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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마음으로 세상보기
열린 믿음의 문


이용길(요한)|대구대교구 총대리 신부

  

사람이 산다고 하여 집을 장만하고, 문하나 내놓고 들어갔다 나왔다 반복하다가 그 속에서 죽는다. 특히 아파트 생활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웃이 누구인지 알지 못해도 큰 불편 없이 살아간다. 꼭 닫힌 철문 안에는 누가 갇혀 사는지 분간하기 어렵다. 밖에 있는 사람인지, 안에 있는 사람인지…. 그래서 최근에 유행하는 말들 중에는 ‘열린 음악회’니 ‘열린 우리당’이니 하며 열려 있기를 바라는 칭호들이 많다. 닫혀 있기에 열려 있기를 바라는 심정들이라고나 할까.

‘신앙의 해(Annus Fidei)’가 선포되었다. 뭔가 부족을 느끼고 잘못되어 돌아갈 때 강화의 날을 정하곤 하는데, 신앙의 해를 설정하여 반포하게 된 동기도 그러한 점이 없지 않다고 본다. 현대의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 세대들의 경우 인생의 의미 추구보다 재미 추구에 더 쏠려 있는 분위기를 보인다. 그래서 신용카드(Credit Card)는 여러 장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신용, 즉 믿음이 무엇인지는 상관치 않는 듯하다. 또 믿음이 없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우리가 믿음이 없는 삶을 산다면 사랑하는 사이는 어떻게 될까? 『믿음의 문』 14항에서는 “믿음 없는 사랑은 끊임없는 의심(dubium)에 좌우되는 감정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면서 “사랑 없는 믿음 또한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가르친다.

이렇듯 너와 나를 바람직하게 맺어주는 사랑에는 굳건한 믿음이 주추하고 있어야 한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또는 내가 너를 믿는다고 했을 때 상대방을 내 문제 해결의 수단으로 삼는다면 그런 관계는 사랑도, 믿음도 아닐 것이다. “내가 믿는다.(credo)”라는 라틴어는 믿는다는 뜻도 있지만 ‘자신을 맡긴다.’는 뜻이 더 앞선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니케아 -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은 “Credo in Unum Deum!(크레도 인 우눔 데움!)”으로 시작한다. 정식 기도문 번역은 “한 분이신 하느님을 저는 믿나이다!”라고 하고 있는데, 자역(字易)을 하면 “나는 믿습니다!” 또는 “나는 위탁합니다. 한 하느님에게로!”라고도 할 수 있다.


이 같은 결단은 신앙의 절대적인 필요성을 인정하면서, 이 입문(入門)이 평생 동안 이어지도록 여정을 시작하는 것을 뜻한다. 즉 창조주 하느님 아버지를 믿는다고 했을 때 없음(無)에서 있게(有) 된 나는 하느님께서 지음하셨음을 인정한다는 뜻이고, 내가 나서 죽기까지 하느님을 믿으면서 산다는 것은 또다시 없음(無)에로 사라진다는 것이 아니고 나를 지음하신 하느님께로 간다는 것이다. 나의 삶은 그 시작에서부터 하느님께로 향방(向方) 지워져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신앙생활이다.

“믿음의 문은 열리고….” 신앙의 해를 선포하실 때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는 자의교서(Motu Proprio)를 발표하시면서 “믿음의 문(Porta Fidei)”을 시작 말로 선택하셨다. 이 말은 사도행전 14장 27절에 나타나는 말이다. 이 대목의 전후 배경은 선교사로 파견 받으신 바르나바와 사울, 즉 바오로(로마식 이름) 사도 두 분이 선교사가 되어 소아시아 일부 지역을 순방하시면서 포교활동을 한 후, 파견 받았던 지역인 안티오키아로 돌아와 그곳 교우들에게 복음 선포를 하던 중 하느님께서 함께 해주신 일들과 이방 민족들에게까지 신앙의 길-믿음의 문을 열어 주셨다는 생생한 체험을 보고하는 자리에서 나타나는 표현이다.

새해 첫 달을 맞아, 이미 시작된 신앙의 해를 더욱 성실히 살면서 전도된 가치관을 바로 잡고 재미보다는 인생전반을 장악하는 참된 의미를 살려내는 한 해가 되기를 축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