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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선교이야기
볼리비아를 아시나요?


서준영(요한)|신부, 볼리비아 선교사목

혹시 볼리비아(Bolivia)라는 나라를 들어보셨나요? 아니요, 유럽에 있는 나라는 불가리아고, 볼리비아요, 볼리비아 말이에요. 볼리비아는 남미대륙의 거의 한가운데에 있는 나라입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칠레, 페루 등 5개국에 둘러싸여 있어서 바다가 없는 내륙국가지요. 마치 우리나라의 충청북도에 바다가 없는 것처럼요.

수많은 남미의 나라들 가운데 크기도 보잘 것 없고, 가장 가난한 나라랍니다. 이렇게 가난한 나라에 대구대교구 신부들이 들어가서 살고 있어요. 원주민과 함께 사는 선교사로 말입니다. 지금은 신현욱(루가) 신부, 서준영(요한) 신부, 박상용(요한) 신부 이렇게 세 명이 살고 있는데, 이제 곧 신현욱 신부가 임기를 마치고 귀국을 하게 되면 또 다른 신부님 한 분이 볼리비아로 들어오게 될 거예요.

 

저희 신부들이 살고 있는 본당은 구세주 그리스도 성당(Parroquia Cristo Salvador)입니다. 로스 로떼스(Los Lotes)라는 빈민 지역의 본당이지요. 대략 45,000명 정도가 살고 있는데 그 가운데 신자는 약 37,000명 정도 된답니다. 가톨릭 국가답게 국민의 대부분이 천주교 신자입니다. 국민의 대부분이 천주교 신자인데 왜 선교사가 필요하냐고요? 뭘 모르시는 말씀. 저희가 살고 있는 교구(Santa Cruz)의 교구민 숫자는 800,000명인데 신부는 160여 명에 불과하답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신부들이 외국인 선교사들이고요. 한국은 대부분 한국인 신부님들이 사목활동을 하시는데 왜 볼리비아는 외국인 선교사들이 사목활동을 하냐고요? 질문이 참 많으시네요.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볼리비아 아니 남미의 슬픈 역사부터 알아야 합니다.

 

남미는 14∼15세기 경 스페인의 식민지로 전락합니다. 그 전에는 마야(Maya), 아즈텍(Azteca), 잉카(Inca)라는 나름대로의 고대문명을 지니고 있었지만, 스페인의 총칼 앞에 무릎을 꿇고 대륙의 전체가 식민지로 넘어갔지요. 이 때부터 남미는 가톨릭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신부는 백인들뿐이었어요. 원주민이 신부가 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답니다. 그렇게 대략 400년이 흘렀고, 독립을 한 후에도 그런 분위기는 계속 지속되었어요. 그래도 다른 남미 나라들은 백인들의 비율이 높기 때문에 어느 정도 사제성소가 나오지만, 볼리비아는 워낙 원주민의 비율이 높기 때문에 아직까지 사제성소가 많이 나오지 않고 있어요. 그래서 저희 같은 외국인 선교사가 필요하답니다. 이제 좀 이해가 되세요?

 

제가 어디까지 이야기를 했었지요? 아! 그렇군요. 저희 본당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지요. 신자수가 37,000명이지만 주일미사에 나오는 사람의 숫자는 그렇게 많지를 않아요. 한 2,000명 정도 될까? 왜냐하면 구역은 넓지요, 교통은 불편하지요, 오전 8시만 되면 찜통더위가 시작되기 때문에 멀리서 걸어오는 게 쉽지만은 않거든요. 게다가 주일도 새벽부터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이곳 신자들은 주일미사에 참례해야 하는 이유를 잘 모르고 살아가요. 그냥 관습적이고 기복적인 신앙생활만 하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불교 신자들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그래도 요즘은 계속적인 교육의 덕분에 많이 좋아졌어요. 신부도 세 명이나 되기 때문에 주일에는 미사를 6∼8대를 봉헌하거든요. 그래서 더 많은 신자들이 주님의 식탁에 모일 수 있게 되었지요. 참, 주일미사를 본당에서만 드리지는 않아요. 더 많은 신자들이 미사에 참례하도록 멀리 떨어진 마을에 찾아가서 미사를 드리기도 하거든요. 그런 공소가 성 프란치스코(San Francisco)와 성 십자가(Santa Cruz), 이렇게 두 군데가 있고, 한 군데는 아직 터만 있어요. 앞으로 몇 년 이내에 이곳에다가도 공소를 지어야 해요. 이 공소를 짓고 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식탁에 모일 수 있겠지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우리 본당은 도시 빈민지역에 위치하고 있고, 그래서 사람들이 아주 가난하답니다. 주민들의 대다수는 이곳의 토박이가 아니라 자동차로 10시간에서 20시간 정도 걸리는 아주 먼 곳에서 이곳으로 이사 온 사람들입니다. 그 쪽은 해발 2,500∼4,500미터나 되는 아주 높은 지역이고 감자나 옥수수를 주식으로 삼는 사람들이 살고 있어요. 저도 지나가면서 봤는데 저희들이 상상하는 이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었답니다. 그런 곳에 살던 사람들이 더 이상 생계가 곤란해질 때 저희가 살고 있는 도시로 내려와서 살게 되지요. 그래도 저희가 사는 곳은 열대지역이기 때문에 과일 등 먹을 것은 풍부해서 굶어죽을 지경에까지는 이르지 않거든요. 그렇지만 이 사람들이 내려와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어요. 가난한 산골에서 자란 사람들이기 때문에 어떤 기술이나 지식이 없어서 전문직에서 일할 수는 없거든요. 주로 하는 일이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거나 경비업체에서 야간 경비 업무 등을 하지요.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하지만 이들의 수입은 정말 보잘 것 없어요. 그래서 대부분이 맞벌이를 하고 있어요.

 

부모들이 일을 하러 나간 사이에 아이들은 스스로를 돌본답니다. 마치 우리 어머니, 아버지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형, 누나가 동생을 업어 기르는 것 말이에요. 그리고 조금 더 자라서 중·고등학생이 되면 스스로의 용돈이나 학비 또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일을 해야 합니다. 특히 결손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거의 반드시 일을 해야만 합니다. 이렇게 일을 하면서 여러 가지 기술을 익혀서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 조금 더 나은 일을 구할 수도 있습니다.

 

오스칼(Oscar)은 올해 스물한 살 된 청년입니다. 작년에 야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올해 이곳 유일한 국립대학인 가브리엘대학(Gabriel Universidad)에 입학했습니다. 이 청년은 열 살 때부터 자동차 정비공장에서 일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기술자의 조수역할을 하면서 여러 가지 공구의 이름이나 특징들을 배웠지만, 지금은 수많은 단골을 가지고 있는 기술자입니다. 우리들의 자동차도 고장이 나면 이 청년이 고쳐줍니다. 아직 정식 자격증이 없기 때문에 자격증과 더 고급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 대학에 진학했답니다. 오스칼의 꿈은 자신의 정비소를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을 돕는 꿈도 가지고 있지요. 참 멋진 청년입니다. 이렇게 오스칼처럼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서 노력하는 청년들이 우리 동네에는 많이 있습니다. 비록 가난하고 힘든 환경 속에 있지만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청년들 말입니다. 이런 청년들을 만나면서 저희는 볼리비아의 미래를 만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그런 볼리비아를요.

 

이번 달에는 이 정도로만 할까요? 한꺼번에 너무 많은 걸 이야기 드리면 듣는 분들이 좀 지겹기도 하고, 저도 다음 달을 위한 소재를 남겨둬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