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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마음으로 세상보기
세상을 섬기는 교회


박성대(요한)|제2대리구장, 주교대리 신부

 “최고의 서비스로 잘 섬기겠습니다.”
 

본당 사목을 할 때 본당 가족들(주임신부, 보좌신부, 수녀, 사무원, 회장단 등)의 가족사진을 찍어서 크게 확대해 사제관 입구나 성당 게시판에 걸어 놓고 그 가족사진 속에 “최고의 서비스로 잘 섬기겠습니다.”라고 썼다. 본당 신자들은 그냥 신자가 아니라 내가 최고의 서비스로 잘 모시고 섬겨야 할 소중한 고객이기 때문이다. 보는 사람마다 그 사진과 글을 보고 대단히 좋아하였다. 신자들과 세상이 바라는 사제와 교회의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임을 절실히 느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바라는 교회의 모습, 복음이 말하는 교회와 사제의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 즉 ‘섬김의 삶’을 사는 교회와 사제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 사임하신 베네딕토 16세께서 마지막으로 전 세계 가톨릭 신자와 교회에 호소하신 말씀이 있다. “우리 교회와 신자들이 다시 태어나야 한다.” 이 말씀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부르짖은 주제이며 공의회가 끝난 후 지금까지 끊임없이 추구해온 교회의 자기 복음화의 본질적인 내용이다. 그러나 교회는 아직도 지난 중세시대의 모습을 탈피하지 못하고 ‘섬기는 교회’이기보다는 군림하고 다스리는 권위적인 모습을 완전히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섬기는 교회’를 구현해야 하는 이유는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인 징표’에 따른 ‘시대적인 요구’이며 동시에 더 강력한 ‘복음적인 요구’이다. 그 ‘복음적인 요구’는 섬기러 오신 예수님의 모습에서,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에서 확실해진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르 10,43-45)

필자에게 1년 중 가장 기쁜 날은 성목요일 성 만찬미사를 거행하는 날이다. 이 날은 사제들의 날이기도 하지만 신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세족례가 있기 때문이다. 신자들의 발을 씻어 주면서 ‘섬기는 사제’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날이다. 필자는 상당히 오랫동안 본당에 부임할 때 본당 신자들에게 “저는 여러분의 사랑받는 사제가 되겠습니다.”하고 인사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말에 문제가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이렇게 인사말을 바꿨다. “저는 여러분으로부터 ‘사랑받는 사제’가 되기보다는 ‘사랑하는 사제’가 되겠습니다.”하고 말하였고 또 그렇게 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이 말은 다른 말로 ‘섬김을 받는 사제’가 아니라 ‘섬기는 사제’가 되겠다는 말이기도 하다.

교회의 정체성은 ‘세상에 봉사하는 교회’에 있다. 이 말은 ‘세상을 위해서 존재하는 교회’, 더 나아가 ‘세상을 섬기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교회는 어디까지나 그리스도의 성사(聖事)이다. 교회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교회를 위한 교회는 교세확장은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한 나머지 이 세상을 위해서 아무것도 못하고 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하신 요한 23세 교황께서는 공의회 소집 동기를 “교회가 현대 세계를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를 찾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다. 세상 위에, 혹은 세상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 속에 존재하는 교회, 세상을 위하여 존재하는 교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교회의 모습을 구현하는 것이 바로 ‘복음화’, 내지 ‘새로운 복음화’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최고의 서비스로 잘 섬기는 대구대교구’가 되기를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