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웅이 집에 불이 났습니다. 불길은 초가지붕을 삼키고 삽시간에 볏가리에 옮겨 붙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양동이로 연신 물을 퍼부었습니다. “예수, 마리아! 예수, 마리아!” 정웅이 할머니가 삽짝 귀퉁이에 주저 앉아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불은 시나브로 꺼졌습니다.
조과, 만과를 올릴 때 눈감고 꿇어 앉아 있다가 이제 끝났나 싶어서 살짝 훔쳐보면 엄마는 아직도 두 손 모으고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예닐곱 살 꼬맹이 적 얘깁니다. 성모님은 주님을 안고 그렇게 숨 쉬는 일처럼 자연스럽게 제게로 오셨습니다.
이따금 성모당엘 갑니다. 어머니께 깊이 고개 숙이고, 오래 우러러 뵙습니다. 그 다음에 제가 하는 일은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십자가의 길에서 천천히 기도하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주소서.”를 웅얼거리며 재빨리 지나갑니다.
그런 시간에도 제 눈길이 꽂히듯 멈추는 곳이 3처, 7처, 9처입니다. 제 탓임을 왜 모르겠습니까. 그리고 12처에서 무릎을 꿇고는 주님이 돌아가셨음을 아프게 깨닫습니다. 어머니, 그리하여 저는 또 13처 앞에 서게 됩니다. 아드님을 받아 안으신 어머니, 자신을 온전히 바치신 주님, 그 지고한 희생과 지극한 사랑 앞에 멈춰서곤 합니다.
제 방 문갑 위에는 피에타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무심코 지내다가 어느 순간 문득 거기에 계셨음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 피에타상을 성 베드로성당에서 뵈었습니다. 비가 많이 내리던 아침,(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즉위식 바로 전날입니다. 베드로광장은 그 준비로 부산했습니다. 즉위식 날은 맑게 갰습니다.) 시스티나성당의 천장벽화에 압도된 채로 성 베드로성당으로 발길을 옮긴 것입니다. 벅찼습니다. 깊은 슬픔이 느껴지는 어머니의 표정, 고통을 넘으신 주님의 평온한 얼굴을 뵈면서 기도도 잊었습니다. 감정과 동작의 생생함에 전율하다가 자리를 옮겨야 할 때 바쁘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어머니, 그러나 저는 당신의 고통과 희생이 슬프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기뻤습니다. 밀라노의 두오모성당에서 당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뵙고 환희에 찼습니다. 청동문에 조각된 주님의 탄생과 수난, 부활하심을 떨리는 마음으로 뵙다가 마침내 그 위에서 천상의 화관을 받으시는 어머니를 뵌 것입니다. 당신은 그렇듯 아득한 날에 이미 천주의 모친이 되셨으며 저희 모두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한기가 느껴지는 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구노의 아베 마리아’를 보첼리의 음성으로 듣는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구노가 조선에서 순교하신 절친한 벗 ‘성 엥베르주교’를 기리며 작곡해서, 저희에겐 더 사무치는 그 노래를 들으며 ‘성모송’을 바쳤습니다. 보첼리의 목소리가 더할 나위 없이 맑고 애절했습니다.
저의 어제와 오늘이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이 글을 쓰는 순간도 저는 신심이 얕디얕은 작은 딸일 뿐입니다. 오, 그러나 저는 어머니를 사랑합니다. 아베 마리아!
* 약력 : 대구가톨릭대학교 약학과 졸업, 〈월간 에세이〉 등단, 한국문협, 수필문우회, 대구가톨릭문인회 회원. 수필집 <말로 다 할 수 있다면>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국화꽃 피다>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