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사는 시댁 형제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했습니다. 바쁜 시대를 살아가느라 일부러 자리를 마련하지 않으면 형제간에도 얼굴 보기가 어렵습니다. 내일이 나의 생일이니 오늘 저녁이 그 전날 밤입니다. 밥 한 그릇도 손수 마련해야 할 처지의 주부에게 생일이 별 날이겠습니까만, 가까운 사람끼리 소찬이라도 나누고 싶어서입니다. 문만 나서면 식당이 즐비해 구정물에 손 넣지 않고도 진수성찬을 접할 수 있지만 어디를 가든 밥값을 도맡아 지불하는 형님을 배려해서 꼭 내가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만남은 기쁨과 나눔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음식도 나누고 소식도 나누고 웃음도 나누며 생일 전날 밤의 작은 나눔에 우리 모두는 행복했습니다.
‘전날 밤’의 대표적인 이미지는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기다림의 시기 대림절을 보내며 우리는 간절한 마음으로 구세주 오심을 기다렸습니다. 아기로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던 탄생 전날 밤, 제대 앞에 아름답게 꾸며진 구유와 성탄전야 미사의 장엄하고 환희에 찬 전경은 온 세상이 평화로 가득한 듯 감동적이었습니다. 그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사순절을 맞이했습니다. 머리에 재를 받으며 돌아갈 곳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참회와 정화의 시기인 사순절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자 부활로 가는 노정(路程)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 고난의 길을 묵상하며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 은총의 시간을 거친 후 미망에서 깨어나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부활과 함께 다시 새로워지는 것이 우리의 부활입니다.
전날 밤이라고 늘 축제의 날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수난 전날 밤을 생각하면 가슴이 짠하게 울려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앞에 둔 그 전날 밤에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며 낮은 마음과 참된 봉사의 삶을 가르쳐 주셨고 제자들과 함께 지상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이 식사를 ‘최후의 만찬’이라고 합니다. 사랑으로 마련하신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빵과 포도주를 나누며 이렇게 간곡한 당부를 하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 우리는 매 미사 때마다 주님의 만찬을 기억하고 재현하여 성찬례를 행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나를 잊지 말라.’는 부탁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해 바치는 당신 몸과 피의 의미를, 당신 사랑을 기억하여 전하라는 유언입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당신 전부를 내 주시며 온몸으로 가르쳐 주신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수난, 죽음, 부활에 이어지는 성삼일이 교회 전례의 절정입니다. 성목요일 저녁 주님 만찬 미사로 시작해서 성금요일의 주님 수난 예절, 성토요일의 부활 성야 미사로 이어지며 전례의 정점을 이룹니다. 특히 부활 성야 미사는 연중 가장 성대해서 부활 대축일 당일의 낮 미사보다 더 길고 장엄합니다.
전날 밤은 언제나 기다림과 기대와 소망으로 우리의 마음을 팽팽하게 끌어 올립니다. 주님 부활의 기쁨을 어서 빨리 맞이하고 싶은 기다림, 아름답고 장엄한 전례에 대한 기대, 예수님을 따라 우리도 부활하리라는 희망으로 우리의 마음은 한껏 부풀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신앙의 증거이자 장차 새 생명의 길로 나아가는 우리 부활의 근원이며 원천입니다. 삼라만상이 잠에서 깨어나 다시 살아나는 이 봄에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 약력 : 2004년 에세이문학 완료추천. 2008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수필 ‘바람’ 당선. 대구시문예대전 대상 수상. 한국수필문학진흥회대구지회장, 에세이문학작가회, 대구문인협회, 대구수필가협회, 대구여성문인회, 대구가톨릭문인회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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