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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정 선생의 교실이야기 2
매일 천상을 맛보는 방법!


이유정(데레사)|계산성당, 대구가톨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무학고등학교

 

사랑에 살고지고
똑똑! 참 오랜만에 이렇게 〈빛〉 잡지의 문을 두드립니다. 설렘과 반가움, 그리고 약간의 두려움이 제 가슴을 콩닥거리게 합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2013년을 〈빛〉 잡지와 함께 첫 페이지를 열게 되어 참으로 행복합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평소 이것도, 저것도 소재가 되겠다며 꽤나 메모를 해 두었는데 막상 글을 쓰려고 하니 아무것도 마음에 차는 것이 없었습니다. 막막함으로 며칠을 지냈습니다. 원고를 마감하는 날 아침까지도 “미사”라는 주제만 잡아놓고 글을 제대로 쓸 수가 없던 저는 괜한 일을 시작했다는 후회를 하며 자책의 늪을 허우적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런 제게 언제나 그랬듯이 또 깜짝 선물을 마련해 두셨습니다.

두 시간 넘게 한 줄도 쓰지 못한 저는 매일 있는 학교 교직원 미사를 드린 후 글을 마무리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쓰던 원고를 뒤로하고 경당으로 향했습니다. 이 미사에서 주님은 풀리지 않던 글 타래에서 줄 하나를 풀어 던져주셨습니다. 마침 그날은 우리학교 교목 신부님의 축일이었습니다. 미사를 드리는 중 교목 신부님께선 강론에서 당신이 학교 신부의 신분으로 가장 기뻤던 일을 생각해보면 경당 앞에 벗어 놓은 신발이 많았을 때, 성체가 모자라 감실에서 성체를 더 꺼내 와서 미사를 계속할 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 오늘처럼 당신의 축일에 초대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선생님들을 하느님 잔칫상에 초대할 수 있어 무척 행복하다는 신부님 말씀을 들으며, ‘그럼, 그런 날 우리 주님은 얼마나 더 행복하실까?’라는 생각을 하며 평소 그렇게 해 드리지 못한 것을 뉘우쳤습니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 육조(六曹) 앞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미사를 마치고 돌아와 컴퓨터 화면을 여는 제 눈에 공교롭게도 이 시가 들어왔습니다. 이 시는 일제치하의 참담한 암흑기를 살아가던 ‘심훈’이란 시인이 조국의 광복만을 간절히 소망하며 자신의 삶을 불태웠던 뜨거운 열정과 의지를 그대로 토해 놓은 ‘그날이 오면’이란 작품입니다. 몇 년 간 고3 국어를 담당했던 저에게 이 시는 늘 익숙한 주제로만 다가오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날 저는 자신의 살가죽을 벗겨서 북을 만들어 치더라도 광복의 그날이 와 주기만을 바랐던 절박하고 간절한 시인의 마음에서 예수님이 떠올랐습니다. 가시관의 고통과 퍼붓는 조롱 속에서도 자신을 버린 인간들이 하늘 나라로 갈 수 있는 ‘구원’ 티켓을 위해 못 박히신 채 우릴 위해 기도하신 우리 예수님! 지금도 하늘나라 주님 곁에서 애타게 이 땅에 하느님 나라가 온전히 깃들길 기다리시는 예수님 또한 얼마나 간절히 “그날”을 기다리실까, 그분의 열렬함은 이것과 감히 비교할 수 없으리란 생각을 하며 저는 그날 이 시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

우리 학교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신자 학생들을 위한 미사가 있습니다. 지금은 화요일 밤에 미사가 있지만 몇 년 전에는 금요일 오후에 미사가 있었습니다. 그 시간에 다른 친구들은 동아리 활동시간이라 대부분 공을 차러 운동장으로 달려 갑니다. 그래서 전 아이들과 싸움하다시피 미사에 가자고 이야기하고 협박 아닌 협박과 애원과 회유를 해야만 했습니다.
 

 

어느 날 복도를 지나가다 미사에 계속 빠지고 있는 2학년 학생 한 명을 만난 저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그 아이를 잡고 미사에 오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제 수업을 받지 않는 그 학생은 매우 불쾌한 표정으로 제 팔을 뿌리치며 한 마디 내던졌습니다. “아씨~! 짜증나게! 쌤, 주말에 미사 했어요! 에이~!” 그 순간 학생의 팔을 잡았던 제 손은 무참하게 내동댕이쳐졌습니다. 울컥하는 마음에 상황을 채 수습하기도 전에 그 학생은 바람소리를 내며 제 시야에서 없어졌습니다. 그 뒤에 몇 번 더 만나 이야기를 나눴지만 자긴 신경 쓰지 말라는 말과 함께 “우리 엄마도 성당에 열심히 다니시는데, 대학 가고 난 뒤에 가면 된다고 말씀드리래요.”라며 차가운 말만 가득 던졌습니다. 졸업 때까지 전 그 학생을 학교 미사에서 만날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마음 한 귀퉁이가 서늘해짐을 느낍니다.

얼마 전 주일미사 중 신부님께서 “여러분, 미사가 무엇입니까?”라고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늘 드리는 미사이면서도 그 순간 잠깐 모두가 조용해졌으며, 제 머린 벌써 교리서에 있는 용어들로 미사를 정의내리고 있었습니다. 연이어 미사는 ‘어린 양의 만찬’이라고 말씀하신 신부님께선 “하늘 문이 열린다.”로 시작하는 요한묵시록 4장 1절을 언급하시며, 미사는 지상에서 만나는 천상예배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렇게 갈망하는 천상, 하늘 나라를 매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미사임을 힘주어 말씀하시는 신부님의 강론을 들으며 저는 그 순간 천국의 시간을 허락하신 하느님께 무척이나 죄송했습니다. 솔직히 전 그 많은 미사를 하면서 “지금 이 순간이 천국이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미사를 드린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미사 참례를 거절했던 그 학생이나 저나 별반 다를 게 없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제대로 맛보지 못한 것은 같으니까요. 그래서 전 2013년 새해 첫 시작에 이렇게 “미사” 이야기로 여러분을 만날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어른들이 용기를 내어 올해는 아이들에게 천국을 맛보게 하는 방법을 힘들더라도 가르쳐 보는 것이 어떨까요? 천상의 잔치가 매일 매일 이 땅 위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는 것을 아는데, 그 귀한 것을 사랑하는 자식에게 주고 싶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현세의 가치에 밀려, 눈앞의 이익(고입, 대입, 취업 등)에 깔려 지금은 저 멀리 내동댕이쳐져 있는 하늘 나라의 잔칫상에 아들, 딸 손잡고 우리 함께해요. 착하신 우리 목자가 자신의 몸과 피를 제물로 마련하고 아프고도 간절하게 “목마르다”를 외치며 우릴 기다리고 계신 그곳! 바로 “미사”에서 영원무궁토록 살아계실 그분께 우리도 경배 드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