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편지는 페루에서 선교하고 계시는 샬트르 성바오로수녀회 석 아폴로니아 수녀님이 부활 인사로 조환길 대주교님께 보내 온 편지입니다. 모든 것이 열악하고 갖추어지지 않은 환경에서 열심히 봉사하시는 수녀님들이 모두 영육간에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 편집자 주(註)
무더위야, 함께 하느님을 찬미하자!
대주교님! 봄기운처럼 아름다운 여명으로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부활인사 드립니다. Feliz Pascua!(‘기쁜 부활’이라는 뜻의 스페인어) 바쁜 사목 일정 중에도 건강하시리라 믿습니다. 2주일 전에 리마를 출발해서 콜롬비아 보고타로 3시간 30분을 날아서 5시간을 기다려 다시 비행기로 1시간 20분, 또 버스로 4시간을 이동하여 우리 분원이 있는 꾸루마니라는 작은 읍 크기의 도시에 도착했습니다. 이곳 저희 수도회 성 바울로 학교(기존에 있던 학교를 이곳 주교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셔서 수리하고 있습니다.)를 이전하기 때문에 두 달간 도와주러 왔습니다. 성주간 전 금요일에 이전 개원식을 했기에 몸이 좀 많이 힘들지만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성주간 전 토요일엔 여기 청년들(우리나라로 치면 중학생인데 몸은 20대)과 버스로 3시간 이동하여, 교구 청년들 모두 함께하는 행사에 참가했습니다. 이 교구의 연중행사 가운데 하나인데요. 주교님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사제 두 분이 성소에 대해 강론하시고 나면 춤과 노래로 한 나절 행사를 하는데 새벽 4시에 출발해서 저녁 7시에 돌아왔습니다. 젊은이들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함께 모이고 노래하고 춤추고 하는 다이내믹한 것을 좋아들 하나봅니다. 문제는 시골이다 보니 시간이 더 많이 걸립니다. 버스는 고물이라 중간중간 점검해야 했고, 자리는 아주 좁은데 함께 간 수련 수녀님은 덩치가 커서 비지땀을 줄줄 흘리고, 버스기사는 출발부터 시간을 안 지키더니 행사가 다 끝났는데도 1시간 30분이 지나서야 나타나서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습니다. 그래도 다들 원래 그렇다는 듯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저 혼자만 속이 부글부글하면서 받아들이느라 무지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이곳의 음악은 음악이 아니라 굉음 수준입니다. 그 가운데 대화를 하니 그냥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댑니다. 더욱이 청소년들이니 얼마나 떠들겠습니까? 거의 죽음 수준이었답니다. 
그러나 대주교님! 성지주일 행사는 아주 아름다웠습니다. 모두들 성지를 들고 읍내 행진을 하고 미사를 봉헌했지요. 수난 성지 주일이 아니라 마치 부활대축일같이 북치고 기타치고 춤추며 성지를 흔들어대는데, 아주 라틴 아메리카다운, 정말 새로운 느낌! 만찬미사도 역시 특이했습니다. 발 씻김 예식을 한 다음에 제대 아래에 식탁을 차려놓고 빵과 포도주를 사제와 함께 나누는 모습이 아주 이색적이었습니다. 수난감실은 저와 우리 수녀들이 준비하였고요, 만찬이랑 다른 모든 것은 신자들이 아주 능란하게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매주 수요일에는 신자들끼리 말씀의 전례를 하는데 강론이 사제들보다 나을 정도로 모두들 말을 얼마나 잘 하는지요. 내면으로 삭히기보다는 모두들 드러내어 표현하는 것이 더운 나라의 특징인 것 같아요. 성목요일 만찬미사 후에는 시가지로 성체거동 행렬을 했습니다. 성금요일 새벽 5시에 청년들이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주님수난을 재현했습니다. 거의 5시간에 걸쳐서요. 아름다웠습니다. 이를 위해서 몇 날을 준비했거든요. 지금 5년째 지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아, 또 특이한 것은 성금요일 전례 끝에 ‘가상칠언(架上七言 : 요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일곱 가지 말씀-편집자 주)’을 7명의 신자가 읽고 나서 각기 강론을 하는데, 얼마나 말들을 잘 하는지…. 거의 한 시간 반이 걸렸습니다.
부활성야에는 7시에 불 축성 전례를 시작으로 행렬하여 야외 광장에서 부활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일곱 개의 독서와 응송을 한 절도 빠짐없이 노래로 하는데 부활찬송도 기타를 치면서 했습니다. 여긴 성주간에도 전례를 다 기타로 반주하면서 고함치듯 노래합니다. 이 사람들은 아주 마이크 소리가 커야 되나 봅니다. 저는 거의 고막이 터질 것 같은데…. 사제도 대영광송 때에 손뼉을 치며 춤을 추고 아주 자연스러운데, 저 혼자서만 낯선 전례(?)를 받아들이느라 애를 먹습니다. 미사가 끝나니 11시 30분이 지났습니다. 제 몸은 주님과 함께 부활이 아니라 다시 죽음 상태로….
무엇보다 지금은 무더위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주 힘듭니다. 기실 더 힘든 것은 이 무더위가 일 년 내내, 즉 희망이 없다는 것!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네 사람들은 아주 더워도 좀 있으면 가을바람이 불 테니까, 하는 희망이 있잖습니까? 헌데 여기서는…. 선풍기를 3단에 틀어놓아도 땀이 줄줄 흐릅니다. 선풍기 바람 역시 더운 바람이고, 그 바람 속에서도 땀이 나는 이 상황이 상상이 가시는지요? 밤새도록 선풍기 3단을 틀어놓아야 그나마 잠을 청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모기는 수도 없이 팔, 다리에 전쟁을 일으키는데 모기 퇴치 약을 발라도 소용이 없고요. 무엇보다 기도에 집중하기가 힘이 듭니다. 참아내기가 아주 힘든 상황! 허기야 이것도 다 제가 “예.”라고 했기 때문이지요. 선교사니까요.
여기 오기 전 저희 지구장 수녀님께서 그곳이 무지 더운데 가능하겠느냐는 말을 수도 없이 하시기에, ‘이 사람이 우리 한국 사람을 뭘로 보고….’ 하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큰소리를 쳤거든요. 그런데 오는 날이 장날이라고, 긴 여행 끝에 도착했건만 밤에 정전이 되는 바람에…. 첫 날 밤은 열 번도 넘게 잠을 깼답니다. 40도, 42도에 육박합니다. 밤에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글 한 자 읽기도 어렵네요. 불을 켜면 모기들이 달려들고, 침대 위는 너무 더워서 땅바닥(타일바닥)에서 자는데, 바닥이 우리가 겨울에 군불을 땐 상태처럼 뜨끈뜨끈합니다. 그래도 바닥이 침대보다 낫지, 하는 순간 개미들이 저를 반기네요. 페루에서 3500미터 고도 적응이 안 되어 힘들어하는 프란치스코회 수녀님이 계셨는데, 제가 여기 와서 무더위와 모기와의 전쟁에서 힘들어하면서 그 수녀님의 힘듦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다른 이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체험이 주는 은총인 것 같습니다. 감사드려야겠지요. 아멘!
대주교님, 주님 은총 가운데 늘 건강하시고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저도 매일 미사 중에 대주교님을 기억합니다. 기도 안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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