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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전해 온 편지
총성 울리는 중앙아프리카에서


조 율리엣다|수녀,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이 편지는 중앙아프리카에 파견되어 선교 중인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조 율리엣다 수녀님이 조환길 대주교님께 보내 온 것입니다. 언론에 보도된 대로 지금 중앙아프리카에는 내전이 일어나 반군이 대통령을 축출하고 의회를 해산하여 군정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반군 지도자인 조토디아는 스스로 대통령 자리에 올랐지만 주변 각국은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극심한 혼란과 약탈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대구대교구 소속 남종우(그레고리오) 신부님과 배재근(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님께서 선교사로 파견되어 계시고, 조 율리엣다 수녀님을 비롯하여 샬트르 성바오로수녀회 대구관구의 수녀님이 파견되어 봉사를 하고 계십니다. 독자 여러분의 기도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 편집자 주(註)
 
 

  

3월 23일 금요일

 대주교님, 여기 상황이 많이 안 좋습니다. 오늘 아침 보쌍구와가 반란군 손에 들어가서 보쌈벨레와 얄로케 분원의 우리 수녀님들이 이곳 방기로 피난왔고, 반란군이 방기로 들어오는 모든 통로를 차단하고 좁혀 들어오면서 가까운 곳에서 접전을 벌이고 있다고 합니다. 아직 더 진전된 소식은 없지만 간단한 짐을 꾸려 놓고 프랑스 대사관의 연락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남종우 신부님께도 상황을 알려 드렸고요. 한국에 들어가신 배재근 신부님은 돌아오시는 날을 조금 미루시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또 소식 드리겠습니다. 기도해 주십시오.
 

3월 31일 예수 부활 대축일
대주교님, 부활 축하드립니다.
여기(방기)는 지금 반란군이 점령한 상태로 임시대통령이 있지만 아직 안정은 안 되었고 여기저기서 약탈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분원에는 아직 우리 수녀님 한 분이 남아있어 모두가 걱정하고 있습니다. 어제 통화를 했는데 약탈꾼들이 수녀원에서는 돈만 뒤져 갔지만 사제관은 완전히 박살나듯 털리고 신부님 한 분도 다치셨다고 합니다. 보쌈벨레 분원에 있는 장애자시설과 학교도 털렸는데, 천장에 숨긴 것까지 숟가락 하나 남김없이 홀홀 다 가져가 버려서 수녀님들이 돌아가면 땅바닥에 자야 하나봅니다. 하여간 마을 주민까지 합세하여 털고 있고, 우리 학교 말고 다른 학교는 지붕의 함석까지 뜯어가지고 갔다고 합니다. 수련소도 완전히 쑥대밭이 되도록 털리고 문도 다 부서지고 차도 훔쳐가 버렸습니다. 내일이 부활 대축일인데 먹을 게 없습니다. 키우던 염소 한 마리까지 몽땅 가져가 버렸습니다. 내일 뭐라도 나누어 먹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지금은 시골 분원에서 피난 온 수녀님들까지 모두 17명에다가 직원들까지 오글거리고 있으니 먹을거리가 부족한 게 당연하지요.
 
저희 분원이 있는 보쌈벨레에서는 소 키우는 사람을 목 쳐 죽이고 소를 다 잡아 먹었다고 합니다. 주민들은 피난가다 뱀에게 물리고 물 건너가다 빠져 죽고…. 마음 아픈 이야기가 정말 너무 많습니다. 성 금요일에 십자가의 길을 하고 있는데 신자들의 모임이 뭐 다른 모임인가 해서 군인들이 총을 쏘려다가 기도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미안하다며 떠났다고 합니다. 우리 아시아 수녀님 두 사람은 피부 색깔도 다르고 하니 신자들이 놀라서 숨겨준다고 법석이 되는 바람에 제6처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몰랐다고 합니다.
 

이곳의 수녀원 세 곳은 여기 대주교님께서 주선해 주셔서 군인들이 한 명당 하루에 한국 돈 15만 원 정도 받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지켜 준다고 합니다. 앞으로 한 달간 대문 앞에 군인을 두고 살기가 그렇지만 그래도 사람이 다치지 않고 안전을 유지하니 따르고 있습니다. 한국 수녀들은 얼굴색이 달라 사람들 틈에 숨을 수가 없으니 부활절 미사도 가지 못하고 수녀원 경당에서 공소예절을 지냈습니다. 남종우 신부님과는 전화 통화만 가능해서 조금 전에 통화를 했는데 꼼짝 않고 집에 계시면서 아침미사만 드리고 숨쉬기만 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건강은 괜찮으시다니 다행입니다.

대주교님, 매일매일 무사하게 지나가는 매 순간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제가 여기 도착하던 첫해에도 이렇게 총알세례를 받게 하셔서 선교 시작이 순교가 될 뻔 했는데 또 새롭게 시작하는 이 순간을 얼마나 은총의 시간이 되게 하시는지, 우리 하느님께서는 저를 참 많이 사랑하시고 감사드릴 기회를 만들어 주십니다.

또 총소리가 들립니다. 보통 주말과 축일에는 땀땀(아프리카의 북) 소리로 시끄러워 못 자는데, 지금은 개미 기어가는 소리까지 들릴 지경입니다. 이 고요 중에 가끔 총소리가 울립니다. 정말 사순절 멋지게 보내고 부활의 의미를 진하게 살고 있습니다. 대주교님, 기도 중에 기억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