 계십니다. 나약한 우리의 믿음이 자꾸만 그 사실을 잊어버리자, 안타까움에 못 이겨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나타나실 날이 성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니 이젠 우리도 소녀의 친척처럼 기쁨과 감사의 마음으로 말해본다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우리의 응답은 곧 오시는 구세주를 맞이하는 사랑의 외침입니다.
12월 30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 루카 2,41-52.
고태권(그레고리오)|동천성당 보좌신부
41예수님의 부모는 해마다 파스카 축제 때면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다.
42예수님이 열두 살 되던 해에도 이 축제 관습에 따라 그리로 올라갔다.
43그런데 축제 기간이 끝나고 돌아갈 때에 소년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았다. 그의 부모는 그것도 모르고,
44일행 가운데에 있으려니 여기며 하룻길을 갔다. 그런 다음에야 친척들과 친지들 사이에서 찾아보았지만,
45찾아내지 못하였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그를 찾아다녔다.
46사흘 뒤에야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그는 율법 교사들 가운데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
47그의 말을 듣는 이들은 모두 그의 슬기로운 답변에 경탄하였다.
48예수님의 부모는 그를 보고 무척 놀랐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하자,
49그가 부모에게 말하였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50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51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52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랐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하여 갔다.
저희 동천본당은 올해 여름 신앙학교를 한티에서 신동성당까지 20Km 도보로 순례했습니다. 신앙학교가 20Km 도보로 진행된다고 게시되자, 많은 부모님들께서 저와 교리교사 선생님들에게 “선생님! 과연 아이들이 그렇게 많이 걸을 수 있을까요?”, “신부님! 긴급한 상황이 생기면 다른 대안은 있으세요?”라는 걱정과 문의를 통해 관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신앙학교를 준비하면서 많은 본당의 신부님들께 20Km정도면 조금 힘은 들겠지만 아이들이 충분히 걸을 수 있다는 조언을 받았지만, 부모님들의 걱정에 저도 신앙학교를 막상 시작하려니 겁이 나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이런 어른들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 본당의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 주일학교 아이들은 아무 탈 없이 38도를 넘나드는 한여름의 더위를 뚫고 무사히 신앙학교를 끝낼 수 있었습니다. 더 대견한 것은 본당의 중·고등부 고학년 아이들이 다리 아프고, 덥다고 이야기하는 초등학교 아이들을 업어 주고 부채질 해주는 모습을 보며 말은 하지 않았지만 참으로 사랑스럽고 대견하고 고마웠습니다.
신앙학교를 통해, 어른들의 눈에 아이들은 걱정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이들은 믿음의 대상이구나, 하는 생각을 아주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기보다 믿고 묵묵히 지켜봐 주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성탄의 즐거움이 함께 하는 교회는 성가정 축일로 오늘을 기념합니다. 마리아와 요셉에게 순종하시며 가정생활의 모범이신 예수님의 가정을 우리도 본받고 살아가자는 의미를 지닌 날입니다. 요셉과 마리아의 가정이 성가정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중심에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성가정에는 가족 구성원간의 사랑과 믿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가정이란 구성원간의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 가정에서 부모에게 순종하셨던 것, 성모님께서 열두 살 예수님을 잃어버릴 뻔 했던 그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신 일, 끝으로 하느님의 사랑과 사람들의 사랑-총애-속에서 지혜와 키가 자란 예수님의 모습에서 성가정은 믿음 안에서 자리하고 있습니다.
종종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걱정하는 이야길 들어보면, ‘저런 것이 부모의 마음이겠구나. 아이 키우는 건 정말 수도생활과 똑같다.’라는 생각도 들지만 때로는 ‘저렇게 자녀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 아이가 어딘가 마음 둘 곳이 없겠다.’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의 가정은 어떠신가요? 여러분들의 자녀에 대한 믿음, 그리고 부부간의 믿음이 어떠하신지 묻고 싶네요. 서로간의 믿음이 공고할 때 여러분들의 가정은 예수님의 성가정을 닮아가고 있을 겁니다.
올해의 마지막 주일을 지내며, 오늘은 여름 신앙학교 때 저에게 “아이들은 믿음의 대상이에요.”라는 것을 보여준 우리 본당의 듬직한 정우의 모습을 소개하며 마칩니다. 여러분들의 가정이 성가정이 되시기를 기도하며, 2012년 한 해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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