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음…아니요…아니요.(우리나라에는 안 그래요.)…우리는 길 가다가 부딪히면 먼저 큰소리 쳐요. 그러면 그 사람 가만있어요. 안 그러면 나한테….(내가 당해요.)” 이건 또 뭔 소리? 자기 성격이 괴팍한 것을 자기나라 민족성이 그렇다고 주장하면서 자기나라 식으로 살겠다고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는 S는 완전 안하무인격?
그러면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어허이! 내가 어디 그 나라를 안 가봤나! 그 나라만큼 좋은 나라도 없던데?” 실상은 그 나라 옆에도 못 가봤으면서 이렇게 이야기 꼬리가 터지면 미주알고주알 다 나온다. 영어로 했다가 급해서 말이 안 통하면 바디랭귀지(body language)로. 사실 다 못 알아 들으면서도 다 알아 듣는 척, 말하는 그 소리보다 말하고 있는 그 아이 감정에 나를 몰입시키고 동조해 준다.
“(배를 만지면서) No~No~예…밤에 No~아침 No~(배가 아파요…밤에도 아팠고 아침에도 아파요.)” “그럼, 배가 한번 아프면 며칠 길게 가는 거야. 근데 이렇게 하면 괜찮아질 거야.”
미술치료로 접근한 S는 아직 단어 정리가 잘 되지는 않지만 자신의 감정 표현은 올망졸망 눈망울을 굴리면서 애잔함을 보내는 우리 아이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아직 한국이라는 큰 틀에 자신의 작은 가슴을 녹여 내리기는 이르지만 한발 한발 다가서는 데는 한 치의 모자람이나 부족함이 없다. 문화와 관습이 달라 무척 적응하기 힘들어 하면서도, 배움을 향한 열정에는 한국인 못지않은 강한 의지와 인내심을 가지고 있다.
S는 주변의 모두를 힘들게 하는 성격이라 급기야는 기숙사 퇴소설까지 났지만 그 아이도 머나먼 한국까지 와서 적응하기에 얼마나 많이 힘들까 싶어 상담을 하고, 바로 미술치료와 행동치료로 성격인지도와 행동심리상태를 함께 풀어 나가고 있다.

단순히 해외 청소년들이 문제를 발생시키는 가장 중요한 실마리를 푸는 데는 그다지 오랜 치료회기가 필요치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국적을 망라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첫째는 누군가와 터놓고 이야기 하고 싶은데 그것이 마음대로 안 될 때 문제를 일으킨다. 마치 어린아이처럼…언어의 장벽이 높이 가로막고 있어서 힘든 것도 있지만 실상 그 아이들과 소통하는 것은 언어가 아니라 마음의 소통이 앞서야 한다. 마음의 소통은 진정한 사랑이 밑거름이 되지 않으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마음의 소통은 결코 베푸는 이들이 심취되어 있는 만족도가 아니라 해외 청소년들이 마음 깊은 곳에서 사랑 받고 있음을 체감할 때 국적을 초월한 사랑으로 통교되는 것이다. 이 단계에 이르면 적응 불가했던 요인들도 어떤 해결점을 찾게 되고 홀로서기와 자아이상을 실현하는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갈구하는 참신한 학생 본연의 자세로 서 있게 된다.
아, 바벨탑의 비운이여…언어는 통하지만 뜻과 의미가 잘 통하지 않아 웃음을 자아낼 때도 정말 많다. 중국학생이 은행에 갔을 때 안내하는 아저씨가 “어떻게 왔어요?”라고 물었더니 “음…어…나 버스 타고 왔어요.”라고 한 적도 있고, 카자흐스탄 학생이 버스 타고 가다가 차가 흔들리면서 옆 사람 발을 밟았는데 한국인이 너무 아파 소리치면서 인상을 쓰는데 쌩긋이 웃으면서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에고고~그때는 “미안합니다.”라고 해야지. 우짜겠노, 이 바벨탑의 비운을….
둘째는 음식 적응이 잘 안 되어 섭식만족도가 떨어질 때 모든 것을 짜증과 화로 대체시키는 현상이 일어난다. 아무래도 우리나라 청소년의 식성보다는 해외 청소년들의 식성이 고기에 대한 선호도가 높고 필요량도 많다. 식단에 나오는 고기의 양으로는 어림도 없다. 가끔씩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숯불갈비식당으로 대거 출동을 하면, 기함을 할 정도로 고기 판을 비워낸다. 20명 정도 가서 100인분을 훌쩍 넘게 먹을 때도 있다. 그래도 생기 있는 모습으로 고기를 굽는 아이들을 보면 예쁘기만 하다.
한국 고유의 명절인 한가위를 맞아 한국 학생들이 모두 고향집으로 휑하니 날아가 버린 뒤 우리 외국인 아이들, 고국이 그립고 가족이 그리운 아이들, 그렇다고 중앙아프리카, 캄보디아, 볼리비아, 케냐, 나이지리아, 카자흐스탄, 중국, 앙골라, 일본, 러시아, 미국, 영국으로 달음질쳐 갈 수야 없지 않은가!
“헤이, 다들 모여 봐! 우리 한국 한가위는 말이야. 끙…윷놀이부터 팽이 돌리기, 오자미 넣기, 재기차기, 투호 던지기 등등 우리 전통놀이를 신명나게 해 보자꾸나.”
우리는 몸살이 날 정도로,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답게 뛰어 놀았다. “오~예! 한국 재미있어요. 나 대회 나가고 싶어요.” Oh my God~! 꿈도 야무지기는….
대구가톨릭대학교에는 약 500명 정도의 해외 청소년이 우리나라 청소년들과 어울려 함께 공부하며 생활하고 있다. 어른들의 틀과 관습에 박힌 자세보다 우리 아이들은 더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자세로 서로가 서로를 받아 안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웃으며 나누는 삶을 살고 있다.
“우리는 높이 날아오르고 싶어요.” “왜?” “우리나라 아직 못살아요. 내가 많이 배워 훌륭한 사람되면 우리나라에 가서 좋은 일을 하고 싶어요.”
가톨릭, 보편적인 교회이자 만민들의 교회인 가톨릭, 가톨릭인이기에 더욱 가톨릭인답게 오늘도 우리 아이들과 함께 나의 주님이신 아빠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드린다. 오늘도 우리 아이들과 함께 하늘엄마 성모님께 관심과 도움을 청한다. “아빠, 하느님, 이 아이들이 당신만을 바라보며 자신의 꿈을 키울 수 있게 함께 해 주소서.”
우리 모두는 다 알고 있다. 아빠 하느님 나라는 사랑의 실천이 지름길인 나라인 것을. 우리 주위에는 해외 청소년들이 너무도 많이 산재해 있다. 그들도 똑같은 우리의 아들, 딸임을 기억하고 지금 한번 그들을 향해 고개를 돌려보자. 그들의 눈빛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그들의 손, 발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우리 모두가 큰 관심을 가지고 지켜 주어야 할 일이다. 우리 모두가 큰마음으로 그들을 품어 안아 주어야 할 소명이다.
내 아들, 딸들이 이루고자 하는 3000년기에는 그들과 함께 더 큰 희망과 축복이 열매로 맺어지고 언어의 소통이 막힌 바벨탑의 비운이 성령 강림으로 일치를 이루듯 온 누리가 아빠 하느님 안에서 하나로 일치된 진정한 하느님 나라가 건설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해외 청소년과 우리 한국 청소년들은 이렇게 손에 손을 맞잡고 성장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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