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날의 할머니들은 허리가 몹시 굽었습니다. 50대에 이미 꼬부랑 할머니가 되신 분도 많았습니다.
오래 전에 어느 건강코너에서 이런 얘기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 아이를 임신하게 되면 임산부는 태중의 아이에게 충분한 영양분을 모아서 공급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임산부가 제대로 먹지 못해 영양실조에 걸려있다 해도 태중의 아이가 한 인간으로 태어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도록 어머니 몸속의 모든 영양분을 최대한 모아서 아기에게 공급한다고 합니다. 물론 지나칠 정도로 영양실조가 되면 자연유산 같은 무리가 따를 수도 있겠지만, 산모가 어느 정도만 건강을 유지해도 새로운 생명인 아이가 세상에 태어날 때 건강한 생명체로 태어나도록 모든 영양분을 아이에게 충분히 공급한다고 합니다.
그중에도 특히 놀라운 것은 임산부가 섭취하는 음식 중에 칼슘이 모자라게 되면 놀랍게도 어머니는 자신의 뼈를 녹여 그 칼슘을 아기에게 공급해주어 아이의 뼈를 완전하게 만들어 놓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옛날의 어머니들이 그렇게 빨리 허리가 굽은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합니다. 영양섭취가 충분하지 못했던 옛날의 어머니들은 태어날 아이를 위해서 그것도 여러 명의 자녀들에게 자신의 뼈를 녹여 칼슘을 나누어 주었고, 산후엔 영양분을 제대로 보충하지 못했기 때문에 뼛속이 텅 비고 약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뼈가 약해지고 허리가 굽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이제 부모님의 은혜를 기리는 우리의 노래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어머님의 마음속엔 오직 한 가지 아낌없는 일생을 자식 위하여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주름살이 깊어진 어머니를 업고 징검다리를 건너다 너무도 가벼워진 어머니의 몸무게를 느끼고 서러워 한다는 오래된 유행가 가사가 생각납니다. 자식들에게 뼛속이 텅 비도록 칼슘까지 빼준 이런 자연의 섭리 못지않게 실제 자식을 낳고 키우고 돌보는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는 뼈를 깎고 살을 태우는 사랑이고 은혜입니다. 자녀가 모르는, 보이지 않는 데서도 자식을 염려하고 갖은 사랑으로 보살피는 보이지 않는 은혜, 음덕은 또 얼마나 크고 숭고합니까!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는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 그럼에도 오늘 우리 주변에선 적지 않은 서글픈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너무도 빨리 핵가족화 되어버린 우리 사회에서 자녀들의 마음속에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가 잊혀져가고 있다면 지나친 얘기일까요? 자녀들의 무관심과 냉대 속에 부모의 존재는 점점 거추장스럽게 되어가고 한숨 속에 외롭게 노년을 보내는 노인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노인들을 위한 복지라고 하지만 당연한 듯 여기저기 노인요양원이 늘어나는 것도 오늘날의 세태라고 치부하기엔 뭔가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십계명의 둘째 돌판은 넷째 계명으로 시작된다. 이 계명은 사랑의 순서를 가르쳐 준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다음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하느님께 대한 지식을 전해준 우리 부모를 공경하기를 바라셨다.”(가톨릭 교회교리서 2197)
주님의 명령이 아니더라도 자식을 두고도 외로운 노인들이 줄어들 수 있도록 우리 신앙인들이 좀 더 모범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버이날은 지났지만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리고 감사하는 생활은 365일 일상의 삶이어야 하는 것이지, 어느 하루에 한정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신앙인에게 있어 하느님 사랑 다음으로 우선적인 계명입니다.
“자녀 여러분, 주님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그것이 옳은 일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이는 약속이 딸린 첫 계명입니다.”(에페 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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