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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오 신부의 영화이야기
신의 손(Something The Lord Made, 2004)


조용준(니콜라오)|성바오로수도회 신부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루카 13,30)
 

신앙인의 삶에서 겸손함은 너무나 당연한 덕목이지만 그 가치를 살아가는 것은 어렵다. 자격지심이라고 할까. 누군가와 나를 인간적으로 비교하다가 나의 모자람이나 약함이 드러날 때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상대방에 대한 미움이나 하느님에 대한 원망을 지니기 쉽다. 여기에 사회적 불평등(직업, 인종, 학연, 지연, 부의 차별)이 더해질 때 그 미움과 원망은 더 깊어지게 된다. 사회적 불평등과 부당한 대우를 꿋꿋이 견디어 나가며 신앙인의 겸손함의 모델을 찾아가는 영화 〈신의 손〉을 소개한다.

1930년대 인종 차별이 심했던 미국에서 목수 생활을 했던 비비안 토마스는 우연히 내슈빌의 한 대학 연구소의 청소부로 취직하게 된다. 의사인 알프레드 블레이락 박사는 비비안의 남다른 손재주와 특별함을 발견하고 그를 조수로 임명하여 함께 의학 연구를 하게 된다. 그 후 블레이락 박사와 비비안은 존스 홉킨스 대학으로 옮기게 되고, 청색증 환자의 치료를 위한 연구를 시도하여 마침내 심장수술을 통한 청색증 환자의 치료에 성공하게 된다. 그렇지만 흑인이며 의사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끊임없는 차별을 당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비비안은 결국 블레이락 박사 곁을 떠나게 되고, 짧지 않은 방황의 시간을 보내다 다시 연구소로 돌아와 연구를 계속한다. 마침내 연구를 시작한 지 40년이 되는 해에 비비안은  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받고 그의 업적을 인정받게 된다.
 

비비안의 연구는 분명 큰 가치를 지닌다. 당시 신의 영역으로 비유되며 치료할 방법이 없어 죽음을 기다리던 많은 환자들에게 삶의 희망을 가져다주었고, 많은 의사들이 그의 도움을 받아 외과 수술의 성공률을 높여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비비안에 대한 처우와 인정에 관한 것이었다. 흑인이며 고졸이라는 이유로 그의 존재는 묻혀 버린다. 블레이락 박사에게 모든 공로와 명예가 집중되고 심지어 함께 해준 동료들의 사진과 이름에서 비비안은 거론조차 되지 못한다. 비비안은 이런 처우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블레이락 박사로부터 모욕적인 말을 들었을 때 바로 연구소를 그만 두려고 했던 것처럼, 수술 성공 이후에 인정받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바로 연구소를 떠나 버린다.
 

이제 비비안의 상황은 연구소를 나와도 나이가 너무 많아 의사가 될 수 없고, 가치 있는 다른 일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비비안의 고민과 선택이 이어진다. 시대와 처지를 원망하며 사는 것과 비굴해 보이지만 다시 연구소로 돌아가는 것. 비비안은 비록 누구도 인정해 주지 않지만 어떤 것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연구를 하는 것으로 자신의 삶을 계속 이어간다.
 

영화 말미에 그의 업적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지지만, 중요한 것은 비록 남들로부터 차별받고 인정받지 못했지만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그리고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가치 있는 일을 끝까지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신앙인으로서 우리가 찾아야 하는 나의 삶의 자리이며,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탈렌트의 올바른 사용방법인 것이다. 비록 현세적인 보상이나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우리의 태도와 지향을 아시는 주님께서 필요한 때에 보다 좋은 형태로 차고 넘치도록 채워주실 것임을 믿고 보다 복음적인 선택과 실천으로 삶을 완성해 가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 터닝포인트
- 비비안이 연구소로 돌아가려고 결심하는 장면(1:30:47~1:33:45)
차별을 못 견디어 연구소를 떠난 비비안은 제대로 된 직장을 찾지 못한 채 가족들과 오랜만에 식사를 하게 된다. 가족과의 대화 가운데 형의 노력으로 교사들의 임금에 대한 인종차별이 없어졌지만 아무도 형의 노력을 기억하지 못함을 한탄한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가치 있는 일을 했음을 비비안은 인정한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비비안은 자신의 형이 열정을 잃었음을 한탄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되돌아보게 되고 연구소로 돌아가는 결정을 한다. 비록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했지만 어떤 일보다 열정을 가지고 했던 연구소가 그가 있어야 할 자리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 생각해 볼 수 있는 주제들
- 지금 벌어지는 불평등의 상황을 충실함과 믿음으로 이겨내고 있는가?
  때가 되었을 때 하느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시리라 믿는가?
- 누군가의 인정과 보상을 바라면서 봉사와 희생을 하려고 하지는 않는가?
-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역할(일)은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역할(일)인가?

 

* 조용준 니콜라오 신부는 1992년 성바오로 수도회 입회하여 2004년에 종신서원, 2005년에 사제서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006년-2008년 NYFA Filmmaking 과정 수료후, 현재 영화, 인터넷, 뉴미디어를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