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말의 일정 때문에 이 글을 대통령선거 전에 쓰고 있다. 벌써 누군가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것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었든지 나누어진 국론을 통합하고 산적한 국정과제들을 성공적으로 해결해 나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부추긴 탓에 더욱 증폭된 온갖 사회갈등들이 새 대통령의 임기동안 조금이라도 완화되고 줄어들기를 바랄 뿐이다.
경험해 봐서 알듯이 5년의 시간은 아주 짧은 시간이다. 욕심 부리지 말고 대화하고 설득하면서 정책을 추진하고 다음 세대가 좀 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나라가 되는 쪽으로 진전이 있기를 바란다. 다행히 지난 선거기간동안 양쪽의 공약은 차이가 없다고 할 만큼 양극화를 해소하고 서민과 소외계층을 위하는 정치를 약속했다. 그렇게 되어야 하겠지만 그게 어디 그리 쉽겠는가? 단번에 될 일도, 쉽게 될 일도 아니다.
우리는 이런저런 이유로 서로 다른 정치적인 입장을 가지게 되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님의 가르침, 예수님의 정신 앞에선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지지자들인 것이다. 사실 우리는 세상의 통치자에게가 아니라 창조주이시고 구원자이신 분에게 희망을 걸고 있는 사람들이다. 내 힘이 아니라 성령의 이끄심을 믿고 의지하며 보이지 않는 것에 희망을 두고 사는 사람들이다.(로마 8,25) 이사야가 예언한 늑대와 어린양이 함께 어울리는 그런 평화로운 세상이 과연 우리 정치를 통해 실현되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사회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하겠지만 서로를 부정하며 극한 대립을 하는 양대 세력의 틈바구니에서 자칫 신앙인으로서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
현실정치에 대한 견해가 다르더라도 우리 신앙인들이 공통적으로 지녀야 할 자세가 있다고 생각한다. 온유하고 평화적인 말과 행동, 마음가짐이 그것이다. 원하는 것을 얻는 과정에서 우리의 마음이 황폐화되어 버린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세상을 얻고도 자기를 잃어버리는(루카 9,25) 그런 경우가 될 것이다. 하느님의 마음과 공명하고 은총의 세계를 감지하는 우리의 마음이 강퍅해지고 모질어지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험한 말들과 단죄하고 조롱하는 말들에 우리의 마음이 오염되고 전염되지 않도록 보살피는 노력은 육신의 건강을 지키는 노력보다 더 중요하다. 보복하지 않고 선으로 악을 대적하는 자세야말로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아닌 건 아니라고 해야 하지만 분노가 우리의 마음을 유린하도록 허락하지 말아야 한다.

신앙의 해이다. 우리 각자의 신앙이 과연 무엇인지, 그 신앙이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는지 되돌아볼 좋은 기회다. 그리고 그 신앙이 내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 살펴볼 일이다. 예수님은 당신께서 우리에게 평화를 주고 가시는데 그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고 하셨다. 우리 마음의 평화가 세상의 조건에 기초하고 있다면 우린 예수님의 평화를 누리지 못할 것이다.
풍랑 가운데서도 주무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감히 흉내 내지 못하더라도 세상의 조건과 변화에 크게 휘둘리지 않는 새옹지마의 새옹을 좀 닮아갈 순 있지 않을까? 새옹이 인간지혜의 경지를 보여준다면 우리는 그를 능가하는 하느님의 사랑과 섭리의 결정체인 십자가의 신비, 십자가의 지혜를 선사받았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은 아니니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를 간직하고 살자. 온유함을 잃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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