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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내게로 오다
벚꽃


이태수(아길로)|시인, 범물성당

 

겨우내 웅크리던 벚나무들이
가지마다 꽃잎을 가득 달고 서 있다
간밤에 침묵이 떨궈낸 
하얀 보푸라기들을 뒤집어쓰고 있듯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이른 봄 하늘을 바라보며 서 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뛰어내리는
햇살들이 그 위에 포개져
더욱 하얗게 빛을 쏘아대는 벚꽃들

새들은 마치 이 신성한 광경을 
나직한 소리로 예찬이라도 하듯이
벚나무 사이를 날며 노래 부르고 있다
하지만 이내 온 길로 하나같이
다시 되돌아가 버리고 말
저 침묵의 눈부신 보푸라기들


 

 

  

* 약력 : 197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우울한 비상의 꿈』, 『침묵의 푸른 이랑』 등 다수 출간. 동서문학상, 한국가톨릭문학상, 천상병시문학상, 대구예술대상 등 수상. 매일신문 논설주간, 대구한의대 겸임교수, 대구시인협회 회장, 대구가톨릭문인회 회장 등을 지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