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교구 본당사무직원회(회장 : 김동국 요셉, 담당 : 박석재 가롤로 사무처장 신부)의 회원들은 4월 15일(월)-17일(수)까지 일본 나가사키를 중심으로 하는 해외성지순례를 다녀왔다. 그간 성지순례를 많이 다녀왔지만 ‘해외’가 붙어서 그런지 떠나기 며칠 전부터 묘한 설렘이 일었다. 이제 그 여정 속으로 들어가 보자.
4월 15일(월) - 순례 첫째 미사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요한 6,28)
우리 일행은 40여 분의 비행을 거쳐 나가사키 키타큐슈공항에 도착했다. 여기저기 한자(漢子)가 섞인 일본 간판 말고는 어디를 둘러봐도 일본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낯익은 풍경이 한국의 한적한 전원마을에 온 듯 들뜬 마음을 진정시킨다. 3대의 버스에 나누어 탄 일행은 큐슈의 남서쪽에 위치한 나가사키로 출발했다. 순례의 기도와 부활삼종기도를 바치고 가이드의 순례 일정과 간략한 일본 교회사 설명이 이어진다. 넓지 않은 왕복 2차선 도로와 작지만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정갈하고 소박하게 지어진 가정집들을 지나 운동장보다 작은 공터에 세워진 십자모양의 조형물이 있는 곳, 바로 호코바루 순교성지다. 조선 출신 순교복자 13위의 순교정신을 길이 찬미한다는 한글 비문이 보인다.

첫째 날 우리는 미사를 봉헌할 나가사키역 근처 언덕에 있는 26성인 기념성당(필립보성당)에 도착했다. 이곳은 일본에서 최초로 가톨릭 신자들이 순교한 곳으로 선교사 9명과 일본인 17명이 순교한 곳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순교기념비, 순교자들의 유물과 자료를 전시한 박물관을 둘러보았다.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았을 순교자들의 유물과 그림들을 둘러보면서 하느님께로 향하는 지칠 줄 모르는 순교자들의 사랑이 전해져 오는 것만 같았다. 하느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믿을 뿐만 아니라 목숨을 바쳐서까지 신앙을 전파하고 사랑한 순교자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다는 것이 안타깝기만 했다.
4월 16일(화) - 순례 둘째 미사
“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요한 6,34)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모토마치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한 일행은 여기당, 우라카미성당, 평화공원, 오우라 천주당을 들러 나가사키대교구장 타카미 미츠아키 대주교님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감명이 깊었던 것은 우라카미 지역의 신앙선조들인 잠복 크리스천에 대한 설명과 우라카미성당을 짓게 된 배경에 대한 설명으로, 1500년대 후반 우라카미촌을 예수회에 기증하면서 이 지역에 천주교가 뿌리 깊게 내렸다고 한다. 그 후 박해가 일어나 1800년대 중반까지 많은 순교자들이 생겨났고, 천주교 신자를 색출하기 위한 후미에 -예수님이나 성모님의 초상을 밟고 모욕을 주는 행위- 를 7대에 걸쳐 250여 년 동안이나 겪었다고 한다. 그 후미에를 행한 장소가 당시의 동사무소였다는데, 후손들이 하느님을 밟았던 그 자리에 성당을 짓기 위해 30년을 걸려 땅을 사고, 20년에 걸쳐 성당을 지었다고 한다.
그런 성당이 원폭으로 20년 만에 잿더미로 변해버린 것이다. 8천 명이 넘는 신자들과 함께…. 여기저기서 안타까움의 탄식이 새어나온다. 숙연해진 우라카미성당 안에 나가이 다카시 박사가 원폭피해자들의 장례미사에서 읽었다는 조사가 가이드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돌아가신 8천명은 흠 없는 어린양으로 세계의 평화를 위해 하느님께 바쳐진 번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렇게 박해를 피해 숨어 지내던 잠복 크리스천들을 발견한 오우라성당. “우리들은 모두 당신과 같은 마음입니다.” 온 몸에 소름이 돋게 만드는 이 말은 7대에 걸쳐 250여 년을 숨어 지내던 몇 명의 잠복 크리스천 여인들이 프랑스 선교사 프티잔 신부를 찾아와 건넨 말이다. “하느님을 믿고 사랑하는 마음,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잃지 않고 지켜낸 믿음에서 나오는 확고한 말, 이것이 온갖 박해와 모욕을 견뎌낸 일본의 순교자들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전세혁 신부님의 미사강론 중에서)
‘아, 이틀 동안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찾아다니다 보니 발이 너무 아프다. 어디 따뜻한 물에 들어가 쉬고 싶다.’는 간절한 생각을 하는 사이, 우리 일행은 천주교를 믿는 이들을 고문한 장소로 유명한 운젠지옥 -일본은 온천이 나는 골짜기를 보통 지옥 골짜기라고 부른다고 한다.- 의 입구를 통과하였고 나의 소박한 바람도 이루어지면서 이틀째의 순례 여정을 마무리하였다.
4월 17일(수) - 순례 셋째 미사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요한 6,40)
이틀 동안 더웠던 날씨는 새벽녘부터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에 자취를 감추고 겉옷을 껴입게 했다. 순례의 마지막을 하늘도 안타까워하는 것일까? 빗길을 달려 일본 성지순례의 마지막 미사를 봉헌하러 동그란 돔형천장을 얹어놓은 시마바라성당에 도착했다. 이제 우리의 여정을 종합해야 할 시간이 된 것 같다.
교구 사무처장 겸 본당사무직원회 담당이신 박석재 신부님께서 미사 강론에서 “4만 명이 죽은 시마바라, 우라카미의 8천 번제물 등 신앙을 위해 희생된 순교자들이 가졌던 마음인 사랑, 하느님께로 향하는 그 사랑으로 우리도 이웃과 본당 신자들을 대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말씀하셨다. 믿음으로 자신들의 신앙을 증거한 그 용기는 바로 하느님께서 주신 그분의 힘일 것이다. 이번 일본 성지순례에서 하느님은 당신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는 약속을 순교자들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시고자 한 것은 아닐까?
순례를 떠나기 전, 일본이라는 이유로 조금은 닫힌 마음으로 나선 일본 성지순례.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하느님을 믿고 사랑하는 데는 경계가 없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래서 예수님도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 하신 게 아니겠는가. 지역과 나라, 언어와 문화를 넘어 하느님 사랑을 증거한 순교자들, 그들처럼 나도 세상 끝까지 가서 그 사랑의 증거인 순교자들의 마음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
본당사무직원들의 해외성지순례를 허락해주신 교구장 조환길(타대오)대주교님, 순례여정을 함께 하며 우리를 인도해주신 박석재(가롤로, 사무처장 겸 본당사무직원회 담당) 신부님, 서준홍(마티아, 성모당 담당) 신부님, 전세혁(예로니모, 사무처 차장 겸 전산실장) 신부님, 유창한 일본어로 우리의 궁금증을 풀어주신 예수성심시녀회 이 율리엣다 수녀님 등 많은 고마운 분들께 지면을 통해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함께 하지 못한 본당사무직원 여러분, 다음에는 꼭 같이 갑시다! 예루살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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