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아들에게 쓴 편지
김광고(요한)|가창성당, ‘인자하신 동정녀’ 쁘레시디움 단원
때때로 내가 처음 듣는 단어와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말이 나오면 나와 부대끼며 사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참 자세하게도 설명해준다. 하지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 순간에는 ‘그게 그렇구나.’하며 몸은 이해를 하는데 머리가 나빠 시간이 지나면 점차 희미해지고 만다. 성지순례를 가서도 십자가의 길 기도를 다 바칠 때도 있지만 어느 때는 1처와 14처만 참배하고 돌아오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한심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밉지가 않다.
마음은 청춘인데 얼굴은 미수가 지난 사람으로 보는 사람이 많아서 ‘창파어르신대학’에 반강제적으로 다니고 있다. 이유는 나를 인도한 분이 학장님인 데다가 우리 반을 가르치고 계시는 봉사자 선생님의 의미심장한(?) 눈빛 때문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노인대학으로 시작해서 창파어르신대학으로 개명을 한 뒤 우리의 학장님과 선생님들이 기획으로 내어준 숙제가 편지 한 장 써오기, 아니면 속죄의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짓지도 않은 죄 때문에 굳이 속죄의 기도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그렇다면 ‘편지를 한 장 쓰면 되겠지.’ 싶어서 고심하고 고심한 끝에 나는 경기도 안산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아들을 생각하며 편지를 쓰기로 했다. 그리고 아래 소개하려는 내용이 숙제로 내어준 편지글이다.
“아들아! 아버지는 너를 사랑한다. 물론 네 어머니도 네 누이도 사랑한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어떻게 하면 잘 해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남들보다 우위에 있고 싶었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풍족한 삶을 원했었다. 그러한 것이 족쇄가 되어 얼마나 허황되고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너무 멀리 와 있었다.
정신적인 가치를 무시하고 물질적인 가치에만 기준을 두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세월이 너무 지난 다음에야 깨달았다. 풍요로운 삶을 원했었고 사소한 문제들은 돈이 많으면 자연스레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집착과 집념이 나의 시야를 가려 넓게 보지 못하게 방해하였다. 퇴폐적인 생활과 생각이 발상의 전환을 방해하였고 나아가 자신의 개발과 발전의 기회를 놓치게 하였다.
소수력 발전소와 양어장 사업이 처음에는 잘 되어 가는 듯했으나 결국 끝이 좋지 못하였고, 나의 실패를 남에게 전가하는 우를 범하면서 ‘내 탓이오.’ 라는 평범한 진리를 간과하고 말았던 것이다. 다시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었고, 가치의 전도가 원인이었다 하더라도 재기하기에는 물질적인 면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부질없는 몸부림을 치다가 모든 것이 자기 몫의 크기이고 팔자이며 운명이구나, 하니까 체념이 되더구나. 체념이 되니까 마음의 평화가 왔다.
그런데도 항상 마음 한 구석, 한 공간에 잠재되어 있는 미련이라는 것이 계속 남아있더구나. 해서 아버지는 ‘신앙’이라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천주교’를 바탕으로 한 신앙생활을 하면서 초보 신앙생활에 귀감이 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사귀게 되었다. 사안은 다르지만 앞선 실패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너도 짐작하는 것처럼 집착과 집념에 사로잡혀 마니아가 되는 것을 경계하였고, 즐긴다는 마음으로 임하게 되니까 정말 즐겁더구나. 해탈하였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돈은 넉넉하면 좋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이율배반의 철학이 좀 이상스레 변했지? 아버지는 자식 자랑이 팔불출의 한 부분이라 하더라도 자식이 애비보다 났다는 소리가 항상 나를 기쁘게 한다.
‘청출어람!’ 얼마나 좋은 말이더냐. 항상 이 말을 들으며 살고 싶다. 각설하고 아들아, 이제 너도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 진정에서 우러나는 마음을 담아, 대구에서 아버지가
② 새 미사곡을 들으며 - 무태성당 이상영 신부님의 새 미사곡에 붙입니다.
박미경(율리아나)|지묘성당
기도로
은총의 아침을
열어 봅니다.
음표 하나에
기도 하나를
바치고
말씀 한 구절에
또 하나의
기도를 바치며
지우고
또 지워져 간
믿음
깨닫고
또 깨달은
사랑
보태고
또 보태었을
겸손
제사를 드리는
사제의 기도소리
아름답습니다.
귀가 열리고
가슴이 열리고
입이 열릴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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