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마태 6,12)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에서 용서와 화해는 우리가 먼저 주위 사람에게 실천했을 때 하느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하느님과 나의 관계에 앞서 먼저 이웃과의 관계를 하느님 보시기에 올바르게 만드는 것, 그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용서와 화해의 삶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건지, 매 고해성사와 양심성찰 때마다 절실히 느끼게 된다. 특히 기억 안에 자리 잡아 지금에 와서는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것일 때, 그 괴로움은 이루 다 말할 수 없게 된다. 과거의 잘못에서 자유로워질 수는 없을까? 과거의 잘못을 찾아 용서와 화해를 시도하는 영화 〈연을 쫓는 아이〉를 소개한다.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 살고 있는 아미르는 하인의 아들인 하산과 친구로 지내며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낸다. 하산이 하자라족이라는 이유로 아미르의 친구들은 둘의 친구 관계를 놀리지만 아미르와 하산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환상적인 호흡을 자랑하며 2인조로 연날리기 대회에 참가해 우승을 하게 된다. 그런데 연을 찾으러 간 하산은 아미르의 친구들로부터 폭력과 성적 학대를 받게 되고, 이를 우연히 지켜본 아미르는 이때부터 하산을 외면하기 시작하고, 도둑 누명을 씌워 집에서 쫓아낸다. 당시 소련군의 침공과 함께 아미르는 아버지와 함께 탈출을 시도해 미국으로 가게 되고 오랫동안 과거를 잊고 지낸다. 우연히 아버지의 친구인 칸 아저씨의 연락을 받게 되어 파키스탄으로 가게 된 아미르는 하산의 소식을 듣고, 그의 아들 소랍을 찾으러 탈레반이 장악한 카불로 들어가 그를 구출해 나온다.



아미르는 과거를 잊고 살고 있다. 오랫동안 떠나 있고 돌아갈 생각도 하지 않는 고향처럼 친구인 하산도 완전히 잊힌 것처럼 보인다. 연을 날리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쓸쓸해 보이는 아미르의 첫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실에 매달린 연처럼 아미르는 하산과 여전히 연결되어 있다. 단지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사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하산을 기억할 때마다 그를 위해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비겁하게 그 자리에서 도망쳐 버렸던 자신의 행동이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우연히 걸려온 칸 아저씨의 전화. 아저씨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출판기념회도 제쳐둔 채 고향 가까이 가게 되고 외면하던 과거와 조우하게 된다.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여전히 아미르를 잊지 않고 지냈던 하산의 마음을 발견하며 아미르는 이제 그 과거의 시간과 화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하산의 아들 소랍과 함께 다시 연을 날리면서 하산과의 행복했던 시간을 회복해 가게 된다.
신앙인의 화해는 하느님 안에서 먼저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비록 과거의 잘못과 죄가 남아 있다 하더라도 화해의 성사와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렇지만 이를 가능케 하는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먼저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능한 대상에게 먼저 화해를 청하고 사과를 하는 것이다. 비록 아미르처럼 용감하게 소랍을 구출하지는 못하겠지만 쑥스러움을 극복하고 용기를 내어 그 화해의 시도를 시작할 때 하느님께서는 나와 그 사람, 더 나아가 내가 속한 공동체에 화해와 용서의 은총을 함께 베풀어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주님의 기도를 나의 기도, 더 나아가 우리의 기도로 만드는 방법인 것이다.
터닝포인트
- 아미르가 하산의 편지를 읽는 장면(1:23:39~1:26:19)
파키스탄에서 칸 아저씨를 만나게 된 아미르는 하산이 자신의 이복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하산이 남긴 편지와 가족사진을 받게 된다. 편지를 읽으면서 자신이 잊었던 하산의 우정과 사랑을 발견하면서 하산의 소원대로 소랍을 돌보기 위해 카불로 향한다. 제대로 글을 읽고 쓰지도 못했던 하산이 글을 배워 또박또박 쓴 편지에서 아미르는 용기를 얻고 결심을 하게 된다. 그 결심이란 다름 아닌 더 이상 과거로부터 숨지 않고 지금 할 수 있는 화해의 방법을 찾도록 돕는 것이다.
* 생각해 볼 수 있는 주제들
- 누구에게도 드러내지 못하는 과거의 상처를 하느님께서 용서해 주실 수 있음을 믿는가?
- 오랫동안 화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며 화해의 때를 기다리는가?
- 빈부격차나 외모와 같은 인간적인 이유로 누군가를 멸시하거나 미워하지 않는가?
* 조용준 니콜라오 신부는 1992년 성바오로 수도회 입회하여 2004년에 종신서원, 2005년에 사제서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006년-2008년 NYFA Filmmaking 과정 수료후, 현재 영화, 인터넷, 뉴미디어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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