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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정 선생의 교실이야기 2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이유정(데레사)|계산성당, 대구가톨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무학고등학교

 
 


3월이 되면 모든 학교는 설렘과 희망으로 가득찹니다. 새내기들 맞을 준비에 학교도 들썩이고 새로운 학교로 입학하는 마음에 신입생들과 학부모들도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잠들어 있던 생명체들이 세상을 향해 고개를 쳐드는 봄의 기쁨만큼이나 학교 공동체는 행복을 꿈꿉니다. 그래서 3월은 누구에게나 새로운 기대를 갖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요즘 매체를 통해 만나는 학교나 학생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행복해 보이진 않습니다. 과중한 학업(사교육, 공교육)에 지쳐만 가는 학생들, 무반응에 반항심 가득하며 어디로 튈 줄 모르는 아이들 때문에 힘겨운 교사들, 공교육만으론 안심할 수 없어 엄청난 사교육비를 부담하느라 가족들을 제대로 돌아볼 여유조차 없는 부모들 모두가 매일 매일이 힘겹기만 합니다. 그 결과 벌어지는 많은 사건들은 더욱 우리들을 우울하게 만듭니다. 학교 폭력으로 힘들어 세상을 등지는 아이들의 이야기나 학생과 부모가 교사를 폭행하고, 교사가 학생을 무리하게 체벌하는 사건들을 접하며 ‘우리 사회가 어디까지 가야만 하는가?’, ‘우리가 진정 교육 현장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최근 방영되었던 공중파방송 드라마인 〈학교 2013〉에서 학교를 슬프게 떠나야만 하는 친구에게 한 아이가 아래 소개하는 시를 선물로 낭송해 주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몇 번이나 반복해 보고 또 보며 늦은 밤 혼자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에게 되물어 봤습니다. ‘너는 네 아이들을 자세히 봤느냐? 오래 봤느냐?’ 나름대로 열심히 학생들을 사랑하며 살자고 애쓰며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 질문을 제 자신에게 던지니,  떠오르는 얼굴들은 왜 이리 많고, 왜 이리 자꾸만 부끄러워질까요? 
 

자세히 보아야 / 예쁘다 // 오래 보아야 /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 

우리 아이들은 풀꽃입니다. 얼핏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소홀하게 대하기 쉽습니다. 눈에 잘 띄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관심을 갖지 않으면 쉽게 밟아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모두들 자기 나름의 꽃을 피우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오래오래 들여다보니 그 꽃 하나하나가 예외없이 각각의 아름다운 꽃들을 달고 있어 무척이나 사랑스럽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른 이전에, 기성세대 이전에 우리들도 이런 여리며 상처 받기 쉬운 아름다운 풀꽃이었음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2월 초 제가 맡고 있는 “카타르시스”라는 동아리 학생들과 함께 매년 겨울 방학이면 하는 “1박 2일 달빛 독서”를 했습니다. 50여 명의 학생들이 팬션 한 동에 모여 책을 읽고 시사 토론을 하고, 선후배들과 친목을 다지며 1박 2일을 보내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이들이 이렇게만 행복할 수 있다면 지금 사회가 우려하는 많은 일들은 일어나지 않을 텐데…’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밤을 꼬박 새우면서도 1,2학년이 3학년들과 함께 게임을 하며 웃고 떠드는 소리가 어찌나 신나던지 밤새 지켜보는 제 마음도 함께 두둥실 공중을 날았습니다. 곧 3학년이 되는 2학년들이 선배를 졸졸 따라 다니며 조언을 구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 진지함에 대견스러움도 느꼈습니다. 그들을 보고만 있어도 제 입가엔 미소가 머뭅니다. 1학년 학생이 제게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우리를 보고만 있어도 좋아요?” 저는 “그래, 느그들 노는 것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르고 행복하다.” 라고 대답한 후 더 행복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늦은 밤하늘에 떠있는 배부른 반달이 제 모습 같아 눈에 쏙담아 두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이 아이들이 10대의 마지막을 기억할 때 이날의 소중한 추억 한 자락이 주는 행복감에 잠시나마 웃을 수 있고, 각박한 세상살이 속에서 삶에 지쳐 힘겨울 때 이 기억이 다시 힘을 낼 수 있는 작은 기적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제 새 학년을 시작하는 우리 자녀들에게 희망을 주는 어른이 되어 봅시다. 그리고 잊지 말아요. 우리 아이들은 하나하나 자세히 봐야만 볼 수 있고 오래 봐야만 예쁜 풀꽃들임을, 그리고 우리도 그 파릇파릇한 여린 풀꽃들이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