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내린 하얀 눈을 보면 포근하고 여유로운 상상 속에서 나는 생의 기쁨으로 오늘 하루 감사 기도로 시작한다. 부산한 아침 출근길에 종종걸음을 치는 이웃들을 생각하면 괜히 여유로움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말이다. 한데 눈이 내리는 오늘 아침은 왠지 34년 전 대명성당을 찾았던 지난 일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내 결혼 초반의 생활은 궁핍하였고 서로의 성격 차이로 나의 의지와는 전혀 다른 궤도로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나의 배우자를 도우며 아이들을 위해 조촐하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면서 살았다.
학창시절 화가의 꿈으로 이젤을 들고 스케치 길을 누비며 그림을 그리던 내 처녀적의 주체할 수 없었던 낭만과 추억을 가슴에 묻어둔 채 힘겨운 삶 속에서 윤택하고 여유있는 생활만을 간절히 소망하던 나는 대명성당을 찾았던 것이다. 그런 나에게 수녀님은 매일 교리시간마다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고 하셨다. 절박한 심정으로 성당을 찾은 나에게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며 거부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열심히 교리공부를 마쳤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믿고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을 것이다.”(마태 21,22) 이 말씀 안에 “믿고 청하는 것은 다 받을 것이다.”는 그 말씀이 인간구원을 내포하고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청하는 것은 다 받을 것”이라는 그 말씀만 쉽게 생각하고 오직 하느님께 의지하여 나의 소망을 이루고 싶었던 강렬한 욕구를 위해 성당을 찾았던 것인데, 어찌 감사의 기도를 할 수가 있었겠는가. 괴롭고 고통스러운 나에게 ‘감사’는 낯설기만 하였던 어느 날 ‘아!’ 나는 감탄사를 외쳤다.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는 내 주변의 군중들 속에서 내가 아직 건강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서야 비로소 나도 모르게 가슴에 성호를 긋고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나의 눈에 보이는 것만큼만 보고 간절히 간구했던 구원은 바로 내가 마음의 눈으로 보는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믿고 청하면 영혼을 구할 수 있다는 그 말씀의 깊이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는 일상의 거리에서 보이지 않던 새로운 인식과 모습들을 볼 때마다 하늘을 우러러 감사기도를 하면 발걸음도 가벼워 지친 하루가 즐거웠다. 성실히 노력하여 믿음으로 얻은 아주 작은 평화와 사랑으로 건강하고 우애있는 삶과 일상이 조금씩이라도 나아진다는 것을 느끼면서 ‘행복은 이런 것’이라고 길을 가다가도 아주 작은 일에도 감사하며,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암울한 정경도 사랑의 빛으로 아름답게 보였고 아픔도 함께 나누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되어 작은 봉사의 일도 사랑으로 할 수 있었다.
이제 노년을 초라하지 않게 보내기 위해 나의 독선적, 내 중심적 생각과 판단을 버리고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 바라던 야망과 허욕의 두 눈을 씻고, 갓 태어난 아기의 맑은 눈처럼 순수하고 투명하게 세상을 바라보며 틈틈이 하고 싶은 그림 그리기와 시 쓰기를 하면서 살 수 있도록 허락하신 하느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드린다. 또한 격변하는 세상의 변화 속에서도 일상의 모든 일들을 아름다운 시선으로 내 마음의 캔버스에 언제나 감사의 기도로 담아내는 낮은 자세의 한 작은 화가이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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