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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정 선생의 교실이야기 2
박해는 신앙의 불을 지핀다


이유정(데레사)|계산성당, 대구가톨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무학고등학교

 

유난히 맑은 초록빛을 자랑하는 유월이 되면 저는 예수 성심상의 예수님 가슴이 더욱 붉게 느껴집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입으로는 나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내 마음에 상처를 더 하는고?” 사도 성 요한 축일에 성녀 말가리타 마리아 알라콕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은 가시관에 둘러싸인 핏빛 심장을 내보이시며, 사람들에게 이렇게 안타까움을 호소하십니다. 저는 이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겟세마니에서 철저하게 외로우셨던 예수님의 고독을 떠올립니다. 그렇게도 열렬히 자신을 따르던 제자들이 한 사람도 자신을 지켜주지 않았던 그 옛날 겟세마니의 외로운 밤처럼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 또한 당신을 외면하기에 오늘도 우리 예수님은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는 당신의 심장을 내보이시며 이렇게 외치고 계십니다. “보라!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는 이 마음을!” 이라고. 6월만 되면 그 말씀이 꼭 저를 향하는 것 같아 성심상의 사진을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합니다.

4월 후반부터 우리 학교 부활 셀(CELL) 학생들은 금요일 저녁식사 후 신부님과 같이 학교 주변을 돌며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습니다. 원래 매일 저녁식사 후 경당에서 자유롭게 묵주기도를 드리고 있었지만, 기도 활성화를 위해 교목 신부님께서 제안하신 것입니다. 출발할 때는 몇 명 안 되는 아이들이 쑥스러운 모습으로 신부님 뒤를 따르며 기도를 바치지만 조금씩 그 행렬 속으로 한두 명씩 아이들이 함께 함으로써 처음보다는 늘어나는 모습을 보며 ‘그리스도의 향기 되어’란 말이 떠오릅니다. 좋은 향기가 조용히 퍼져나가 주변을 아름답게 만들 듯 우리 아이들의 작은 모범이 언젠가는 무학의 교정에만 머물지 않고 곳곳에 그리스도의 향기 되어 퍼져나가길 소망해 봅니다.

우리 학교 셀은 매주 화요일 저녁 7시이면 70여 명의 남학생들이 작은 경당에서 기도를 하고 미사를 드립니다. 또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매일 저녁식사 후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몇 명의 학생들은 성경쓰기를 하고 있으며 성가를 좋아하는 셀 밴드들은 자기들끼리 주말 시간을 쪼개어 미사곡도 연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 우리 셀 학생들이 정말 대견하고 자랑스럽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3학년 셀 학생 한 명이 조금은 화가 난 표정으로 교목실을 찾아와 신부님과 제게 우리 셀의 모습에 대해 불만을 털어 놓았습니다. 우리 학교 안에 개신교 학생들의 모임이 생겨났는데 그들은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기도모임을 갖고 봉사도 열심히 하는데, 셀 학생들은 간식만 바라고 미사에 오는 것 같고 기도생활도 열심히 하지 않는 것 같아 너무 속이 상한다며, 이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냐며 격앙된 어조로 자신의 마음을 털어 놓았습니다.

몇 마디 궁색한 말로 답하긴 했지만 그 학생을 돌려보낸 후 계속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특히 세례 받은 지 2년밖에 안 된 그 학생에게도 보이는 것을 보지 못한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16년 전, 처음으로 무학에 셀(CELL)을 만들 때가 떠올랐습니다. ‘무기독’이란 개신교 학생들의 모임이 무척 열심인 것을 본 가톨릭 학생 몇 명이 자신들도 신앙 모임을 갖고 싶다면서 저를 찾아온 것이 우리 학교 ‘부활 셀(CELL)’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사실 그때는 모든 것이 열악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학교 화장실 청소를 하고 겨울엔 같이 1박 2일 피정도 하며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하양성당을 빌려 미사도 봉헌했습니다. 그리고 17년이 지났습니다. 지금 우리는 학교 내 경당에서 미사를 드립니다. 매주 교목 신부님께서 간식도 준비해 주십니다. 펠릭스회(교내 신자 교사 모임)의 지원으로 가끔씩 맛난 것도 먹습니다. 많은 것이 편하고 좋아졌지만 예전만큼의 열렬함은 줄어든 것 같습니다. 문득 순교자들의 삶이 성큼 제 눈앞에 다가섭니다. 박해 속에서 더욱 굳건해지는 순교자들의 삶을 떠올리며 어쩌면 지금 우리 셀(CELL)에게 필요한 것이 절박함과 간절함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가만히 있어도 주어지는 그 편안함이 이 아이들을 안주하게 만들고 힘들여 얻어야 할 것이 없게 만든 것 같아 씁쓸합니다. 어쩌면 박해는 미지근한 신앙에 불을 지피려는 하느님의 또 다른 섭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우리나라 순교자 중 가장 나이 어린 한 분이 계십니다. 바로 유대철 베드로! 순교 당시 성인의 나이는 겨우 13세였습니다. 직접 관아를 찾아가 자신이 신자임을 밝힌 성인은 옥중의 모진 고문으로 뼈가 부러지고 살이 찢어졌지만 배교하지 않았습니다. 온몸이 피투성이임에도 불구하고 결코 흔들림이 없는 그를 보고 화가 난 형리가 벌겋게 달군 숯덩이를 들고 위협하며 “이래도 천주교를 버리지 않겠느냐?” 하고 묻자, 13세의 그 어린 소년은 “더 달구어라. 더!”라고 외치며 입을 크게 벌렸다고 합니다. 결국 성인은 좁고 누추한 감옥에서 남몰래 목 졸려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신앙을 버리기를 강요하며 핍박하는 자신의 어머니께 성인은 “어머니 말씀 다 맞고 어머니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것도 알겠습니다. 그러나 순서가 있습니다. 아버지 말씀보다는 할아버지 말씀을 먼저 들어야 하고, 할아버지 말씀보다는 하느님 말씀부터 먼저 들어야 합니다.”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는 유대철 베드로의 그 강철 같은 믿음의 힘이 오늘따라 무척이나 간절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그리고 성인께 청해봅니다. 제게, 우리 학생들에게 현실의 유혹 속에서 더 좋은 것을 맛볼 수 있는 지혜와 흔들림 없는 믿음을 말입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 다른 세상 것에 마음을 빼앗겨 여전히 당신을 외면하는 자녀들 때문에 핏빛 심장으로 더욱 고통 속에 계실 우리 예수님의 간곡한 울부짖음이 아프게 가슴팍을 파고듭니다. 그리고 다짐해 봅니다. 6월 예수 성심 성월, 이 한 달만이라도 더 열렬히 살아야겠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입으로는 나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내 마음에 상처를 더 하는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