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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정 선생의 교실이야기 2
용서가 주는 위대함


이유정(데레사)|계산성당, 대구가톨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무학고등학교

 

올해는 유난히 봄이 늦게 오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연초록의 새 옷을 갈아입고 해맑은 미소를 짓는 대지는 군데군데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격려라도 하듯 봄의 정령을 머금은 봄비가 잊지 않고 곳곳을 토닥입니다. 참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이렇게 봄이 간절함도 겨울이란 계절이 있기 때문이란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계절에 보석과 같은 사순과 부활을 함께 합니다.

지난 겨울, 저는 ‘레미제라블’이란 영화를 봤습니다.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장발장의 이야기지만 노래로 섬세한 감정들을 드러낸다기에 호기심을 갖고 영화관을 찾았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 저는 마치 미사를 한 대 드린 기분이었습니다. 많은 장면들이 아직도 생생하지만 그 중에서 저는 ‘용서’의 위대함을 새삼 각인시켜 준 두 장면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먼저 한 장면은 영화가 시작되면서 바닷가에서 노래를 부르며 힘겹게 노역을 하고 있는 한 무리의 죄수들 속에서 이글대는 눈빛의 건장한 장발장의 모습입니다. 자베르 경감의 말도 안 되는 명령에 도전이라도 하듯 혼신의 힘을 다해 혼자서 묵묵히 돛대를 옮기는 장발장의 분노에 찬 눈에서 저는 얼음의 날카로운 칼날의 서늘함을 느꼈습니다.

감옥을 나와 세상 속에 들어가려고 애써보지만 그 어느 곳도 범죄자는 이방인이었습니다. 몸과 마음이 모두 헐벗은 장발장에겐 따뜻한 식사와 잠자리를 허락하신 주교님의 호의도 단지 허기를 달래는 순간을 허락한 것에 불과했습니다. 결국 그는 값진 성구들을 훔쳐 달아나는 도둑의 삶을 또다시 선택했습니다. 경찰에게 잡혀와 주교님 앞에 무릎 꿇은 그의 눈빛에는 잘못에 대한 뉘우침보다는 다시 그 고통의 시간과 공간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공포가 가득했습니다. 온몸 가득 두려움으로 떨며 애절함을 담은 채 흔들리는 눈으로 바라보는 장발장에게 식탁의 촛대는 왜 두고 갔느냐는 주교님의 말씀은 기쁨이나 안도감 이전에 의아함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이 순간이 저에게 충격을 준 두 번째 장면입니다.

‘지금 이건 무엇입니까?’란 눈빛의 장발장에게 다음 순간 찾아온 것이 진정한 회개였습니다. 그리고 난 후 그는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새로운 삶! 그건 바로 부활이었습니다. 인간들이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부활이었습니다. 죄수 장발장에게 그 부활을 가져다준 것은 주교님의 무조건적 용서였습니다. 그리고 전 그 순간 돌아온 탕자를 그대로 끌어 안아주는 성경 속 늙은 아버지의 모습과 십자가 상 피 흘림 중에도 자신을 못 박은 인간들의 죄를 위해 기도해 주시던 예수님의 사랑이 클로즈업 되면서 이 모든 것의 시작에는 한없는 용서가 전제됨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부활 전 사순시기에 판공성사의 은사를 주셨나봅니다. 그날 밤 저는 제 자신에게 되물어 봤습니다. 넌 얼마나 용서하며 살았느냐고, 그리고 얼마나 많이 용서를 받았느냐고요. 그 때 한 아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참 많이 그 아이에게 미안했습니다.

 2012년은 저에겐 끌어안아야만 하는 힘든 아들들이 무척 많은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어느 때보다 학교 안 경당에 예수님을 많이 찾았습니다. 교실 앞 십자가를 보며 ‘그래도 예수님처럼 죽을 만큼 아픈 것은 아니지 않느냐?’라며 스스로 위안한 적도 많습니다. 첫 시작부터 흡연으로 잡혀온 아이, 고3 입시를 목전에 두고도 특별한 이유도 없이 아침만 되면 학교 오기가 싫어 수시로 결석과 지각을 하는 아이, 예체능계 공부를 자유롭게 하고 싶은데 우리 학교 시스템으론 자기 맘대로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수시로 전학 이야기를 꺼내는 아이, 야간 자습을 해 본 적이 없어 20분 이상 책상에 가만히 앉아 공부하기 힘든 아이 등을 한꺼번에 만나며 ‘올해는 하느님께서 제게 왜 이러십니까?’ 라며 투정도 부려 봤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일 압권은 수능 다음날 지각했다고 꾸중하는 제게 “선생님이 제게 해 준 게 뭐 있어요?”라고 고함을 치며 교실 문을 쾅 소리가 나도록 닫고 나가는 우리 반 애물단지의 돌발행동이었습니다. 그것은 1,2 학년 때 만들어진 좋지 않은 이미지를 없애주기 위해 일부러 교사들이나 학생들 앞에서 자신에 대한 칭찬을 늘어 놓으며, 늘 기다려준 제겐 너무나도 날카로운 비수였습니다. 가슴이 먹먹해지며 제가 그 아일 위해 참아야만 했던 많은 것들, 용서했던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되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애써 살아온 시간들과 제 노력들이 그렇게 허망할 수 없었습니다. 그럴 때 흔히들 억장이 무너진다는 표현을 하는 것 같습니다. 한 시간 뒤쯤 그 아들은 제게 용서를 청했습니다. 쉽게 마음이 풀리지 않는 제게 그 아인 무뚝뚝한 음성으로 “치~ 엄마라 그래놓고는…, 우리 엄만 금방 용서해 주는데…”라며 무심하게 한 마디 내뱉었습니다. 그 말투가 어린 아이 투정 같아 그만 저는 “피식~!” 하며 웃어버렸습니다.
졸업식 날 저녁, 우리반 아들들은 각자 놀러 가지 않고 함께 모여 마지막 학급단합회를 가졌습니다. 그런 그 아들이 친구들에게 선생님께 큰절을 올리자며 소리쳤습니다. 연이어 보잘 것 없는 제게 그대로 땅바닥에 엎드리며 큰절을 해주었습니다. 감사하다면서요. 그 때 가슴 저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뭉클대는 떨림이 온몸을 흔들었습니다. 저 또한 무척이나 감사했습니다. 저는 글을 쓰는 지금도 그 아들을 생각하며 그 순간 좀 더 넓은 마음으로 용서하지 못한 제 자신을 꾸짖어 봅니다. 그 아들에게도 제가 모르는 절박함이 그 순간 가득했을 텐데 전 그 아픔은 제대로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더 잘 용서하는 선생님이 되어보려고 합니다.
우리 학교 3층 도서관 앞쪽엔 참 좋은 문구가 있습니다. 한 편에는 “이 아이들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까?” 또 한 편에는 “사랑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어야 합니다.”이번 사순시기 동안 저는 하느님께 약속드릴 게 있어 좋았습니다. 이 아이들을 위해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사랑하는 우물 샘을 열심히 가꿀 것입니다. 이번 부활은 저를 또 다른 새로움으로 태어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