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신앙의 해 및 월간 〈빛〉 30주년 기념 신앙수기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작
하느님을 알고 믿기까지


김남수(안젤라)|수성성당

 

결혼 후 손위 동서를 따라 절에 다닌 지 30년이 되었지만 뜻도 모르고 인도 글로 쓰인 불경을 외운다는 것은 제겐 무척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인생의 끝자락으로 가던 즈음 더 늦기 전에 보람있는 일을 하고 싶어 봉사체계가 잘 갖춰져 있고 어딘지 모르게 신성한 느낌을 주는 천주교가 마음에 와 닿아 개종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친구가 빌려준 〈생활교리〉라는 책을 석 장 정도 읽으니 생소한 단어가 너무 많아 이해하기 어려워 머리맡에 두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날 밤, 사람의 형체가 보이지 않는 커다란 손이 제 손에 묵주를 쥐어 주었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꿈이었습니다. 마침 성탄절이라 친구를 따라 처음으로 수성성당에 갔습니다. 성전 안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십자가 위에 예수님상이 얼굴만 있고 몸은 없이 양손을 펼치고 계셨습니다. 저에게 묵주를 주신 꿈 속의 손이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놀라운 신비를 느끼면서 자정미사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이튿날 아침 부엌으로 나가던 중 어깨를 스치는 무언가의 느낌이 들더니 평소에 오십견으로 아프던 어깨가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1999년 4월 딸과 함께 교리공부를 시작해 9월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간경화를 앓고 있던 남편에게 세례를 받자고 설득했습니다. 남편이 세례를 준비하던 2000년 4월 갑자기 병이 악화되어 비록 날짜는 모자라지만 신부님께 부탁드려 세례를 받고 색전술을 받았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간상태가 좋지 않아 이식을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3남 1녀를 둔 저는 어느 자식에게 이식을 해주라고 할까, 엄마인 저로서는 고민스럽고 난감했습니다. 딸은 여자이니 애련하고 둘째는 약간 비만이라 제외되고, 나와 큰아들, 막내아들이 검사를 받기로 했습니다. O형인 나는 B형인 남편과 조직이 잘 맞았고 결혼한 지 6개월밖에 안 된 큰아들은 B형이면서 검사 결과도 좋았습니다. 막내는 지방간이라 아예 제외되었습니다.
자식의 간은 받을 수 없다고 고집부리는 남편에게 제가 먼저 간을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큰아들이 단호하게 “나는 장남이고 결혼도 했으니 흉터가 생겨도 괜찮습니다. 엄마는 연로하시고 동생은 결혼하지 않았으니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아들의 효성스러운 마음은 알지만 갓 결혼한 며느리에게 큰 짐을 지우는 것만 같았습니다. 남편을 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제가 먼저 수술받기로 결정하고, 만약을 생각해서 기간이 일주일이나 걸린다는 적합검사를 큰아들도 미리 받아놓게 했습니다. 그렇게 결정하자 손위 동서가 “아직 결혼하지 않은 아이들이 셋이나 있는데 만약 자네마저 잘못되면 안 되니 서방님은 사는 날까지 그냥 살다가 가게 두라.”며 반대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가족을 위해 그동안 헌신적으로 봉사한 남편의 인생이 가엾고 억울해서 그냥 보낼 수는 없었습니다.
2000년 5월 2일 남편과 저는 서로 손을 마주치는 파이팅으로 성공을 빌면서 수술실로 들어 갔습니다. 주님께서 살려 주실 것을 간절히 믿고 기도하며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남편은 24시간, 저는 18시간의 긴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성모자상과 마더 데레사의 사진이 동시에 보이기에 ‘마더 데레사님!’하고 외치며 일어나는데 어떤 빛이 저를 향해 세 번이나 내리쳤습니다. ‘아! 살아났구나.’ 주님께서 꼭 살려 주시리라 믿었습니다.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난 저는 매우 고통스러웠습니다. 남편은 저의 간을 이식받았지만 일주일 동안 혼수상태였으므로 남편이 깨어나 미안해 할까봐 진통을 참아가며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의 고통을 생각하며 아픔을 참고 견디어 낼 수 있었습니다.
어버이날 회사에서 돌아온 큰아들이 병실에 잠깐 들린 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잠시 후 의사가 와서 저 모르게 자녀들끼리 의논해서 아버지를 꼭 살려내야 한다며 큰아들이 재이식수술을 결정하여 지금 수술준비 중이라고 했습니다. 남편의 몸이 필요로 하는 간의 크기보다 나의 간이 작아서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첫 수술비가 6천만 원이라 둘째 결혼비용으로 모아둔 3천만 원과 은행에 대출을 받으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재수술을 한다면 엄청난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고 선생님께 말하니 “두 번째 수술은 비용이 많이 들지 않으니 아드님의 간을 이식하자.”고 했지만 저는 망설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식하지 않으면 남편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을 위해서 큰아들도 검사를 받아 놓긴 했지만 아들과 재수술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남편을 생각하니 수술은 당연하지만 젊은 아들을 생각하는 어미로서 참으로 견디기 힘들고 가슴이 녹아내리는 아픔이었습니다.
