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글은 2012년 11월 24일(토) 대구대교구 성서사도직위원회(담당 : 박상용 사도요한 신부) 주관으로 대구가톨릭대학교 대신학원 대강당에서 열렸던 제4회 성경암송발표대회 때 참가한 이들의 소감문입니다. - 편집자 주(註)
① “와서 아침을 먹어라.”(요한 21,12) 박인진(사비나)|소화성당

하늘에 별이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성경암송발표를 준비하는 동안 내가 받은 은총에 비할 수가 있을까? 말씀이 지겨워지고 형식적인 미사, 자질구레한 봉사가 짜증날 때 돌파구를 찾기 위해 준비했던 성경암송발표! 가족 세 명이 참가하기로 했지만 요한이는 부끄러워서 못한다고 했다. 복사를 서면서 방귀까지 뀌어대는 뻔뻔한 녀석이 부끄럽다니….
그래서 대건이랑 둘이 나가기로 했다. 요한복음 19,17-30절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부분을 연습했는데 아이들이 무섭다고 야단들이어서 아이들이 부활의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요한 21,1-14절을 준비했다. 부활하신 주님을 믿지 않는 제자들에게 세 번째 나타나시는 복음으로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었다.
그날 일곱 제자들의 그물질은 밤새도록 허탕이었다. 실의에 빠진 그들에게 밝은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 주님께서 홀연히 나타나시어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하고 말씀하시고, 그대로 하니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물고기가 그물 가득! 주님께서 다정하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하시면서 빵과 물고기를 나눠주시고, 제자들은 기쁘고 감격한 나머지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면서 입을 열 수조차 없었다. 예수님 주위에 모여 오순도순 정답게 음식을 나누는 장면! 나의 가정도 이렇게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글을 모르는 대건이를 위해서 대건이의 암송부분은 내가 다 외워서 시도 때도 없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이가 들을 수 있도록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들려주었다. 유다인 어머니들이 갓 태어난 아기 귀에 대고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라고 들려주듯이 나 또한 끊임없이 목이 아프도록 복음 말씀을 들려주었다. 얼마나 목이 아프던지, 하느님께서도 목이 아프도록 나에게 돌아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닐까. 듣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서서히 아이가 복음 말씀을 중얼거릴 때 얼마나 기쁜지, 그 말씀은 이제 네 것이다.
본당에서 암송할 때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시던 모든 교우분들, 수녀님, 신부님, 그리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대건이는 유치부 최우수상을, 나는 미역국을 먹었지만 참으로 뜻깊은 시간이었다. 연습한다고 더운 여름날 옥상에서 머리를 쥐어박으며 주부건망증을 한탄하면서, 외우다 잊어버리고 외우다 잊어버리고 소리 지르다가 이웃집 옥상을 봤는데 어둠 속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 아저씨. ‘아저씨 저 이상한 여자 아니에요!’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에페 6,17)
②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 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변하정(젬마)|매천성당
시간을 거슬러 생각해보니 초등학교 다닐 적엔 매년 성경암송을 했었습니다. 이번 암송대회 때 제가 외운 부분이 그때 외웠던 부분입니다. 그때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똑같은 물음을 로봇처럼 자꾸 물으십니다. 베드로는 분명 “예!”라고 대답하건만 예수님께서는 다른 말씀만 하십니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초등학생인 저의 머리로는 이상하기만 했습니다. 예수님이 왜 이렇게 장난을 치시나? 시샘하는 아이처럼 ‘나 좋아?’하고 물으시곤 그냥 양들이나 보고오라고 심부름을 시키시고….
그래서 어린 제 생각에는 베드로가 예수님 심부름으로 양떼들에게 밥을 주고 오면, 예수님이 또 ‘나 좋아?’하고 물으시고, 그러면 또 양들에게 밥을 주고 오라 시키곤 하시니 심심한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골탕 먹이시려는 내용인 줄로만 알았었지요. 그런 생각 때문이었는지 시간이 흘러도 그 당시의 성경부분은 지워지지 않고 늘 제 머리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 뒤 멋모르고 암송을 했던 그 아이는 성장하여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웃고, 울고, 부대끼며, 쓰러지기도 하면서 치열하게 30년을 보냈습니다. “스테파노의 딸 젬마야,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너무나 익숙한 단어의 조합으로 예수님께서 제게 물어 오십니다. 나의 길을 다 지켜보신 그분의 그 물음에 금세 눈물이 차오르기도 합니다.
베드로도 그랬을까요? 예수님은 결점 많은 베드로를 남달리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돌아가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잃은 슬픔에 세 번이나 모른다고 말한 죄책감까지 겹쳐 하늘이 무너지는듯 괴로웠을 것입니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고 먹는 것, 숨쉬는 것 모두 다 부질없다 느꼈을 것 같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서라도 보고 싶은 나의 주님이 살아 돌아오십니다. 그것도 아름다운 호수의 풍경이 배경으로 펼쳐지니 얼마나 아련한 추억입니까? 살아 돌아오신 주님이 손수 밥도 지어주시며 “다른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십니다. 베드로는 마음이 아픕니다. 예수님께서 모를 리가 없는데, 내가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한 것 때문에 마음이 아프셨나? 하지만 베드로는 분명 살아가면서 새록새록 예수님의 뜻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라고 세 번이나 당부하신 그 음성, 그 눈빛에 대한 기억으로 평생토록 힘든 사도의 길을 기쁘게 걸어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성경암송대회가 끝난 지도 제법 시간이 지났습니다만 아직도 “앓이”가 꽤 심각합니다. 매번 ‘예수님과 베드로’의 그 상황 속에 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천 번을 외웠더니 예수님의 음성이 가슴에 아련히 남아 슬프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고, 아프기도 합니다. 사랑에 빠진 연인처럼 예수님을 먼저 생각하는 버릇이 생긴 듯하니 최우수상보다 훨씬 더 큰 은총입니다.
말씀을 통해 감성적 신앙을 보여주신 이태우(프란치스코) 신부님, 가서 말씀을 전하고 본당을 빛내라며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한창현(요셉) 신부님, 옆에서 들어주시며 제게 맞는 신앙고백으로 잡아주신 송 막달레나 수녀님, 열정적으로 응원해주신 주일학교 선생님들, 우리 첫 영성체반 아이들, 그리고 가장 가까이에서 결국 함께 외워버리게 된 우리 가족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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