아들이 수술준비를 하고 있는 병실로 가려는 순간 뜻밖에도 신부님이 오셨습니다. 여길 어떻게 오셨느냐고 여쭈니 “하느님이 보내서 왔지요.”라고 했습니다. 수술준비를 하고 있는 병실로 신부님을 모시고 갔습니다. 막 수술실로 가려는 침대를 도로 밀어 넣고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절박한 심정으로 하느님께 애원했습니다. 남편과 아들을 살려 달라고 기도하려는 순간에 신부님을 보내주신 신기하고 묘하신 하느님이셨습니다. 부자가 15시간 수술하는 동안 밖에서 기다리는 우리는 초조함과 두려움에 피가 마르는 듯한 고통을 견뎌내야만 했습니다. 갓 세례를 받은 저는 기도하는 방법도 제대로 몰랐지만 오직 하느님만 부르며 살려 달라고 매달렸습니다. 수술 후 젊고 건강한 아들의 간을 이식받은 남편은 하루 만에 기적적으로 깨어나 가스도 나오고 말도 했으며, 아들도 무사히 깨어났습니다. 성당에 다니지도 않는 아들이 수술 후 깨어날 때 예수님의 사진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 가족을 위해 많은 사랑과 은총을 주셨습니다. 의사가 수술 후 수혈이 필요할지도 모르니 가족들의 혈액을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자식 모두 B형이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며칠 후 수술한 상처가 지혈이 되지 않아 다시 수술을 받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네 번째 수술을 마치고, 겨우 안도의 숨을 쉬고 있는 중에 의사가 찾아와 미안하다고 하며 또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니 기가 막히는 일이었습니다. 이번에는 간단한 수술이니 자기한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간청하는 것이었습니다. 생사의 기로에서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가족들 몰래 저만 알고 다섯 번째 수술을 허락했습니다. 남편을 위해 밤낮으로 고생하는 선생님을 원망할 수는 없었습니다.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의 뜻인데, 저도 기도하고 있으니 용기를 가지고 최선을 다 해 달라는 부탁과 감사와 격려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드렸더니 부인과 함께 읽고 감동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재일교포인데 정직하고 진실하며 믿음직스러운 분이셨습니다.
주님의 자비로 남편은 다섯 번의 수술 끝에 기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주님의 힘으로 폭풍우 치는 시련의 언덕을 넘을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 사랑의 힘으로 남편을, 아버지를 살려낼 수 있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간이식을 해준 사실을 아들 회사의 직원들이 알고 사내방송과 사보에 내보낼 사진도 찍어가고 요즈음 보기 드문 효자라는 회람을 돌려 모금한 성금과 둘째 시숙의 도움을 받아 빚을 지지 않고 1억이라는 거금의 수술비가 해결되었습니다. 참으로 놀랍고 신기하고 오묘한 하느님의 은총이 아닐까요.
제가 병실에 있을 때 재미있게 얘기하며 웃는 사람들을 보면 제게도 저렇게 웃을 날이 올까 하며 눈시울을 적신 적이 있습니다. 절망과 시련 속에서 희망이라곤 없을 것 같은 저의 삶에 주님은 자비를 베푸시어 우리 가족에게 웃을 수 있는 은총을 주셨습니다. 병원에 있는 동안 수녀님과 봉사자들이 천주교 신자라고 찾아와 많은 기도와 위로와 용기를 줄 때, 두려움과 초조함이 일시에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종교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친절하게 봉사하는 그들이 고맙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습니다. 남편이 완쾌되면 저도 저렇게 봉사하리라 마음먹었습니다. 2000년 11월 24일, 난생 처음 수녀님의 도움으로 부끄럽고 쑥스러웠지만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퇴원 후 성당에 갔더니 신부님이 “간을 준 사람도 간이 크고 받은 사람도 간이 크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정말 간 큰 가족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파보지 않고 어떻게 아픈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으며, 고통당하지 않고 어찌 고통과 시련 속에 있는 이들의 처지를 이해 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도구로 쓰기 위해 그런 고통과 시련을 주셔서 환자를 위해 봉사하는 직책을 주신 것이라 생각하며 13년째 환자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손을 잡아주고, 어깨를 어루만져주며 그들을 보살핍니다. 봉사하는 기쁨을 주신 주님께 늘 감사드립니다. 서른여덟이 되도록 결혼을 못한 셋째를 위해 열심히 기도한 결과 천주교 신자인 며느리를 맞았고 예쁜 딸을 낳아 유아세례도 받아 성가정을 이뤘습니다. 가장 큰 소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둘째 아들이 건강검진에서 위암 판정을 받았을 때, 불치의 췌장암이 아니고 암 중에서 낫기 쉬운 위암, 그것도 초기라서 주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렸습니다. 수술 후 세례를 받아 지금은 건강하게 하느님의 자녀로 살고 있습니다.
겨자씨 한 알이 땅에 떨어져 우리 가족과 친척을 합쳐 열네 사람이나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고, 친구 두 사람도 세례를 받게 해서 대녀로 삼아 레지오마리애에 가입시켰습니다.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즐겁고 행복하게 주님만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1테살로니카 5,1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